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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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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폭주 北 식량난…"20만원 생활비 송금, 이젠 200만원" [심상찮은 北 식량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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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온성 출신인 탈북자 A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곤 한다. 고향에 남겨두고 온 부모 걱정 때문이다. A씨는 "지난 10월 말 부모님과 통화에서 '최근 상황이 너무 힘들고 주변에 죽는 사람들도 계속 나오는데 원인은 분명치 않다'는 얘길 들었다"며 "부모님께 매달 20만원을 생활비로 보내드리면 충분했는데 이번에는 200만원을 보내드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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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투먼 세관과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을 연결하는 투먼대교의 모습.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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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최북단의 온성은 중국 지린성 투먼(圖們)과 맞닿은 접경도시다. 이곳 주민들은 상당수가 식량과 물자 밀무역으로 생계를 꾸려왔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다며 이동을 제한하고 장마당을 폐쇄해 지역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산비탈에 일궈 놓은 밭도 지난 여름 폭우로 모두 씻겨 내려가면서 식량 사정이 더욱 어려워졌다.



가뭄, 장마, 낮은 일조량에 작황 타격



올해 역대 최대로 많은 탄도미사일 63발을 쏘며 폭주한 북한이 내부적으론 식량난에 직면해 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봄 가뭄과 여름 호우 여파로 올해 작황과 식량 상황 악화가 예상돼 북한 당국이 양곡 징수를 독려하며 물량 확충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낮은 일조량과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북한의 식량사정이 상당히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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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국 농무부 산하 경제연구소는 지난 9월 '국제 식량안보 평가 2022-32' 보고서에서 북한이 올해 121만t 규모의 식량 부족을 겪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북한 인구 2590만 명에게 필요한 식량은 최소 연간 약 600만t이다. 121만t은 필요량의 20%다. 앞서 미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의 올해 식량 부족 규모를 2.3개월분에 해당하는 86만t으로 추정했는데, 이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에 벼 직파 기술을 보급했던 박광호 한국농수산대학교 식량작물학과 교수는 "한국도 올해 일조량 부족으로 곡물 생산량이 감소했다"며 "수확기에 광합성을 통해 탄수화물을 축적해야 하는데, 태양에너지 부족 현상이 한반도 전 지역에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비료는 물론 농작물의 병해충 피해에 대한 관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보다 생산량 감소 폭이 더 클 것이란 게 합리적인 추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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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0년 9월 황해북도 은파군 수해복구 현장을 찾아 벼농사 상황를 점검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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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북한의 식량 상황이 당장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할 정도는 아닐 것이란 의견도 있다. 탈북자 출신인 김영희 남북하나재단 대외협력부장(북한학 박사)은 "현재 북한 내 쌀·옥수수 등 주요 곡물 가격이 지난해보단 올랐지만 비교적 안정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한 당국이 현재로선 수요 공급을 통제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취지다.

단 지금은 수확기가 막 지난 데다 중·러의 지원으로 상황을 관리하고 있지만, 내년 3~4월 춘궁기에 큰 고비를 맞을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김 박사도 "겨울을 지나 춘궁기가 다가오면 올해 자연재해로 인한 생산량 감소가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고난의 행군 이후 최대 역성장



식량 사정을 방증하는 또 다른 지표는 북한 경제 상황이다. 북한 경제는 최근 5년 동안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가장 큰 폭의 역(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코로나19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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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은행이 지난 7월에 발표한 '2021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31조 4095억원으로 2020년(31조 4269억원)보다 0.1% 감소했다. 김 위원장의 집권 첫해인 2012년(33조8123억원)과 비교해서도 쪼그라든 수치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대북 경제제재와 북한의 적응력' 보고서에서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2016년 3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현 대북제재를 완성했다"며 "이 기간 북한의 GDP 규모는 약 12% 감소했고 광업과 중화학공업은 각각 51%, 30% 축소됐다"고 밝혔다.



코로나로 장마당 통제, 주민 생활 타격



북한은 그간 코로나19 방역을 과시해 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식량 상황이 악화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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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북한 양강도 혜산시에 위치한 장마당의 모습. 북한 당국은 지난 5월 12일 북한 내 코로나19 발병 사실을 공개한 이후 접경지역의 장마당 운영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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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 주민들은 과거 배급을 통해 식량을 얻었지만, 고난의 행군 이후 장마당에서 식량을 확보하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장마당 운영을 제한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생활하던 북한 내 중류층이 기존 경제 상태를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차문석 통일연구원 교수도 최근 토론회에서 "북한 당국이 지난 5월 12일 코로나19 발생 사실을 공개한 이후 봉쇄를 강화하면서 평양을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종합시장을 폐쇄했다"며 "북·중 접경지역에 인접한 도시의 공식 시장은 아직도 개장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제 곡물가 상승도 원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국제 곡물·비료 가격 상승도 북한의 식량사정을 압박하고 있다. 김일한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교수는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국제 곡물 가격이 상승하면서 북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대북제재, 무역 축소로 북한 당국의 투자재원이 부족해진 것도 식량·비료 수입에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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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식량난이 시간이 갈수록 더 나빠질 것이라는 가능성이 높자 북한 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원래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초기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주석 생일 100주년 열병식에서 첫 공개연설을 하면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하지만 2017년 11월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먹는 문제를 거론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지난해 6월에는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며 식량난을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먹는 문제는 김정은 정권의 최우선 정책 과제다.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8기 4차)에서 닷새의 회의 기간 중 사흘을 식량난 해결을 위한 농촌 발전 문제 토론에 할애한 게 이를 방증한다.

북한 당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식량 문제가 체제의 안정이나 김정은 리더십에 위협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에서 기자로 일했던 문성희 박사는 지난 11월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서 "북한 사람들은 정치에 관해서 의견을 말하지 않고 지도부의 지시를 묵묵히 따라가는 편이지만, 자기 생활·생계와 관련한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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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8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7형'의 시험발사를 딸과 함께 지켜보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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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선택, 후대에 식량 대신 ICBM 남기겠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의 선택은 식량이 아닌 핵무력에 가 있다.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해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고 대미 협상력을 키우는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후대에 식량이 아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남겨주겠다는 전략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과도한 무력도발이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김정은 정권이 갈림길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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