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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슈 미술의 세계

선지훈 신부 "신뢰로 이룬 '겸재 화첩' 반환…한독 교류 상징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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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수도원 수차례 설득해 반환 이끌어…"민·관 함께해야 환수 결실"

100년 전 식물 표본 반환에도 힘 보태…올해 '은관문화훈장' 받아

연합뉴스

우리나라에 돌아온 겸재 정선의 화첩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특별전 언론 공개행사에서 관계자가 2005년 독일에서 돌아온 겸재 정선 화첩을 살펴보고 있다. 2022.7.6 hkmpooh@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다시 생각해봐도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은 일이었죠. 한국과 독일, 두 나라 사람들이 쌓아온 신뢰와 존경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선지훈(62)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서울분원장은 독일 상트오틸리엔 수도원에 있던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의 화첩이 국내에 돌아온 일을 떠올리며 8일 이같이 밝혔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일이지만, 그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당시 기억이 생생한 듯 "독일과 한국의 교류 측면에서도 중요한 상징이자 모범적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2005년 한국에 돌아온 겸재 화첩은 진경산수화, 고사인물화 등 여러 주제를 담은 그림 21점을 담고 있다. 작품마다 제작 시기가 달라 화풍, 재료 등에서 겸재의 다양한 면면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화첩은 1911년과 1925년 선교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노르베르트 베버 수도원 초대총아빠스(대수도원장)가 수집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수년간의 설득과 요청 끝에 국내로 돌아왔다.

1991년 처음 수도원과 인연을 맺으며 관계자들을 설득한 선 원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 원장은 "독일에서 유학할 당시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살면서 많은 이들과 교류했다. 이후 거의 매년 수도원을 찾아 화첩의 의미를 설명하고 반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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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훈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서울분원장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회의에서 놀랍게도 만장일치로 (영구대여 방식의 반환을) 결정됐다"며 "당시 선교 100주년을 앞둔 시점이었는데 그 당시가 아니라 지금 기준이라면 조금 어려울 수 있었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에서 화첩이 많은 관심을 받은 데에도 감사함을 전했다.

올해 7∼9월 열린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전시에서는 '금강내산전도'(金剛內山全圖), '일출송학도'(日出松鶴圖), '구룡폭도'(九龍瀑圖) 등 화첩 속 그림들이 공개됐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잘 알려진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전시된 화첩을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주목받기도 했다.

선 원장은 "화첩을 반환한 뒤 (국내외에서) 오틸리엔 수도원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져 이후 수도원을 찾는 사람도 늘었다고 한다"며 한국과 독일 수도원 모두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고 평가했다.

겸재 화첩으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그는 독일에서 식물 표본 420점을 반환한 일 또한 중요했다고 봤다.

표본은 독일인 신부가 1913년 북한 원산지역을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채집한 식물을 모은 것으로, 100년 만인 2013년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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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당시 선지훈 신부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당시는 국내 식물 연구가 시작되기 전이라 채집본이 거의 없다"면서 "반환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서로 오해를 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귀하고 보람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22 문화유산보호 유공자 포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은관문화훈장 수훈에 대해 "올해가 사제 서품을 받은 지 딱 25년이 되는 해"라며 "그동안 문화재와 관련한 여러 활동을 해왔는데 그 공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고 또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선 원장은 나라 밖 문화재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민·관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재 반환은 국가적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진정한 노력은 민간에서도 해야죠. 관심 있는 사람이 나서 꾸준히 설득하고, 또 민·관이 함께 나아간다면 결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한국과 독일을 잇는 역할을 더 하고 싶다고 바랐다.

그는 "(문화재 반환 노력 등은) 수도원에서 내가 맡은 소임을 넘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플러스알파'로 해왔는데 앞으로도 한국과 독일 수도원, 또 두 나라 간 신뢰를 쌓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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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있던 100년 전 보물 '한국 식물표본'
(포천=연합뉴스) 김도윤 기자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국립수목원에 맡긴 100년 전 국내에서 채집한 식물표본. 1913년 독일인 신부가 채집한 뒤 본국으로 가져가 그동안 독일의 한 수도원에 보관돼 있다가 국내로 돌아왔다. 왼쪽부터 한라꽃장포, 참식나무, 실부추, 큰반쪽고사리. 2015.4.26 kyoon@yna.co.kr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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