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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후 주차하고 왔으니 뺑소니" 9세 아들 잃은 엄마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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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2일 음주 차량에 치어 숨진 B군 사진을 어머니가 들어보이고 있다. 2살 터울인 여동생과 대부분 붙어 있어 혼자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고 한다. 지난 10월 운동회 때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사진 채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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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로 9세 아들을 떠나보낸 40대 어머니는 장례를 치르자마자 다시 거리로 나섰다. 가해자에게 뺑소니 혐의를 적용해 처벌해달라는 탄원서를 받기 위해서다. 아들이 다니던 학교 앞에서 7일 하루에만 주민들과 어머니회 도움으로 4500장의 탄원서가 모였다. 부모는 그 탄원서를 가슴에 품고 이날 오후 4시쯤 경찰서를 찾았다. 왜 그랬을까.



‘스쿨존 초등생 사망’ 뺑소니 혐의 미적용…유족 반발



7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4시 57분쯤 만취 상태로 차를 몰던 30대 남성 A씨는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 인근에서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이 학교 3학년 B군(9)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기준인 0.08% 이상이었다고 한다. 강남서는 이틀 뒤인 4일 A씨에 대해 이른바 ‘민식이법’으로 불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범죄가중법)상 어린이보호구역치사 혐의와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법은 다음 날인 5일 “범죄가 중대해 도주 우려가 있다”며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A씨에게 흔히 뺑소니로 불리는 특정범죄가중법상 도주치사 혐의가 적용되지 않은 점을 납득하지 못했다. 도주차량 운전자의 가중처벌을 규정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5조 3항에 따르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도주하거나 도주 후 피해자가 사망했을 땐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 어린이 사망 시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을 규정한 민식이법보다 형량이 무겁다. 특정범죄가중법상 도주치사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A씨에게 도주 우려가 없었다는 것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43초 지나 돌아온 가해자…뺑소니 해당?



경찰과 유족 설명을 종합한 2일 오후 상황은 이렇다. 당시 B군은 주 1회 방과 후 코딩 수업을 마치고 나와 언북초 후문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만취 상태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끌던 A씨는 언북초 후문 인근 자신의 집이 있는 골목 쪽으로 좌회전하려다 B군을 차로 쳤다. 그대로 집 주차장으로 운전해 차량을 주차한 A씨는 43초 뒤에 다시 현장을 찾았다. 사고 현장과 A씨 집 주차장의 실측 거리는 약 21m로 파악된다. 현장에 돌아온 A씨는 상인 등 주변에 신고 요청을 했다. 그러면서 주변 목격자 등에 “사람인 줄 몰랐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출동한 소방과 경찰 관계자에게 A씨는 본인이 운전자인 사실을 밝혔다. 경찰은 “사고 경위 등을 보강 조사 중이지만 혐의 변경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10일 이내 구속 피의자를 검사에게 인치하게 한 형사소송법에 따라 경찰은 조만간 A씨를 송치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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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언북초 후문 B군의 추모 공간. 친구들은 평소 '밀리터리 덕후'이던 B군이 좋아하던 비행기 등도 선물했다고 한다. 사진 채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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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족 측은 A씨 행동이 뺑소니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7일 중앙일보와 만난 B군 어머니는 “40초든 10초든 짧은 시간에 돌아왔다는 게 쟁점이 아니라 사고 즉시 차량에서 바로 내리지 않고 주차까지 한 다음 돌아왔기 때문에 명백한 뺑소니”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인 진술에 따르면 A씨가 구호 조치를 했다는 말도 없다”고 덧붙였다. B군 어머니는 “잠재력이 큰 아이라 어떻게 성장할지 궁금했는데 슬픔을 표현할 단어를 못 찾을 정도로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B군은 사망 당일 저녁 가족들과 유명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갈 계획이었다고 한다.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법무법인 엘앤엘)는 “즉시 정차 후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법이 규정한 의무에 따르지 않은 것”이라며 “사람인 줄 몰랐다는 진술은 뺑소니를 인정한 발언으로,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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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북초 후문 횡단보도를 지나 만들어진 B군의 추모 공간. 좁은 도로 탓에 인도가 따로 없어 학부모 민원이 빗발쳤던 곳이라고 한다. 사진 채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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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군이 숨진 자리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등의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과 조화 등으로 뒤덮여 있다. B군이 숨진 이후 영하를 오갔던 날씨 탓인지 핫팩도 놓여 있었다. 학교 측은 반 친구들이 받았을 충격을 고려해 이들에 대한 심리 치료에도 들어갈 예정이다.

언북초 주변은 인도 구분이 따로 없고 차량이 양방향으로 지나가 그동안 인도를 만들어달라는 민원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강남구청 측이 서울시교육청 요청에 따라 주변 도로를 일방향로로 바꿔 인도를 확보하려고 했으나 2020년 인근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B군이 사망한 뒤에야 용역을 통해 실태 파악에 나선 구청 측은 통학 길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추모객 서모(57·여)씨는 “후문이 경사로라 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어 스쿨존 규정 속도인 시속 20㎞도 지키기 힘든 구간이다. 예견된 사고”라고 말했다. 40대 학부모 이모(여)씨는 “민원은 계속 묵살하더니 아이가 죽은 뒤에야 기관이 움직이는 현실이 원통스럽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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