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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아파트 무너져 깔린 '6명'…소방관이 목숨 걸고 꺼냈다[인류애 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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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세상과 사람이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반대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도, 선한 이들도 많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현장 구조에 자원한 이형재 광주 광산소방서 소방교(39), 또 무너질 수 있는 위험 무릅쓰고 매몰된 세 인부 꺼내…"가족분들께 고인 전한 뒤 울 때 맘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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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층부터 38층까지 와르르 붕괴된 광주 화정 아이파크 현장서 올해 1월, 동료와 함께 매몰자를 수색 중인 이형재 소방교(가운데)./사진=이형재 소방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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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1월 11일 오후 3시 46분쯤, 초유의 붕괴 사고가 벌어졌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신축 공사 현장에서였다. 아파트 한 동의 23층부터 38층까지 거의 다 와르르 무너졌다. 그곳에서 일하던 인부 6명이 엄청난 건물 잔해에 매몰됐다. 한 명은 사고 이틀 만에 1층 난간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나머지 다섯 명을 찾지 못했다.

인부 가족들은 사고 현장 아래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녀오겠다며 출근했고, 살아가기 위해 쌓아 올렸고, 그게 무너지며 그 안에 깔렸고, 생사도 모른 채 퇴근하지 못한 소중한 이들을.

추가로 또 붕괴될 수 있는 초고층 지역, 거기서 매몰자를 찾아야 했다. 다들 꺼릴만한, 전례 없는 위험한 현장이었다.

광주 광산소방서에서도 소방관들이 동원됐다. "누가 갈래?"란 말에 몸이 먼저 반응한 이가 있었다. 과거 붕괴 사고 현장서 특수구조대를 했었던, 이형재 소방교(39)였다. 광주 학동에서 재개발을 위해 철거하던 빌딩이 무너져 시내버스가 매몰됐을 때, 거기서도 시민들을 수습했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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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생명존중대상을 수상한 이형재 소방교./사진=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그리 29일 만에, 여섯 명의 인부가 모두 바깥으로 나왔다. 전부 숨져 있었다. 그중 세 사람을, 이 소방교가 직접 수습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듯, 일일이 찾고 찾아 유족들에게 고인을 전했다. 그는 장시간 희생하며 타인을 수습한 일을 인정받아, 지난 1일 '2022 생명존중대상'을 수상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2009년부터 생명을 살린 전국의 경찰·소방·해경·일반인들을 기리어 주는 귀한 상이다.

소감을 묻자 "그냥 얼떨떨했다"며 담백하게 웃는 이 소방교를 만나, 그 당시 이야길 들어봤다.


방화복 입고, 매일 38층 계단 올라…돌 떨어지고, 바닥 기울어져 위태로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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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층부터 38층까지 와르르 붕괴된 광주 화정 아이파크의 위태로운 현장. 추가 붕괴 위험이 있어, 장시간 동안 소방관들이 수색하는 게 정말 힘든 일이었다./사진=이형재 소방교 제공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현장 사진이 떠올랐다. 외벽이 새까맣게 허물어져, 금방이라도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두려운 광경. 그래서 이 질문부터 했다.

형도 : 굳이 그 위험한 현장을 자처하신 이유가 뭘까요.

형재 : 지난해 12월까지 '특수구조대'에 있었거든요. 붕괴 사고가 특수 사고고, 특수구조대 전담 업무라서….

형도 : 그렇지만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가 났던, 올해 1월엔 특수구조대가 아니셨잖아요.

형재 : 그렇죠, 일반 구조대였는데. 근데 어차피 다 같은 직원들이니까요. 학동 붕괴 사고(지난해 6월) 때도 수습했었는데, 실제 한 번 더 겪어봐야 알 것 같았어요.

형도 : 그렇게 엘리베이터도 없는, 위험한 붕괴 현장까지 오르기 시작하신 거고요. 상층부에 매몰된 작업자 분들을 찾기 위해서요.

형재 : 새벽 6시 반에 나가서 밤 9시까지 수색했지요. 38층까지 방화복 입고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고 그랬어요. 한 번 올라가면,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지쳐버렸죠.

형도 : 눈으로 직접 보신 붕괴 현장은 어떠셨을지요.

형재 : 바닥이 기울어져 있고 4개 층 높이의 잔해물이 쌓여 있었어요. 위험했던 게 돌이 계속 떨어지고, 추가 붕괴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한 번은 작업하는데 30층 정도에서 엄청 큰 잔해물이 떨어졌어요. 동료 두 명이 죽을뻔했지요.


두려움 이기게 하는 건, 팀원들에 대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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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를 믿고, 나도 동료에게 그런 믿음을 준다, 현장에서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팀원들에 대한 신뢰라고 했다. 이형재 소방교의 말이다. 사진은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현장서 매몰자를 발견하고 꺼내고 있는 모습./사진=이형재 소방교


그러면서 이 소방교는 당시 추가로 무너졌단 붕괴 현장 사진을 보여줬다. 백척간두에 소방관들이 있었다. 정말 위태로워 보였다. 죽을 수 있단 걸 알면서, 불가능해 보이는 현장에서 누군가를 구해낸다. 숭고한 말이다. 그 말은 쉽다. 그러나 너무 두려울 것 같았다.

형도 : 진짜 위험하잖아요.

형재 : 사람들은 잘 모르시지만 (희미한 웃음)…네, 그렇지요. 근데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하잖아요.

형도 :두려움을 어떻게 다루시는 건가요. 현장에 집중하시다 보면 잊으시는 건지, 아니면 무섭지만 극복하시는 건지요.

형재 : 팀원들 믿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쉬는 날에도 많이 연습하지요. 로프 경연대회도 나가고, 전국 1등도 했고요. 보여주려 하는 게 아니에요. 잘못하면 제가 죽을 수도 있고, 내 동료가 죽을 수도 있는 거니까. 어차피 같이 들어갈 사람들이잖아요.

형도 : 그래도 조심히 하셔야 해요.

형재 : 무리해서 하지 말자고 해요. 동료가 몸 안 좋다고 하면, "그냥 쉬어" 이런 주의지요. 너까지 쓰러지면 안 된다고, 장난이지만 진심으로 말해요. 저도 푹 쉬며 하고 있어요.

형도 : 꼭 이요. 다시 화정 아이파크 구조 현장 얘길 해볼게요. 구조 작업은 어떻게 하셨던 건가요?

형재 : 생체 징후가 있으면 진동으로 알려주는 장비가 있는데, 감지가 안 되더라고요. 날씨도 너무 추웠고요. 내시경으로 봐도 안 보이고요. 구조견들 반응 보면서, 의심 지역을 중심으로 수색했지요. 장갑이 보인다, 그러면 그쪽으로 집중적으로 파보고요.


울던 유가족을 보며, 속으로 삼킨 말…"더 빨리 꺼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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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를 믿고, 나도 동료에게 그런 믿음을 준다, 현장에서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팀원들에 대한 신뢰라고 했다. 이형재 소방교의 말이다. 사진은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현장서 매몰자를 발견하고 꺼내고 있는 모습./사진=이형재 소방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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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헤딩하듯이, 이 소방교를 포함한 구조대원들은 매일 방화복을 입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격일로 그렇게, 부단히 수색했다. 쉬어도 쉬는 게 아녔다. 계속 차에서 대기하고, 아픈 허릴 붙잡고 꾸벅꾸벅 졸았다. 그런 노력 덕분에, 마침내 매몰자들을 한 명씩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시작이었다.

형도 : 잔해가 얼마나 쌓여 있었겠어요. 매몰된 인부의 위치를 알았다고 해도, 파내시는 것도 너무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형재 : 발견했을 땐 금방 꺼낼 줄 알았어요. 아, 저기 계시구나 했지요. 어떻게 하질 못하겠더라고요. 꺼내는 부분이 낭떠러지일지도 모르고요. 로프 하나 걸어놓고 거기에 의지했었죠.

형도 : 그런 상황이면 어떻게 꺼내야 하는 건가요.

형재 : 인부 분을 누르고 있는 철근, 시멘트, 콘크리트 덩어리가 너무 많잖아요. 어쩔 수 없이 위에서부터 계속 깨나갔어요. 철근은 하나하나 다 자르고요. 눌려 있는 양이 많아서, 잘못 파내다가 잔해물 쏟아지면 구조대원들도 너무 위험해지니 조심스러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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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13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신축공사 붕괴사고 현장에 마련된 피해자 합동분향소에 조화가 놓여져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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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도 : 그렇게 한 분씩 찾고, 또 꺼내신 거고요. 너무너무 고생이 많으셨어요.

형재 : 오른쪽 장갑이 요만큼 보이는 분이 있더라고요. 몸은 엄청 깊이 들어가 있고요. 머리가 위쪽으로 돼 있던 분도 계셨어요. 아래쪽 다리가 철근과 전선으로 감겨 있었지요. 제 몸을 집어 넣어서 다 잘라내고, 위에서 당기고 그랬습니다. 이런 말씀은 조심스럽지만…여름이 아니라 겨울이어서 그래도 좀 나았어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한여름에, 고인이 돌아가신 지 2주 된 집의 특수청소를 해봤었다. 처음 맡아보는 생경하고 힘든 냄새였다. 하물며, 숨진 이의 몸 가까이에서 철근을 하나씩 자르는 일이란. 단지 고단함, 위험함만 있는 게 아니라 그 너머의 무언가를 더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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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27일 오전 광주 북구 영락공원에서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희생자 영결식이 진행됐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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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 소방교가 직접 수습한 사람만 3명이었다. 집중적으로 발견이 된 곳이 있었단다.

형도 : 살아 있으셨다면 좋았겠지만요. 발견하신 분들을 가족분들과 만나게 해주신 거군요.

형재 : 세 분을 다 꺼내고,시신을 운구하는 걸 보고, 구급차에 태워 보냈어요. 아래서 기다리던 유가족 분들이 막 보고 우시더라고요. 진짜 마음이 안 좋았지요. 되게 죄송한 거지요, 그때는.

형도 : 어떤 게 죄송하셨던 걸까요.

형재 : 좀 더 빨리 꺼내드렸어야 했는데…막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깔린 버스에서 수습한 남학생의 기억…핸드폰 벨소리만 계속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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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9일 오후 4시22분쯤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 1동이 무너져 도로를 달리던 시내버스와 승용차 2대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119 구조대가 사고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처참하게 찌그러진 시내버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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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이 소방교는 많은 생명을 살렸다. 지난해에만 인명 구조 활동을 한 게 385건. 120명을 위험한 순간에 구해냈다. 지난해 6월, 17명의 사상자가 나온 학동 철거건물 붕괴 참사 때도 구조하러 갔다.

형도 : 학동 붕괴 참사 땐 어떻게 가시게 된 건가요.

형재 : 그때도 매몰자를 수색했었어요. 쉬는 날이었는데, 전날 공장 화재 때문에 밤을 샜었어요. 한 2시간 잤는데, 같은 팀 동생에게 전화가 오는 거예요. 와야 한다고, 건물이 무너져 버스가 깔렸다고. 동영상 보니 난리가 났더라고요.

형도 : 그래서, 현장은 어떤 상황이었나요.

형재 : 부상자는 대피했고, 잔해에 매몰된 버스 안에 망자(亡者) 분들이 계셨죠. 세 분은 수습했고, 여섯 분이 남았고요. LNG(천연가스) 시내버스였는데, 지붕이 눌려 있었어요. 다 잘라서 올리라고 했지요. 그리고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갔고요.

형도 : LNG 버스면, 가스 때문에 많이 위험했을텐데요.

형재 : 가스가 한 번씩 팍팍 새더라고요. 스파크 튀면 화재 위험성이 있으니까, 밖에서 물을 뿌려줬어요. 6월이라 엄청 덥기도 했지요. 그렇게 여섯 분을, 버스에서 다 꺼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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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 학동에서 열린, 광주 학동 붕괴 참사 희생자 추모제에서 유가족들이 헌화와 분향을 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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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도 : 정말, 정말 고생하셨네요. 이 현장도요.

형재 : 마지막에 나온 분이 마음이 많이 안 좋았어요. 남학생이었고요. 밖에선 어머니가 "우리 아들 저기 있어요"라며 막 우시는데, 저랑 눈이 마주쳤어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지요. 학생의 핸드폰 벨소리가 계속 울리더라고요. 아직도 그 생각이 나서 맘이 아픕니다.

형도 : 힘든 현장을 겪으시다 보면, 심리적으로 힘드실 텐데요. 그런 건 괜찮으신가요.

형재 : 다들 걱정하시는데, 의외로 저는 괜찮아요. 첫 출동이 자살하신 분이었는데, 담 넘어서 들어갔는데 바로 마주친 거예요. 두 번째 출동도 그런 분이었는데, 처음보단 낫더라고요.

그런 그에게 뭐라고 도움이 되고 싶어서, 힘든 점이 있는지를 끝으로 물었다.

형도 : 제일 힘드신 부분은 어떤 걸까요.

형재 : 현장에선 뭐든 다 괜찮은데, 출동했을 때 아무 정보가 없는 게 힘들어요. 산악 사고, 실종자 수색, 위치 추적 같은 출동이 많은데 정보도 없고 경찰 공조도 안 될 때요. 관내는 넓고 출동해야 할 곳도 많은데, 공조도 안 되고 시간만 갈 때 너무 아깝지요. 경찰과 보다 공조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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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를 취해달란 이야기에, 인터뷰가 끝난 뒤에야 미소를 지어보이던 이형재 소방교. 마스크는 쑥스러워 벗지 않겠다고 했다. 밝고 재밌는 소방관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원래 성격이 그런 편이라며. 현장에서도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동료들을 안심시키는 든든한 소방관./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이형재 소방교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다. 형, 누나, 어머니는 그를 늘상 걱정하며 말한단다. "위험한 곳 가지 마", "절대 들어가지 말아라". 이 소방교가 그럴 때마다 대답한다. "그럼 누가 해?" 몸조심하며 한다고 해도 늘 불안한 게 가족 마음, 그야 어쩔 수 없다지만.

고되고 때론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 소방관이란 숭고한 무게. 2018년 처음 소방관이 됐을 땐 몰랐겠으나, 4년이 지난 지금은 잘 알 터였다. 그래서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소방관이 될 거냐고. 이 소방교가 대답했다.

"할 것 같아요. 다시 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어린 나이에, 더 빨리할 것 같아요."(이형재 소방교)

"더 빨리 소방관이 되고 싶으시다고요?"(기자)

"그럼 더 많이 경험하고 더 잘해서, 더 많이 구할 수 있을 테니까요."(이형재 소방교)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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