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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동인문학상 대신 인동문학상!…‘친일파 기리기’의 즐거운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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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등 문학계 인사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2018년 11월23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조선일보 미술관 앞에서 “친일문인 김동인을 기념하는 동인문학상 폐지”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구본기 | 시민주권운동중점 대표

소설 ‘감자’의 작가로 유명한 김동인은 친일파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그의 친일 활동을 반민족 행위로 규정했다. 그의 아들이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1년 서울고등법원은 “일부 친일 행위를 한 점이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 “국가대표 친일파”(권위상 시인)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이 반세기 넘게 운영되고 있다. 이름하여 ‘동인문학상’이다. 우리가 이름만 들으면 대번에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유명 작가 상당수가 이 상을 받았다. 김훈, 신경숙, 박완서, 김영하…. 너른 마음으로 2009년까지 수상자는 봐주자. 2010년부터 2021년까지의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김인숙, 편혜영, 정영문, 이승우, 구효서, 김중혁, 권여선, 김애란, 이기호, 최수철, 김숨, 윤성희.

이 중 특기할 사람은 2020년 수상자인 김숨이다. 그는 오랜 시간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글쓰기를 해왔다.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집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도 그가 썼다. 당시 김숨 작가의 동인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문단은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세상은 조용했다. 시민들이 동인문상학의 ‘정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도 김복동 할머니에 관한 대중 강연을 하고 다닌다.

동인문학상의 정체를 아는 이는 대개 “동인문학상은 폐지돼야 한다”고 말한다. 동인문학상을 없애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 운영 주체 스스로가 없애면 된다.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오랜 기간 동인문학상을 운영하는 조선일보에 ‘이름이라도 바꿔달라’고 요구했지만, 조선일보는 그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 이 방법은 이미 실패했다. 결국 둘째 방법이 필요한데, 그건 작가들이 동인문학상의 수상을 거부하는 것이다(아무도 받지 않는 상은 존재할 수 없다). 한데 어찌된 일인지 작가들은 동인문학상을 비판하면서도, 본인이 수상 예정자가 되면 그 상을 받는다(예외적으로 고종석·공선옥·황석영이 후보 등재를 거부했다).

이 모순에 관해 일부 작가들은 “작가와 작품(글)은 따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동인의 친일 행각과 작품성은 별개라는 거다. 고상한 헛소리다. 김동인은 글을 통해서도 친일 행각을 했다.(글 쓰는 작가가 글로 친일 행각을 하지 무엇으로 하겠는가). 명제 자체도 현실과 괴리돼 있다. ‘작가와 작가의 생산물인 작품을 별도로 보아 작가를 기리는 상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가 세간에 통용된다면, 우리는 히틀러를 기리는 상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상식적인 우린 그럴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일부 작가들의 윤리적 취향 수준이 드러난다. 그들이 만약 “나는 히틀러를 기리는 상은 받을 수 없지만, 김동인을 기리는 상은 받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다음과 같은 고백에 불과하다. ‘나는 홀로코스트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반민족·친일 행위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인문학상 수상식은 매년 11월 말 열린다. 올해 동인문학상 수상 예정자는 조해진 작가였다. 시민주권운동중점 회원들은 10월 말에 모여 동인문학상의 정체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프로젝트를 결의했다. 회의 중 엉뚱한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다. ‘동인문학상을 거부한 작가에게 시민들이 새로운 상을 만들어서 주면 어떨까?’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인동문학상’이다. 11월3~9일 ‘동인문학상을 거절하는 작가에게 주는 새로운 상’ 이름을 공모해 658명 시민이 참여했고, 새로운 상 이름이 동인의 역어이자 역경을 이겨낸다는 뜻의 인동(忍冬)문학상으로 결정됐다.

우리는 11월14일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작가회의, 더불어민주당 이용빈 국회의원 등과 함께 ‘인동문학상 제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어 조해진 작가에게 22일까지 동인문학상 수상 거절 의사를 밝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러지 않았다. 이에 우린 11월24일 “수상자 없음”이라는 제목으로 ‘제1회 인동문학상 수상자 발표 기자회견’을 했다. 조 작가는 25일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인동문학상 프로젝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이전보다 많은 시민이 동인문학상의 정체를 알게 됐다. 이번 사건을 접한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같았다. ‘동인문학상 수상 작가를 더는 소비하지 않으리!’ 예상했던 대로다. 바야흐로 윤리적 소비의 시대다. 일부 작가들은 11월 내내 위에서 언급한 ‘고상한 헛소리’를 반복했다.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이 일부 작가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인동문학상은 내년에 다시 돌아온다. 그땐 답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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