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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스토리후]주도하는 축구로 '원정 16강'…결과로 증명하고 떠나는 벤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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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채태병 기자] [카타르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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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난달 11일 경기 화성시 화성종합경기타운 주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아이슬란드 경기를 마치고 관중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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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두 번째 월드컵 원정 16강이라는 새 역사를 쓴 벤투호의 항해가 끝났다. 지난 4년여간 축구 국가대표 선수단을 이끈 파울루 벤투 감독(53)과 한국의 동행도 마침표를 찍는다.

2018년 8월23일 우리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취임한 벤투 감독은 한국 축구사 최장 재임 감독이다. 러시아 월드컵 이후 대한축구협회(KFA)는 벤투 감독에게 역대 최고 연봉(25억원)과 최장기 계약(4년6개월)을 제시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 같은 파격 대우를 받은 벤투 감독은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로, 자신에게 지휘봉을 맡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벤투 감독은 2003~2004년 대표팀을 이끌었던 움베르투 코엘류 이후 14년 만에 한국의 사령탑에 오른 포르투갈 출신 감독이다. 또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4년 임기를 채우며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선 감독이기도 하다. 벤투 감독은 약 4년 동안 자신의 전술이 온전히 담긴 팀을 만드는 데 집중해 월드컵 본선에서 우수한 성적표를 받았다.

특히 벤투 감독은 한국 대표팀에 주도하는 축구를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세계 축구의 중심 유럽에서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로 넘어온 벤투 감독이 우리 대표팀에 입힌, 그만의 축구 철학과 색채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알아본다.


악연(惡緣)에서, 선연(善緣)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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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최종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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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 벤투 감독은 1969년 6월20일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지역의 유소년 클럽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1991~1994년 비토리아 SC에서 뛰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벤투 감독은 비토리아 SC에서 3시즌 동안 리그 95경기에 출전해 13골을 기록했고, 이런 뛰어난 활약으로 포르투갈 대표팀에 입성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1996년 포르투갈의 명문 구단 SL 벤피카로 이적해 2시즌을 소화했다. 이어 스페인의 레알 오비에도에서 4시즌을 보낸 그는 2000년 자신의 고향 팀인 스포르팅 CP로 이적했다. 벤투 감독은 스포르팅 CP 선수로 활약하며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벤투 감독은 1992년부터 2002년까지 포르투갈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A매치 35경기를 뛰었다. 그는 루이스 피구, 후이 코스타, 주앙 핀투, 세르지우 콘세이상, 파울레타 등과 포르투갈 황금세대의 한 축을 담당했다.

벤투 감독은 만 33세 나이로 '2002 한국·일본 월드컵'에 출전, 한국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도 활약했다. 당시 한국은 박지성의 결승골로 포르투갈 황금세대를 제압했고, 벤투 감독은 이 경기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16년이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자신의 은퇴 경기에서 패배를 안겼던 한국 대표팀의 사령탑이 됐다. 악연(惡緣)으로 얽혔던 한국과의 관계가 선연(善緣)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를 두고 벤투 감독은 KBS 다큐멘터리 '로드 투 카타르'에서 "과거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통과를 목표로 했는데 한국에 패해 탈락했다"며 "포르투갈 대표팀으로서 마지막 경기였다. 내 은퇴 경기였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02년 (선수로) 월드컵에 참가한 뒤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며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카타르 월드컵에 참여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감독으로의 전성기…그리고 중국行 내리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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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충칭 당다이 리판 SN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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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 감독은 선수 은퇴 후 곧바로 스포르팅 CP 유소년팀 감독을 맡았다. 이후 그는 2005-2006 시즌 스포르팅 CP의 주제 페세이루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되자, 1군 감독으로 승격됐고 10연승을 이끌며 팀을 부진의 늪에서 구했다.

스포르팅 CP는 벤투 감독의 안정적인 지도 아래 포르투갈 리그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했다. 지도력을 인정받은 벤투 감독은 2010년 포르투갈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선택받으며, 자신의 감독 전성기를 열게 된다. 벤투 감독의 포르투갈은 'UEFA 유로 2012'에서 4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남겼다.

그러나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과 '유로 2016' 예선 등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며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지휘봉을 내려놨다. 그의 포르투갈 대표팀 기록은 44경기 24승 11무 9패(승률 55%)다.

이후 벤투 감독은 브라질 리그와 그리스 리그를 거쳐 중국 리그로 떠났다. 그는 2017년 중국의 충칭 당다이 리판 감독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선수들과의 불화, 성적 부진 등 이유로 7개월 만에 경질되며 흑역사를 남겼다. 이 중국 리그 감독 경력은 벤투 감독이 한국 대표팀 사령탑으로 거론될 때 재조명되기도 했다.

이에 벤투 감독은 한국 대표팀 취임 기자회견에서 "난 중국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당시 구단에서 설정한 목표는 1부 리그 잔류였다. 내가 팀을 이끌며 시즌 중 한 번도 강등권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는 환경이 (유럽과) 달랐고 이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어 어려움을 겪은 것"이라고 했다.


풍파에도 변함없던 벤투…결과로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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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벤투 감독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트레이닝센터에서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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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 감독은 수비를 중시하며 직선적인 역습 축구를 구사하던 한국 대표팀에 경기를 주도하는 스타일의 전술을 도입했다. 골키퍼까지 포함한 수비 라인이 상대의 압박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발 밑 패스를 구사, 중원 지역까지 공을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빌드업 과정을 중요시했다.

많은 팬과 전문가 등은 벤투호의 전술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월드컵 예선이나 아시안컵 등에서는 한국이 주도권을 갖는 경기가 많지만, 유럽과 남아메리카 등 전통의 축구 강국이 다수 포진된 월드컵 본선에서는 우리 대표팀이 주도하는 경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 경기가 시작되자 여론은 변했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우리 대표팀은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 등 내로라하는 강팀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실력을 선보이며 경기를 주도했다. 결국 벤투호는 H조에서 1승 1무 1패(승점 4)의 기록으로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축구 팬들은 역사상 두 번째 원정 16강이라는 화룡점정을 찍은 벤투호에 대해 호평을 남기며, 벤투 감독과의 재계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카타르 월드컵을 끝으로 한국 대표팀과 인연을 마무리한다.

카타르 월드컵 16강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패한 뒤 벤투 감독은 "한국 대표팀과 감독직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고 결별을 공식화했다. 그는 "지난 9월 결정을 내렸고 선수들, KFA 회장 등에게 이를 말했다"며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향후 거취에 대해 선택할 예정이다.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것이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전했다.

지난 4년여간 벤투 감독이 보여준 노력과 헌신으로 한국 축구는 새 역사를 썼다. 그로 인해 국민이 받은 즐거움과 감동은, 20년이 흘러도 여운이 느껴지는 2002년 월드컵의 그것과 같이 잊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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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에서 2대 1로 승리하며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대한민국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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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태병 기자 ct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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