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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화물노동자는 사업자?…화물연대 조사하려 ‘NCND’ 깬 공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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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공정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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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에 대한 공정위의 현장조사에 앞서 화물노동자는 개인 사업자라는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가 심의를 준비하고 있는 민주노총 건설노조 부산건설기계지부(건설노조) 사건에서 건설노동자를 사업자로 판단했으니, 화물노동자 역시 사업자로 봐야한다는 취지다. 조사 중인 사건에 대한 공정위의 NCND(Neither Confirm Nor Deny·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원칙을 공정거래위원장이 직접 나서 깨뜨린 건데, 경쟁당국 수장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 화물연대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 검토…현장 조사 시도


공정위는 지난달 29일 화물연대 총파업과 관련해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2일부터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현장 조사가 화물연대의 반발로 어려워지자 한 위원장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고의적인 현장 진입 저지가 계속될 경우 고발 등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한 위원장은 “공정위는 화물연대에 소속된 화물차주를 사업자로 판단하고 있고, 이와 유사한 건설노조 건에서도 (노조 조합원을) 사업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조사 중인 사건 ‘비공개’ 방침 깬 공정위원장


한 위원장이 언급한 건설노조 건은 건설노조 부산건설기계지부가 비노조 사업자와의 계약을 해지하도록 건설사에 압력을 행사하고 소속 노조원의 작업 활동을 제한한 사건을 뜻한다. 해당 사건의 주요 쟁점 역시 노조원의 사업자성 여부다. 노동자에게는 공정거래법(부당공동행위)을 적용할 수 없다. 공정위는 건설 노조의 사업자성 여부에 대해서도 함구해왔다. 사건의 주요 쟁점에 대한 공정위 판단을 심의 전에 공개할 경우 심의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다.

지난달 14일 공정거래위원장 기자 간담회에서도 신동열 카르텔 조사국장은 “건설노조 건은 사업자로 볼 것이냐. 아니면 완전히 노동조합으로 볼 것이냐. 그런 문제가 있어 논란이 있다”며 “위원회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적절하게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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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가 6일 오후 광양항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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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건은 여전히 심의 준비 단계에 있는 사건이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장이 화물연대 현장조사에 대한 명분을 내세우려 ‘비공개’ 방침을 깨트렸다.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 중인 사건은 NCND 원칙”이라며 “위원장이 조사 거부 행위에 대한 부당성을 설명하려다 (건설노조)건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정위, ILO가 인정한 노동자에 대해 섣불리 ‘사업자’ 결론


문제는 화물연대에 대한 사업자성 판단이다. ILO(국제노동기구) 제87호, 제98호 협약은 특수고용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노동자를 노동3권을 보장하는 노동자로 간주한다. 때문에 논란 중인 사안에 대해 공정위가 섣불리 결론을 내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장은 전원회의 의장(판사 역할)이기도 하지만 조사와 관련해서도 최고 의사결정자”라며 “위원장이 사건에 대한 조사 방침을 밝히면서 사업자인지 사업자가 아닌지 명확하지 않지만 조사하겠다고 하면 이상하지 않겠나. 그런 측면에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공정위가 조사 전부터 화물연대 파업을 ‘불법’으로 단정하고 노동자를 압박하고 있다고 본다.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공정위에서 화물연대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도 그렇지만 조사 전에 사업자성을 예단했다는 것도 문제”라며 “지금 공정위의 행태는 불법 여부를 가리기 위한 조사가 아니라 정부의 노조 대응 프로그램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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