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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K-반도체’ 미-중 사이 외줄 타는데…정부, 전략도 컨트롤타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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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메모리 반도체에 치중

첨단 시스템반도체 지원은 빈약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

산업단지 육성·세제혜택 강화만

미·중 갈등 속 한국 전략 부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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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을 맡는 디에스(DS)부문 밑에 리서치 조직을 신설할 예정이다. 그룹 차원의 삼성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가 있고, 삼성전자 내부에는 종합기술원과 반도체연구소 등이 있는데도, 새 연구개발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도 최근 비슷한 조직을 신설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대중 제재 등의 영향 등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자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도 이른바 ‘케이(K)-칩스법’으로 국내 반도체 산업 육성책을 내놓는 등 나름대로 대응책 마련에 애쓰고 있다. 하지만 경제 안보가 중요해진 상황임을 감안할 때 우선 순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고, 컨트롤타워가 없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제재에 울고 웃는 ‘K-반도체’


미국에서 바이든 정부 출범 뒤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면서 국내 기업들도 영향권에 들었다. 미국이 제재 단계를 높일 때마다 한국 기업들은 희비가 엇갈리고, 때로는 생존을 걱정하기까지 한다.

지난 7월 미국 상무부는 자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14나노(㎚·10억분의1m) 공정보다 앞선 반도체 생산라인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이어 10월엔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용 첨단 반도체 수출에도 제동을 걸었다. 동시에 디(D)램은 18나노, 낸드플래시는 128단, 로직칩은 14나노를 기준으로 이보다 앞선 공정에 쓰이는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2019년 트럼프 정부 때 화웨이와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대상으로 했던 제재가 빠른 속도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중국에 생산시설을 둔 국내 반도체 회사들은 물론이고 협력업체들까지도 미국 정부의 제재가 나올 때마다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때 중국 내 생산시설 증축과 현대화를 위한 장비 수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최근 1년 유예를 받으며 한숨을 돌린 상황이다. 반면 주력사업인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중국 업체들의 추격 속도가 둔화될 수밖에 없는 점은 호재로 꼽힌다.

램서치 등 중국 시장에서 매출의 10% 이상을 올리던 국외 장비 업체들은 수익성이 하락하고 있다. 향후 이들이 수익성 강화 차원에서 장비 가격을 올리며 삼성전자 등에 비용증가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중국 반도체 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동시에 값싼 중국 반도체 제품이 사라지며 많은 완성품 가격이 차례로 상승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내 기업들은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반도체 회사 임원은 “중국에서의 생산 비중이 20∼40%에 이른다”며 “중국 사업 기회를 놓칠 수도 없지만, 미국의 선진 기술을 공급받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언젠가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을 수 있다”며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고, 주요 2개국(G2) 간에 역량이 발휘되길 기대할 뿐”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의 한 팹리스업체 대표는 “반도체 경기 악화 속에 미-중 갈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며 중국 수출이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큰 그림 없는 지원책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슈퍼컴퓨팅 같은 미래 기술 경쟁력의 핵심에 반도체가 있다. 반도체 산업이 경제뿐 아니라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종합반도체 강국 실현을 위한 케이-반도체 전략’과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을 잇따라 내놨다. ‘케이칩스법’이란 이름으로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법률’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과 인력 육성을 지원하고,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지원’과 ‘육성’만 강조될 뿐, 미·중 갈등 속 한국 반도체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지원이 중심이고, 안보에 중요한 인공지능(AI) 등 첨단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지원책이 빈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김창욱 보스턴컨설팅코리아 파트너는 “미·중 갈등의 핵심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제재를 가하고, 향후 핵심 반도체를 자기 관할 안에서 개발·생산하도록 하는,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자생력이 없으면 휘둘릴 수밖에 없어, 인공지능 핵심 기술인 엔피유(NPU·신경망처리장치) 기술 등 첨단 반도체에 대한 기술 로드맵과 개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적인 측면만 강조하다간 안보 문제로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며 “국제 정세에 대응하는 우리 반도체 전략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 반도체 기술 개발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획재정부는 이와 별도로 반도체 등 경제 안보 품목의 공급망 안정을 위한 ‘공급망 기본법’ 제정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공급망 기본법에 담긴 ‘공급망 안정화 위원회 설치’ 등이 기존 ‘국가자원안보에 관한 특별법’ 등과 충돌한다며 법 제정에 반대하고 있다. 부처간 갈등 조율 기능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이를 맡을 컨트롤타워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일본이 반도체 소재 등의 수출을 제한하고 요소수 공급 부족 사태 등이 발생하자 대외경제장관회의 밑에 별도의 장관급 회의체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를 신설해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게 했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사라졌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국책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은 일부 메모리 반도체 품목에서 1등이다. 나머지에서도 1등을 하겠다는 목표는 불가능하다”며 “반도체 산업이 큰 변곡점을 맞은 상황에서 어떤 전략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정교하게 모색해봐야 하지만, 이같은 고민은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고 짚었다. 이어 “미국 바이든 정부는 부처별 지원을 정부가 통합해 추진하는 등 조직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부처별로 추진하는데다 이를 조정할 조직도 없다”며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를 구성했다지만, 실효성을 위해서는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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