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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수요동물원] ‘백수의 왕’은 어쩌다 하이에나 밥상에 올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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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사체 뜯어먹는 하이에나 무리 포착

하이에나 잡아먹는 사자와 표범도 발견돼

영양가 없는 육식동물 먹어야 하는 극한 상황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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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의 악당인 수사자 스카의 최후는 비참했습니다. 심바의 일격에 내동댕이쳐지면서 자신과 동업자 관계였던 하이에나 무리들과 맞닥뜨립니다. 스카의 느닷없는 배신에 분노한 하이에나들이 때로 스카에게 달려들며 다음 화면으로 넘어갑니다. 스카가 하이에나들의 밥이 됐을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이지요. 비현실적 설정이 실제로 자연에서 일어남을 보여주는 사진 한장이 공개돼 화제입니다.

동물 사진 및 동영상 관련 인스타그램 계정 ‘네이처마타타’에 최근 올라온 인스타계정(@zealwildlife)사진입니다. 피와 살과 뼈가 훤히 드러나 엉겨붙어있는, 보는 것만으로도 썩은내가 코를 찌르는듯한 짐승 사체를 하이에나들이 탐식하고 있는 모습은 썩 드문 장면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체의 주인공은 임팔라도, 누우도, 물소도, 코끼리도 아니었습니다. 사바나의 제왕 사자였습니다. 거죽이 벗거져 살코기와 뼈가 눌어붙어있지만 그리 멀지않은 시간 전까지 사바나를 호령했을 야수의 얼굴이 선명합니다. 조금 들어올려진 눈꺼풀 안으로 눈동자도 선명할 듯 합니다. 성성한 갈기가 없는 것으로 봐서 암컷으로 단정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막 어른으로 성숙해갈 젊은 수컷일 수도 있겠네요. 하이에나는 사바나의 맹수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턱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혼이 빠져나가 썩어문드러진 고깃덩이가 되어버린 사자의 몸뚱이를 으적으적 씹어삼키는 건 누워서 떡먹기보다도 쉬울 듯 해보입니다.

이 가련한 사자는 어쩌다 하이에나들의 식탁에 올랐을까요? 처절한 싸움 끝에 죽임을 당해 잡아먹히게 된 걸까요? 아니면, 부상을 입었거나 병에 걸려 죽은 사체들을 하이에나들이 취하고 있는 것일까요? 쉽게 보기 어려운 장면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비록 위계서열은 엄격하지만, 사바나에는 4대천왕이라고 불릴만한 맹수들이 있습니다. 월드컵 조편성에 빗대자면 시드는 단연 사자이죠. 그리고 2~3등을 다투는 표범과 하이에나가 있으며, 그 아래 치타가 위치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어마무시한 조직력으로 무장한 리카온과, 적응력 만렙의 재칼도 무시할 수 없는 플레이어죠. 탐사장비의 기능이 향상되면서, 육식동물과 초식동물로 구성되는 포식·피식 관계를 탈피한 뜻밖의 장면이 최근 잇따라 포착되고 있습니다. 다음 보실 장면은 사바나의 넘버2를 다투는 영원한 맞수 표범과 하이에나가 등장하는 살육극입니다. 우선 동영상(Animal World facebook) 한 번 보실까요?

표범은 기습공격의 달인입니다. 매복해서 먹잇감을 덮쳐서 으스러뜨린뒤 입에 물고 나무로 올라가서 가지위에 걸쳐놓고 두고두고 먹는 특유의 식사법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번에도 표범은 성공한 사냥감을 나뭇가지 위로 끌고 올라가 장기간 저장해두며 음미할 태세를 갖췄습니다. 그런데 그 상대방은 바로 동급 라이벌인 하이에나입니다.

조선일보

/Animal World facebook 캡처 표범이 물어죽인 뒤 나뭇가지로 옮기는 특유의 사냥법으로 잡은 하이에나를 막 먹으려 하고 있다.


축 늘어져있지만, 개와 고양이를 반반씩 섞어놓은 듯한 하이에나의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나있습니다. 정확한 곡절은 파악하기 어렵겠지만, 산 동물을 표적으로 삼는 표범의 습성상 이 하이에나는 매복 공격에 의해 희생됐을 공산이 큽니다. 그런데 하이에나는 ‘표범밥’ 뿐만이 아니라 ‘사자밥’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유튜브(Wild Stories) 동영상 한 번 보시죠.

사자는 같은 처지에 놓인 수컷간 연대가 매우 강한 동물입니다. 무리를 점령하기 전의 젊은 놈들끼리 무리를 이루며 함께 사냥하며 팀워크를 다지기도 하죠. 주요 먹잇감은 영양이나 누우, 혹멧돼지입니다. 이런 먹잇감들을 두고 하이에나와 다툽니다. 잡은먹잇감의 피냄새를 맡고 접근하는 하이에나와 격렬하게 싸우는가하면, 하이에나들이 공들여 잡은 먹잇감을 강탈하기도 하죠. 하지만 지금처럼 협업을 해서 하이에나를 잡은뒤 그 자리에서 먹어치우는 장면은 여간해선 보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하이에나의 눈의 흰자위에서 죽음에 대한 절절한 공포가 느껴지고, 숨통이 끊어짐과 동시에 몸뚱이를 찢어발겨 살코기를 흡입하듯 먹어치우는 사자들에게서 삶의 절절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조선일보

/Wildlife Stories 유튜브 캡처 수사자가 하이에나를 덮친 뒤 바로 목덜미를 물어 숨통을 끊기 일보직전의 모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맹수가 맹수를 잡아먹는 현상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이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는 극한의 상황이 도래했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장으로 재직하며 오랫동안 아프리카 맹수들을 돌봐왔던 어경연 세명대 교수는 “사바나의 맹수들 뿐 아니라, 선사시대 인류의 삶의 흔적이 담긴 동굴벽화를 보면, 공통적으로 발굽이나 뿔 달린 동물들이 주된 식량으로 소비됐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들 초식동물로부터 영양분을 섭취해 신진대사를 이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오래전부터 구축돼왔다는 것이죠. 실제 이들 먹잇감 동물들의 공통점은 정육, 즉 살코기가 상대적으로 많이 발달됐다는 점이라고 어 교수는 진단합니다.

조선일보

/Wildlife Stories 유튜브 캡처 수사자가 하이에나를 덮친 뒤 바로 목덜미를 물어 숨통을 끊기 일보직전의 모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때문에 육식동물이 육식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초식동물을 먹을 때보다 신진대사에 도움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굶을 수는 없는 상황에서 취해지는 불가피한 조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사자가 하이에나를 취하고, 표범이 사자를 노리는 상황은 생태계가 일단은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신호로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약간의 부작용과 반작용을 수반하겠지만 자연은 스스로 다시 굴러가기야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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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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