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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부동산 얼어붙자 中 지방정부 재정파탄 위기...공무원들 연봉 30~50% 깎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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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정부 긴급 부동산 지원책 잇달아 발표

중국 전역 지방도시에 올해 하반기 들어 ‘장신차오(降薪潮·임금 삭감 붐)’가 몰아쳤다. 상하이와 선전, 항저우 등 주요 도시 수십 곳이 재정 부족을 이유로 공무원 연봉을 30~50%씩 삭감했다. 상하이는 처장급 연봉을 35만위안(약 6500만원)에서 20만위안으로 깎았고, 선전은 교사 연봉을 3분의 1 줄였다. 중국 매체들은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공무원 부부가 가장 가련한 사람들이 됐다”고 했다.

중국 지방정부가 급여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것은 부동산 시장의 붕괴로 재정 파탄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국가가 토지 소유권을 갖고 있는 중국에서 지방정부는 땅을 건설업체에 팔거나 업체 간 사용권 이전을 허가해 재정 수입의 대부분을 충당한다. 지난해 전체 지방정부 수입의 92.7%가 토지 판매 수입에서 나왔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 집값이 하락세로 접어들고 정부 규제로 부동산 기업들이 휘청이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중국 재무부에 따르면, 올해 1~9월 지방정부의 토지 판매 수입은 전년 대비 30%가량 줄었다. 여기에 공생 관계인 부동산 기업들의 부실을 지방정부가 인수하면서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지방정부의 음성적인 부채가 11조6000억위안(약 2160조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지방정부들은 구멍 난 재정을 메꾸기 위해 자(子)회사를 앞세워 부동산 ‘자전(自轉) 거래’에 나서고 있다. 특수법인을 만들어 회사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한 다음 토지를 사들여 곳간에 돈을 쌓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허난성 정저우시가 지난 1~10월 판매한 토지의 74%(73곳 중 54곳)가 시, 구 관련 기업이 사들였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중국 도시 22곳에서 열린 토지 경매에서 정부 관련 기업이 낙찰받은 물량이 60%에 달한다고 했다.

문제는 특수법인의 사재기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 법인들이 발행한 채권은 지방정부 채무로 집계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방정부는 당장 재정 상태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땅을 팔아 수입 늘리는 것으로 포장할 수 있다. 하지만 특수법인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지방정부가 져야 하기 때문에 나중에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중국 지방정부 특수법인 가운데 어음을 갚지 못하고 있는 곳이 8월 기준 43곳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지방정부들은 부동산 시장이 회복돼 개발업체들이 땅을 대거 사주길 바라고 있지만, 이 또한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헝다를 시작으로 대형 부동산 기업들이 연쇄 디폴트(부도) 상태에 빠졌다. 이들은 토지를 매입하기는커녕 소유 부동산을 헐값에 팔아치우고 있다. 지난달 28일 헝다는 광둥성 선전의 토지 1만㎡를 선전시 산하 국유 기업에 매각했다.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무너지면서 중국 전역에서 최소 326곳의 주택 건설 현장이 ‘란웨이러우(爛尾樓·1년 이상 건설 중단된 아파트)’로 전락했다.

부동산 경기는 회복 기미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누적된 공급 과잉도 문제다. 중국은 매년 필요한 도시 주택 공급 면적이 10.7억㎡로 추정되는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매년 15.9억㎡를 공급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도시 70곳의 집값이 올해 10월까지 14개월 연속 떨어졌다.

지방정부가 도산하면 중국 경제는 한순간에 붕괴 수준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블룸버그는 “지방정부 특수법인들이 발행한 채권이 중국 전체 회사채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며 “한 곳에서 도산이 현실화되면 도미노처럼 전체 중국 금융시장이 한꺼번에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한 지방정부가 지탱해온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급속도로 빠지면서 소비와 투자가 얼어붙고, 철강·건설 등 관련 산업도 흔들릴 수 있다. 중국에서는 부동산 분야가 GDP의 25%를 차지하고, 주택 관련 대출이 전체 은행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5%에 달한다. 중국 가정의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5분의 3이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자 중국 중앙정부는 긴급 대응에 나섰다. 지난 2020년 고강도 부동산 규제에 돌입한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부동산 지원책을 발표한 것이다. 지난달 11일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등은 부동산 회사에 대한 은행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개인 부동산 대출 지원,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조정 등 16가지 대책을 발표했다. 중국 국유 은행 6곳이 부동산 기업 10여 곳에 1조3000억위안(약 240조원) 규모의 대출을 지원했다는 소식도 나왔다. 같은 달 26일엔 은행 지급준비율을 0.25% 인하해 시중에 5000억위안을 풀었다. 28일에는 중국 증권감독관리위가 주식시장에 상장된 부동산 기업들이 증자나 전환사채(CB)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재융자(再融資)를 12년 만에 허용했다. 중국 디이차이징은 “중국이 침체된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부동산 기업의 은행 대출, 채권 발행, 주식 발행 3가지를 모두 풀어줬다”고 했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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