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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독] 피해자 찾아가 불지른 남성…경찰은 ‘가해자 위험도’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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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금지 종료 이틀 뒤 피해 여성 찾아가 범행

경찰 ‘신당역 사건’ 이후 스토킹 사건 전수조사에서

해당 남성 위험도 ‘위기’에서 ‘주의’로 격하


한겨레

지난 9월16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발생 후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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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처벌을 받은 남성이 접근금지 등 잠정조치 기간이 종료되자 피해 여성을 다시 찾아가 자신과 상대방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계기로 ‘가해자 위험도 전수조사’가 진행된 지난 9월 이 남성을 “잠정조치 중 피해자를 찾아오지 않고 위험성이 적다”는 이유로 처음 신고 때 적용된 ‘위기’ 단계에서 위험도가 제일 낮은 ‘주의’로 낮춘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서울 도봉경찰서는 전날 저녁 6시32분 스토킹 혐의로 입건돼 수사받던 남성 ㄱ(77)씨가 연인관계였던 여성 ㄴ(61)씨가 운영하던 도봉구 창동의 상점을 찾아 자신과 ㄴ씨 몸에 휘발유 500㎖를 뿌리고 불을 붙여 현주건조물방화치상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다행히 피해 여성 ㄴ씨는 경상(1도 화상)으로, 현재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 중이다.

경찰 조사 결과, ㄱ씨는 이미 지난 7월 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접근금지에 해당하는 잠정조치 1~3호를 받은 전력이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에도 ㄱ씨는 ㄴ씨를 스토킹해 주거 접근·연락 금지 등 조치를 받았지만, 지난달 28일 잠정조치 기간이 끝나자 이틀 뒤인 지난달 30일 피해자를 다시 찾았다. ㄱ씨는 ‘다시 잘 해보자’는 취지의 편지와 함께 평소 ㄴ씨가 좋아하는 음식을 상점 앞에 두고 갔다고 한다. 이어 이달 5일에도 찾아가자, ㄴ씨는 경찰에 스토킹 혐의로 ㄱ씨를 다시 신고했다. ㄱ씨는 오는 12일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경찰은 지난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계기로 ‘가해자 위험도 전수조사’가 진행될 당시 사건 모니터링을 통해 ㄱ씨에 대해 기존 ‘위기’ 단계에서 위험도가 가장 낮은 ‘주의’ 수준으로 낮췄다.

경찰청은 당시 한달간 전국 스토킹 사건 7284건을 점검해 위험 우려가 큰 가해자를 구속하는 등 167건에 대해 추가 조처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9월 모니터링 때 피해자를 찾아오지 않고, 물리적 폭력이 없어 위험성이 적다고 판단해 격하 처리했다. 지난 5일 신고를 받고 다시 ‘위기’로 다시 단계를 높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장윤미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한겨레>에 “물리력 폭력이 스토킹 범죄 판단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 피해자를 찾아 가는 행위 자체가 물리력 폭력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가해자 위험도 평가를 통해 사전에 차단하자는 것인데, 애초 ‘위기’로 구분된 가해자를 ‘폭력이 없었다’고 단계를 낮출 게 아니라 지속해서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고 했다.

ㄱ씨에 대해 유치장 구금 조처인 잠정조치 4호가 내려지지 않은 것을 두고도 경찰은 “당시 물리적 폭력이 없었고, 피해자가 ‘접근, 연락만 금지해달라’고 해 2~3호 조치를 내렸다”고 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경찰이 유치·구금을 포함한 잠정조치 4호를 부담스러워서 잘 안 하려고 하는데, 현재 피해자-가해자 분리 위한 유일한 조치인 것을 고려하면 경찰이 향후 위험성 높은 가해자 대상으로 유치 조치를 어떻게 내릴 것인지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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