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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만물상] 베트남, 적국에서 ‘기회의 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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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3세기 초, 베트남 리(李) 왕조의 왕자가 왕조 교체기를 피해 중국 송나라를 거쳐 고려로 망명했다. 그가 대몽고 전쟁에서 공을 세우자 고려 고종은 황해도 금천군 화산 땅을 하사하며 그를 화산군(花山君)으로 봉했다. 화산 이씨의 시조다. 베트남 정부는 화산 이씨를 리 왕조 후손으로 인정해 세금, 사업권, 출입국 면에서 베트남 국민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거대 제국 중국과 이웃한 탓에 한국과 베트남은 비슷한 역사적 시련을 겪었다. 한나라가 북베트남엔 한구군을, 고조선 땅엔 한사군을 설치했다. 당나라 땐 베트남에 안남도호부를, 고구려 땅엔 안동도호부를 설치하며 지배력을 행사했다. 식민지를 거쳐 분단, 전쟁을 경험한 과정도 비슷하다. 세계 최강 미국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두 전쟁터가 한국과 베트남이었다. 6·25 전쟁은 미군이 처음으로 승리하지 못한 전쟁이고, 베트남에선 치욕적 패배를 당했다. 한국이 미국 편에 서서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두 나라는 적국이 됐다.

▶냉전 종식으로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이 다시 수교를 맺을 당시, 한국 외교팀은 베트남이 전쟁 배상 책임을 요구할 것을 대비해 대응 논리를 준비했다. 그런데 협상 과정에서 일언반구도 없었다. 수교 도장을 찍은 뒤 베트남 외교관에게 이유를 묻자 “과거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당시 베트남 측 협상 실무자였던 팜 띠엔번은 남북한 대사를 25년간 역임한 한국통이다. 세 아들 중 첫째는 한국 대기업 직원, 둘째는 주북한 대사, 셋째는 주한 베트남 대사관 직원으로 근무하며 대를 이어 한·베트남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수교 30년(12월 22일) 만에 양국은 경제 공동체가 됐다. 올해 베트남은 중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무역흑자국에 올랐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4000여 개, 고용 인원은 100만명에 달한다. 베트남 수출에서 한국 기업 비중이 35%를 차지할 정도다. 한국 기업 보수가 베트남 기업의 2~3배에 달하다 보니 한국어 배우기 붐이 일고 있다. 한국어가 영어를 제치고 베트남의 제1 외국어가 됐다고 한다.

▶한국과 베트남은 양국 청년에게도 서로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한 한국 청년은 베트남에서 중고 오토바이 거래 플랫폼(OKXE)을 창업해 매달 10만대 이상 거래를 중개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반대로 베트남 엘리트 청년들이 유학 후 한국에 정착해 교수, 경찰관, 공무원,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으로 자리 잡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때 총부리를 겨눴던 적국이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공생 관계로 거듭났다.

[김홍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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