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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경제포커스] 돈이 귀한 시대가 성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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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지난달 30일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연설했다. 월가는 파월 의장이 이날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겠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며 환호했다. 그런데 월가는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는 말이 나왔다.

파월 의장이 과잉 긴축을 우려하며 긴축 조절론을 꺼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이유로 “조만간 금리 내리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유하자면 ‘긴축 고속도로’를 최고 속도로 달렸지만, 혹시 과속 딱지를 받고 차를 멈춰야 할까 봐 액셀(가속기)에서 발을 좀 떼겠다는 것이다. 브레이크를 잡겠다는 건 아니었다.

파월 의장은 앞서 “최종 금리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이날도 그 얘기를 다시 했다. 시장에선 연준이 결국 연 5% 조금 넘는 수준까지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본다. 미국에선 경제 과열도 침체도 부르지 않는 금리를 연 2%대 중반쯤으로 본다. 연 5%면 그보다 배나 높다.

미국은 올해 4연속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 등으로 금리를 연 4%까지 올렸다. 1980년대 초 이후 가장 빠르다. 금리는 돈값이다. 금리가 오른 만큼 돈은 귀해졌다. 더구나 파월 의장은 아직 끝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 미국 금리는 글로벌 금리의 표준이다. 한국도 영향권에 있다.

조선일보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추이. /자료=한국은행, 미국연방준비제도(Fed)


앞으로 인상 폭보다 더 중요해지는 건 ‘높은 금리를 얼마나 계속 끌고갈 것인가’이다. 과거가 그대로 반복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고금리를 길게 유지하면 어김없이 빚 거품이 큰 곳부터 시작해 세계 금융시장에 위기가 왔다. 직전에 미국 기준금리가 연 5%를 넘긴 건 2004~2006년 금리 인상기 때다. 2006년 6월 연 5.25%까지 올린 후 14개월을 유지했다. 그러더니 미국 부동산 시장이 무너졌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이어졌다.

1994~1995년 금리 인상기에도 미국 기준금리는 연 5%를 넘겼다. 1995년 2월 연 6%로 꼭짓점을 찍었고, 1998년 11월까지 내내 연 5% 선 위에서 오르내렸다. 그 사이 태국을 시작으로 우리나라까지, 빚내서 기업을 키웠던 나라들이 외환 위기를 겪었다. 다시 연 5%를 넘어선 2001년엔 닷컴 버블(거품) 붕괴가 벌어졌다.

지금도 ‘치프 머니(cheap money·저금리 자금)’가 마르면서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다. 거품이 끼었다고 지목받은 몇몇 시장에선 찬바람이 불고 있다. 글로벌 코인 시장에선 지난 5월 테라-루나 사태에 이어 지난달 FTX 파산 사태가 벌어졌다. 코로나 시기 비대면 추세로 완전히 세상이 바뀔 것이란 과도한 ‘장밋빛 전망’에 빠졌던 일부 국내외 테크 기업은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국내 한 스타트업 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일종의 스타트업병이 있었어요. ‘어차피 유동성은 풍부해. 돈을 아낄 필요는 없어’라는 거죠”라고 했는데, 그런 시기는 지나갔다. 국내에선 또 레고랜드발(發)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의 자금 경색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았던 20~30대의 고금리 고통도 커지고 있다.

이젠 돈이 귀한 시대에 적응할 방법을 배워야 할 때다. 기업과 가계는 ‘묻지 마’ 투자에서 벗어나 실제 돈을 버는 사업이 뭔지, 내 자금으로 할 수 있는 건 뭔지 곰곰이 따져야 한다. 금융권은 돈의 썰물이 빨라질수록 ‘옥석 가리기’를 제대로 하고, 멀쩡한 기업이 흑자 도산하는 건 막아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도 ‘나랏빚 내서 퍼주기’는 접고, 꼭 도움이 필요한 취약 계층과 미래 성장을 위한 곳에 재정이 가게 해야 한다. 과거 값싼 돈이 넘치던 시대에 했던 행동을 바꿔야 위기 때 넋 놓고 당하지 않을 것이다.

[방현철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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