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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9살 숨진 강남 스쿨존…50명 중 48명 반대로 ‘보도설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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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북초교, 2년전 보도 · 카메라 설치 요청했으나

주민 대부분 반대…일방통행시 과속 위험 이유로


한겨레

5일 오후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 쪽 이면도로에 사고가 발생한 지점에 학부모와 학생들이 마련한 추모 공간에 학생들이 서 있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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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만취운전으로 초등학생을 숨지게 한 30대 남성이 4일 구속된 가운데, 2년 전 학교 쪽의 요청에도 도로가 일방통행으로 바뀌는 것이 싫었던 주민들의 반대로 ‘보도 설치’가 무산된 사실이 확인됐다.

5일 오후 2시께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앞. 수업을 마친 저학년 학생들은 학교 앞 사고 발생 지점인 도로변 갓길에 만들어진 추모공간과 학교 교문 안쪽에 마련된 분향소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에 있는 건물 벽면에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붙인 색색의 메모지가 붙어 있었고 바닥에는 국화가 놓여 있었다. ㄱ군은 방과 후 수업 후 하굣길 스쿨존이지만 인도가 없는 갓길을 지나다 만취한 30대 남성의 차량에 치여 끝내 숨지고 말았다.

추모공간마저 위험한 길가에서 학생들은 숨진 ㄱ군의 이름을 부르며 “너 ㄱ 알잖아”, “나 2학년 때 방과 후 수업 같은 반이었어”라고 메모지를 써 붙이고 있었다. “너랑 같이 놀 때가 즐거웠는데…거기 가서 편히 쉬어”, “짝꿍 OO이가. 잘 지내, 사랑해” 등 ㄱ군의 친구들이 붙인 것으로 보이는 메모도 눈에 띄었다. 메모지 사이에는 작은 젤리 봉지가 그대로 붙어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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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사고가 발생한 벽에 추모 메모지와 함께 하리보 젤리가 붙어 있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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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년 학생들은 가해 운전자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 남학생이 “어떻게 대낮에 술을 먹고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하자, 다른 학생은 이에 동조하며 “어린이들이 아무리 잘하면 뭐해. 아무리 우리가 안전을 지켜도 대낮에 술 먹고 다 치고 다니는데”라며 맞장구를 쳤다.

언북초에 다니는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박아무개(37)씨는 “인도는 없는데 길은 경사가 가파르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차가 다니니까 인도를 만들 수 없으면 펜스 같은 안전장치라도 있어야 했다. 언젠가 일어날 사고였던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ㄱ군에게 안전한 도보 등하굣길을 제공할 기회는 있었다. 언북초는 2019년 10월 강남경찰서·강남구청 등에 학교 인근 통학로 안전 개선을 위해 보도 설치와 단속 카메라 설치 등을 요구했다. 이듬해 1월 서울시교육청도 학교 쪽 의견을 받아들여 강남경찰서에 공문을 보내 “일방통행 운영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를 반대한 것은 어른인 주변의 주민들이었다. 폭이 좁은 도로에 보도를 설치하려면 양방통행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바꿔야 했고 이를 위해선 주민 동의가 선행돼야 했다. 경찰은 강남구청에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요청했지만, 구청이 주민 50명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48명이 반대했다. 통행 불편과 경사 때문에 일방 통행할 경우 과속의 위험이 크다는 이유 등 때문이었다. 이후 보도 설치 등은 다시 논의되지 않았다.

오후 2시46분, 알록달록한 메모지 앞에 모여있던 언북초 학생 10여명은 숨진 ㄱ군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 둘, 셋, OO아 잘 가”라고 크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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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 쪽 이면도로에 사고가 발생한 지점에 학부모와 학생들이 마련한 추모 공간에 학생들이 서 있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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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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