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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북한 속내를 아는 자'의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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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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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청와대 컨트롤타워로 지목된 서훈(가운데) 전 국가안보실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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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68·구속)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한국 공무원으로 북한에 상주했던 최초의 인사다. 1980년 안기부(국정원 전신)에 들어가 주로 대북 파트에서 근무한 그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함경남도 신포시에서 경수로 건설에 착수한 1997년부터 2년간 현장사무소 한국 대표를 지냈다. 당시 미국·일본 대표와 함께 북측과 다양한 협상을 진행한 일은 북한 사람들의 화법이나 사고방식을 체득하는 기회가 됐다. 오랜 업무 파트너였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서훈을 통하면 북쪽의 진의를 감지할 수 있다"고 했다.

□ 서 전 실장은 3개 정부에 걸쳐 남북정상회담에 관여했다. 신포에서 돌아온 이듬해인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5 회담이 첫 작품이었다. 대북특사였던 박지원 장관을 수행해 베이징에서 북측과 비밀협상을 했고, 임동원 국정원장이 김정일을 만날 때도 동행했다. 국정원 3차장이던 2007년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10·4 회담의 막후에서 뛰었다. 그해 말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다음해 3월 퇴임했다.

□ 국정원장으로 9년 만에 금의환향한 문재인 정부 시절이 전성기였다. 북한의 전례 없는 핵·미사일 도발로 고조된 2017년 위기는 해를 넘기자마자 대화 국면으로 급반전했고, 정부 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런 상황을 예견했던 그는 이듬해까지 이어진 남북·북미 연쇄 정상회담을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조율했다. 한반도 평화의 낙관적 기대는 2019년 2월 북미 정상의 '하노이 노딜'로 좌초했다. 그는 이듬해 7월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두 달 뒤 처리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2년이 지나 구속 사유가 됐다.

□ 문 전 대통령은 서 전 실장 구속 당일인 4일 페이스북 글에서 그를 '오랜 연륜과 경험을 갖춘 신뢰의 자산'이라 부르며 "그런 자산을 꺾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고(故) 이대준씨가 북한군에게 피살됐다는 첩보를 삭제하라고 지시하고, 이씨가 자진 월북한 걸로 비치게끔 보고서를 쓰도록 했다는 게 서 전 실장의 혐의다. 사실이라면 매우 엄중한 사안이라 감히 호도하려 들 일이 아니다. 다만 남북관계 40년의 산증인으로서 그의 가치를 폄훼할 필요는 없다. 그게 실패담일지라도 말이다.

이훈성 논설위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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