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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배우 옆에서 한몸처럼 열연…수어통역 연극 색다른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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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연극 ‘스카팽’ 배리어프리버전이 지난달 26~28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됐다. 6명의 수어통역사가 검은 모자와 조끼, 바지를 맞춰 입고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붕대를 감고 테이블에 누운 이가 주인공 스카팽(이중현)이다. [사진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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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팽’의 수어식 이름은 ‘모자 쓴 남자’(엄지와 검지로 모자챙을 잡는 손모양)죠. 실제 농인 배우가 보곤 배우 연기와 수어 호흡이 완벽했다더군요.”(최황순 수어통역사)

“동선도 많고 합도 많이 맞춰야 하는 연극이라 처음엔 기존 공연과 관람 차이가 크면 어쩌지, 두려웠어요. 첫 회 공연을 하고 관객들은 똑같이 즐긴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배우 이중현)

지난 5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연극 ‘스카팽’(연출·각색 임도완) 주연 배우 이중현(39)과 최황순(49) 수어통역사의 말이다.

올해 세번째 시즌을 맞은 ‘스카팽’은 17세기 프랑스 희극 작가 몰리에르(1622~1673)의 원작이 토대. 사랑하는 여인을 따로 둔 재벌가 아들들이 부모가 정한 정략결혼을 막기 위해 꾀 많은 하인 스카팽과 계략을 꾸미는 소동극이다. 2019년 초연 이래 ‘국립극단에서 가장 웃긴 연극’으로 이름나며 이듬해 재연, 지난 10~11월 지방 투어까지 열띤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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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스카팽’ 주연 배우 이중현(오른쪽)과 최황순 수어통역사. ‘스카팽’의 수어식 이름 ‘모자 쓴 남자’를 손으로 표현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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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예술극장에서 지난달 23일 막을 올려 오는 25일까지 공연하는 시즌3는 처음으로 총 3회차(지난달 26~28일)의 배리어프리(장애인도 즐길 수 있도록 수어통역, 음성해설, 자막 등을 제공하는 것) 공연을 했다. 6명의 수어통역사가 11명의 배우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스카팽’은 정치인 성대모사, ‘땅콩 회항’ 등 시대상을 랩까지 동원해 리듬감 있게 표현한 대사와 애드리브, 아크로바틱을 방불케 하는 배우들의 몸짓과 의자 등 소품까지 척척 맞는 합이 특징이다. 그런 만큼 수어통역사들이 함께하는 배리어프리 버전은 동선 짜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배우들과 어울리게 분장 및 복장까지 갖췄다.

구리·거제·제주·대전 지역 투어 일정 때문에 배리어프리 버전을 위해 주어진 연습 시간은 단 2주. 초연부터 스카팽 역을 맡아온 이중현씨는 “수어통역사가 들어오면 기존 합을 유지할 수 있을지, 어디에 배치해야 할지 걱정도 많았다. 임도완 연출, 배우들과 고민 끝에 통역사도 배우처럼 같이 등장시키기로 했다”고 돌이켰다. 황 통역사는 “기존 배리어프리 공연은 저희가 동선을 짜서 연출에게 제안해왔지만 ‘스카팽’은 공연팀이 같이 만들어주셔서 결과적으로 배우와 가장 싱크로율이 높았다”고 했다.

‘스카팽’ 배리어프리 버전은 첫 장면부터 관객에게 ‘마법’을 건다. 몰리에르를 본뜬 동명 캐릭터와 함께 등장한 전담 수어통역사가 수어 통역뿐 아니라 몰리에르와 지팡이를 주고받으며 마치 그의 조수처럼 연기를 한다. 수어통역사들을 무대에 자연스럽게 있게 하기 위한 임 연출의 묘안이었다. 다른 수어통역사들도 배우의 그림자가 되어 소품 의자를 나르거나, 극중 연극의 관객처럼 자리하며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씨는 “공연 중 관객들 눈을 보게 되는데, 장애인·비장애인 관객들이 함께 흥미롭게 봐주셔서 뿌듯했다”면서 “비장애인 관객들도 공연을 장애인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느낀 바가 많았다고 하더라. 이런 시도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1997년 민간 수화통역사 자격증 시험 1기로 합격하며 이듬해 활동을 시작한 최 통역사는 2020년 김홍남 수어통역사와 함께 방송·강의·행사·문화예술콘텐트·교육 분야를 아우르는 공인수어통번역 회사 ‘잘함’을 설립했다. 1년에 두세 편 참여했던 배리어프리 공연은 코로나19 이후 10편으로 늘었다. 비대면 공연이 활성화하면서 수어통역 및 자막 제공 공연 영상물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극단만 해도 지난해 ‘로드킬 인 더씨어터’ 공연 전회차에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제공한 데 이어, 장애와 예술을 주제로 한 작품 개발 사업 일환으로 장애·비장애 배우가 함께 출연하는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 ‘커뮤니티 대소동’ ‘소극장판-타지’ 등을 개발하기도 했다.

최 통역사는 “아동극 배리어프리 버전도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청인 부모와 농인 자녀거나 그 반대의 경우 부모 자식 간에 대화가 힘든 가정이 많은데,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장애인도 연극을 경험할 저변이 확대될 수 있도록 더 다양한 장르, 다양한 극단 작품으로 배리어프리 공연 선택지가 늘어나면 좋겠다”면서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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