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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청담동뿐이랴… 서울 곳곳에 인도 없는 통학길 ‘아찔’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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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존 안전 우려 고조

인근 논현동 초교도 사정 비슷

차도 한쪽 좁은 공간 인도 활용

비탈길 대형차 통학로 침범 일쑤

서울시 “통학로 실태조사 못해”

교육청 ‘일방통행구역 지정’ 요청

“차량통행 불편” 주민 반대로 좌절

청담동 운전자 ‘뺑소니’는 무혐의

“뒤에 오는 차가 신경 쓰여 항상 두리번거려야 해요.”

지난 5일 오후 3시30분쯤 서울 강남 논현동의 A초등학교 정문 앞. 방과 후 수업을 마친 김모(10)양은 학교 정문 밖으로 나서자마자 들려오는 차량의 소리에 멈칫하며 뒤를 돌아봤다. 김양은 길모퉁이에 비켜서서 차량을 보내고 나서야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김양은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사거리에서 또다시 차량이 오지 않나 두리번거렸다.

세계일보

서울 강남 논현동의 한 초등학교 인근 스쿨존에 인도가 없는 오르막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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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강남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의 인도가 없는 골목길에서 3학년 남학생이 음주 차량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인도가 없는 초등학교 통학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취재진이 둘러본 A초등학교의 통학길은 아슬아슬해 보였다. 이 학교는 사고가 발생한 언북초와 도보로 약 20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 정문으로 통하는 길은 차량이 오가고 있는데, 학생들이 다닐 수 있는 통학로는 노란선으로만 차도와 구분돼 있었다. 그마저도 폭이 좁아 성인 남성 한 명 정도만 오갈 수 있을 정도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덩치가 큰 차량이 지날 때는 노란선을 넘어 통학로를 침범하는 모습도 왕왕 보였다. 인근 골목으로 빠지는 오르막길은 구분선조차 없이 차도만 있었다. 이런 탓에 학부모들은 직접 아이를 데리러 오는가 하면, 학교 보안관 등이 일부 학생의 하굣길에 동행하기도 했다.

자녀를 데리러 나온 40대 김모씨는 “길 폭이 좁아 마치 자동차와 사람이 붙어 다니는 것 같다”며 “아이들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학교 보안관들이 통제를 해주지만 방과 후 활동 등에는 전부 관리를 하기 어렵다. 아이한테 언제나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직접 데리러 가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B초등학교 상황도 비슷했다. 학생들은 학교 담벼락에 붙어 차가 지나는 길 위에서 위태롭게 오갔다. 곳곳에 전봇대와 안내 표지판이 그 좁은 길마저 가로막아 아예 차도로 지나는 학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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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울시·강남구청 등 관내 학생들의 안전을 관리해야 할 지자체는 인도가 없거나 열악한 스쿨존에 대한 실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세계일보의 문의에 “인도 없는 스쿨존 현황 등 전체적으로 조사된 내용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전주시는 지난달 도로를 보행자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밝히면서, 관내 인도가 설치되지 않은 11개의 스쿨존 구간을 파악해 통학로를 개설하고, 관련 안전 조치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러한 지자체의 노력이 다른 곳으로도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학생들의 통학길 안전 강화 조치를 위해선 ‘주민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사고가 발생한 언북초도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폭이 좁은 도로에 인도를 설치하는 방안이 추진됐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2020년 1월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서울시교육청이 강남경찰서에 공문을 보내 보도를 설치하기 위한 일방통행 운영 검토를 요청했으나 경찰의 심의 전 구청이 실시한 의견 수렴 절차에서 주민 50명 중 48명이 반대해 일방통행 전환 및 보도 설치는 이뤄지지 못했다. 차량 통행 불편 등이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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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구청과 경찰이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등의 행정력을 발휘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지자체나 경찰이 주민 반대나 예산 문제로 스쿨존 안전 강화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결국은 의지의 문제”라면서 “책임자들이 적극적으로 주민들을 설득하고, 불편에 대한 개선 방안 등 소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엇보다 운전자의 안전 의식을 높이기 위한 관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며 “현재는 교통 법규가 바뀌면 운전자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추상적인 인지만 할 정도로 교통안전 교육이 부실하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청담동 초등학생 음주 차량 사망 사건 피의자에게 ‘뺑소니’ 혐의를 적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 남성의 차량이 대형 SUV라 피해자가 보이지 않았고, 사고를 낸 뒤 2m 떨어진 자신의 집 주차장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밖이 어수선하자 40초 만에 사고 현장으로 돌아온 점,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이웃들에 119신고를 요청하는 구급 조치를 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특별했던 아이를 황망하게 떠나 보내다니 믿기지 않는다. 수사와 재판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글·사진=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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