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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조도 넘었지만, 토너먼트 징크스에 또 발목잡힌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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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차기 끝에 크로아티아에 패배... 여러 의미있는 기록 세워

오마이뉴스

▲ 5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의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일본 대 크로아티아 경기 승부차기에서 일본의 1번 키커 미나미노 다쿠미(27·AS 모나코)가 실축한 뒤 셔츠로 얼굴을 가리며 슬퍼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강호 스페인과 독일을 상대로 승리하며 이변을 일으켰던 일본은 이날 2018 러시아 월드컵 준우승팀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분전했으나, 끝내 승부차기에서 패배해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이어 두 대회 연속 16강에서 월드컵을 마감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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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축구에게 8강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일본축구의 월드컵 토너먼트 첫 승 도전도 또다시 코앞에서 좌절됐다.

일본은 12월 6일(한국시간) 카타르 알 자누브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로아티아와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16강전에서 정규시간 동안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으나 승부차기 끝에 1-3으로 석패했다.

앞서 호주는 4일 아르헨티나와 16강전에서 1-2로 패했다. 뒤이어 벌어진 경기에서 한국도 브라질을 상대로 1-4로 완패하며 AFC 소속으로 이번 월드컵에서 나선 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퇴장하게 됐다.

아시아 국가는 조별라운드까지 '언더독 돌풍'의 중심에 있었다. 개최국 카타르를 포함하여 무려 6개국이 도전장을 던지며 역대 월드컵 사상 아시아 국가 최다 출전 기록을 수립했다. 비록 카타르가 3전 전패로 개최국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탈락하는 등 좋지 않은 기록도 있었지만, 아시아 전체로 보면 나머지 모든 팀이 최소 1승 이상을 거두며 선전했다.

아시아 6개 팀은 조별리그에서 도합 7승 1무 10패를 합작하며 역대 월드컵 아시아 최다승-최다승점(22점) 기록을 경신했다. 사우디는 아르헨티나, 일본은 독일과 스페인, 한국은 포르투갈을 잡는 등, 아시아팀들이 조별리그에서 우승후보들을 잇달아 연파하는 대이변이 속출했다. 한국과 일본, 호주는 1라운드를 통과하는 데 성공하며 AFC 역사상 최다인 3개국이나 최초로 16강에 오르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타 대륙에 비하여 아시아 축구가 약하다는 선입견을 보기좋게 무너뜨린 장면이다.

하지만 토너먼트에서는 하나같이 대진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설명이 필요없는 영원한 우승후보, 크로아티아 역시 지난 대회 준우승을 차지할만큼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강호였다. 이미 조별리그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아시아팀들에게는 토너먼트까지 체력을 회복할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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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상대 동점골 넣고 기뻐하는 크로아티아의 페리시치 ▲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이반 페리시치(33·토트넘 홋스퍼)가 5일(현지시간) 카타르 알와크라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일본전 경기 후반 10분에 동점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전반전에 일본의 마에다 다이젠(25·셀틱 FC)에게 선제골을 내준 크로아티아는 페리시치의 동점골에 힘입어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 데 이어 승부차기 끝에 일본을 제압하고 8강에 진출했다.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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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팀의 월드컵 역대 최고성적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개최국 대한민국이 기록한 4강이다. 하지만 원정에 국한하면 아시아팀이 거둔 최고 성적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거둔 8강이었다. 당시는 참가국이 16개팀이어서 북한은 조 2위를 차지하고 8강에 곧장 올랐다.

1982년에는 24개팀, 1998년부터는 현행 32개팀 체제로 본선 쿼터가 늘어나면서 '원정 월드컵 8강'은 아시아 팀들에게 마의 장벽으로 여겨졌다. 1994년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2010년 한국과 일본, 2018년 일본, 2022년 한국-호주-일본이 연이어 16강에 진출했으나 모두 8강에는 가지 못했다. 아시아팀이 토너먼트에서 승리한 것도 아직까지 한국만이 2002 한일월드컵에서 이탈리아(16강, 골든골)-스페인(8강, 승부차기)을 제친 것이 유일한 경험이다. 이는 앞으로 아시아축구가 넘어야 할 새로운 과제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 출전한 모든 아시아팀을 통틀어서도 가장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개막 전까지만해도 일본의 월드컵 전망은 그리 밝아보이지 않았다.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도 고전하다가 막판 뒷심을 발휘하여 사우디에 간신히 B조 2위로 월드컵 티켓을 따냈다. 조추첨에서는 독일-스페인-코스타리카와 함께 '죽음의 조'로 꼽히는 E조에 편성됐다. 아시아 6개국 중에서도 그야말로 최악의 대진운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심지어 일본의 명예로운 탈락을 기정사실처럼 보는 전망도 많았다.

일본은 당당히 실력으로 모든 선입견을 뛰어넘었다. 첫 경기부터 독일에 2-1 역전승을 거두며 돌풍을 일으킨 일본은, 복병 코스타리카에게 0-1로 덜미를 잡히며 위기를 맞이했지만 최종전에서 다시 스페인에게 또 한번의 2-1 역전승을 연출하며 죽음의 조에서 당당히 조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의 선전에 밀려서 강호 독일은 한국에게 덜미를 잡혔던 지난 러시아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일본은 이번 카타르 대회를 통하여 여러 가지 의미있는 기록을 세웠다. 역대 4번째로 16강에 올라 아시아축구연맹(AFC) 소속 국가 가운데 최다진출팀이라는 기록을 수립했다. 이는 라이벌 한국(3회)을 앞선 기록이다. 또 한국과 일본은 월드컵 본선에서 나란히 7승씩을 거둬 아시아 공동 최다승 국가에도 이름을 올렸다.

특히 2회 연속으로 16강에 진출한 것은 아시아 국가 중 일본이 사상 최초다. 일본은 2002년 한일월드컵 필립 트루시에(프랑스)를 제외하면 오카다 다케시(2010 남아공), 니시노 아키라(2018 러시아), 그리고 모리야스 하지메까지 최근 3번의 16강 진출을 모두 자국 감독에 의하여 이뤄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의 선전은 꾸준한 투자와 장기 프로젝트의 결실이기도 하다. 일본은 이번 월드컵에서 26인 엔트리 중 유럽 리그 소속만 무려 19명으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았다. 현재 자국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도 대부분 유럽무대에서 한 번쯤 뛰다온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다수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유럽 시스템을 모방하여 유소년 축구 육성에 공을 들이며 코칭시스템의 수준을 높여왔다. 또한 일본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선수들은 몸값과 리그 위상에 연연하지 않고 유럽에 도전하는 패턴이 자연스러운 축구계 문화로 자리잡았다.

과거에는 일본축구의 약점으로 꼽히는 것이 피지컬과 투쟁심, 뒷심부족이었다면 유럽 무대를 경험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신체조건과 경기운영 능력이 꾸준히 향상됐다. 이번 월드컵에서 독일과 스페인을 잇달아 격파하고 16강에서 크로아티아와 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앞장섰던 것도 바로 유럽파들이었다.

본래 유기적인 패스와 점유율을 강조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스타일이었다면, 이번 대회에서는 마치 예전의 한국축구를 보는 것처럼 강팀을 상대로 점유율을 과감하게 포기하더라도 역습과 압박을 활용하는 유연한 '실리축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자국 내에서도 저평가를 받던 모리야스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기록한 5골 중 3골을 교체 선수가 만들어낼 만큼 적재적소의 용병술을 발휘하며 재평가를 받았다.

다만 이번에도 토너먼트의 한을 풀지 못한 것은 옥에 티였다. 일본은 4번의 월드컵 16강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는데 한 골 차 패배-선제골을 넣고도 역전패-승부차기 패배가 각각 2번씩일만큼 늘 한끗 차이였다.

첫 토너먼트 진출이었던 2002년에는 최종 3위를 차지한 터키에게 1-0으로 석패했고, 2010년에는 파라과이에게 0-0 무승부 이후 3-5 승부차기로 석패했다. 2018년에는 강호 벨기에에게 먼저 두 골을 따내며 밀어붙이다가, 막판 버저비터 포함 3골을 내리 내주며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다.

이번에도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전반 43분 터진 마에다 다이젠의 선제 골로 앞서가며 희망에 불탔지만, 후반 10분 이반 페리시리에게 뼈아픈 동점골을 내줬다. 승부차기에서는 3번 아사노만 성공했을뿐, 1번 미나미노, 2번 미토마, 4번인 주장 요시다까지 무려 3명의 키커가 실축하며 허무한 패배를 받아들여야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아쉬운 패배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일본 축구의 밝은 미래를 보여줬다"며 "우리는 독일과 스페인을 이겼다. 선수들이 경험과 자신감을 갖고 이를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8강은 좌절됐지만 일본축구가 증명한 무서운 성장세는, 앞으로 아시아 무대의 패권을 놓고 계속해서 경쟁하게 될 라이벌 한국축구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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