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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한인 입양인 위해 모금하고 지역 문화재 직접 해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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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끄는 청소년 자원봉사

서예화 월드허그파운데이션 학생대표

한인 입양인들의 시민권 취득 위해

전국 돌며 모금활동 벌여


한겨레

서예화 학생이 자신이 다니는 SDC인터내셔널스쿨에서 한인 입양인들을 위한 법안 통과에 대한 광고비 마련을 위해 모금 연설을 하고 있다. SDC인터내셔널스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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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청소년 봉사활동이 많이 위축되었다고 하지만, 눈길을 끄는 봉사활동도 많다. 올 한해 한인 입양인을 돕느라 전국을 돌며 모금활동을 벌인 청소년, 학교 근처에 발굴된 문화재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해설사 봉사활동에 나선 청소년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미 상원의원 신문 광고비 마련에 동참해요”


어릴 때 미국에 입양됐으나 양부모의 학대로 파양된 필립 클레이(한국명 김상필)는 양부모가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아 시민권이 없었다. 20대부터 보호시설을 전전하며 약물중독 등을 앓던 그는 2012년 한국으로 추방됐다. 낯선 문화와 언어로 한국에서도 정착에 실패한 그는 결국 한국에 돌아온 지 5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워진 미국 뉴욕의 월드허그파운데이션은 어릴 때 미국에 입양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성인이 된 현재까지 시민권을 받지 못해 불법체류자가 된 입양인들이 미국 시민권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법인 시민단체이다. 단체는 시민권을 받지 못해 숨어 사는 한인 입양인들의 수가 1만8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월드허그파운데이션 아시아 학생 대표를 맡고 있는 서예화(SDC인터내셔널스쿨학원 2학년)양도 이 사건에 큰 영향을 받아서 활동 중인 학생이다. 그는 올 한해 동안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미국 입양인 시민권법 통과를 위한 캠페인’ 포스터를 붙이고 자신의 에스엔에스에서도 이 문제를 환기시켰을 뿐만 아니라, 부산, 경주, 전주, 원주 등을 돌면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모금을 하는 이유는 미국 입양인 시민권법 상원의원 통과 및 최종 제정을 위해 미국 상원의원 신문에 법안 광고를 내기 위해서다. 법안 광고를 위해서 2만달러(약 2900만원)이 필요하다. 그는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하면 투표도 못하고 출국을 한 뒤에는 입국이 거부되고, 주택 모기지·교육지원·연금 등 미국 시민으로서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며 “모금활동을 할 때 입양인들의 이같은 현실이나 관련 법안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분들이 많다”고 안타까워 했다.

앞서 시민권이 없는 한인 입양인들을 구제하는 ‘입양인시민권법안’(Adoptee Citizenship Act of 2021)이 지난 2월 미국 연방 하원의원을 통과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법안은 상원에 상정되었고 상원에서 최종 통과되면 미국 대통령의 최종 서명 절차를 거쳐 입양인 대다수가 미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서예화양이 모금활동을 서두르는 이유다.

서양에게는 조이 알레시의 사례도 활동의 큰 동기가 되었다. 조이 알레시는 생후 7개월에 미국에 입양됐으나 열악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시민권도 취득하지 못하고 평생 살다가 월드허그파운데이션의 도움으로 53세의 나이에 시민권을 얻었다. 서양은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서 한 사람이 시민권을 취득하는 기적을 이룰 수 있음을 목격했다”며 “나의 목소리를 통해 이같은 현실이 널리 알려지고 뜻깊은 일에 동참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뿌듯하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에 117번째 상원의원 회기가 끝나서 내년도 3월에 상원의원 회기가 시작되는데 최대한 그때까지 후원금을 모아서 법안 광고를 하려고 한다”면서 “다행히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자주 미국 뉴스 등을 검색하면서 관련 사안의 진전을 확인하는 서양은 “이 활동을 통해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 고통에 처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면서 “앞으로도 고통에 처한 사람들이 다시 웃음을 되찾게 할 수 있는 일을 진로로 갖고 싶다”고 밝혔다.

한겨레

한민고등학교 학생들이 지난달 12일 혜음원지 방문자센터 개소식에 참여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문화재 해설을 하고 있다. 한민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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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 문화재는 우리가 해설해요”


지난달 12일 열린 파주 ‘혜음원지’ 방문자센터 개소식에서는 근처 한민고등학교 학생들이 문화재 해설사로 나섰다. 혜음원지는 고려시대 국립 호텔로 800여년간 땅 속에 묻혀 있다가 90년대 말 터가 발견된 역사 유적지다. 20여년간의 복원 과정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던 이날 개소식에는 파주시장, 국회의원, 파주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한민고 1∼2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동아리 ‘혜음원지가 속삭이다’ 학생들은 이날 방문객들을 모시고 다니면서 혜음원지 곳곳에 대한 해설을 이어나갔다. 한민고는 국내 유일의 군인 자녀 학교로 다양한 창의 프로그램을 갖춘 기숙형 고등학교다.

이들 학생들이 해설사 봉사를 하기 위해 공을 들인 시간은 약 6개월이다. 지난해 혜음원지 복구 사업을 주제로 탐구활동을 벌인 한민고 학생들이 지적 호기심을 풀기 위해 혜음원지를 담당하고 있던 파주시 학예사를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학예사는 올해 개소식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해설 봉사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에 지난 5월 관심있는 학생들로 ‘혜음원지가 속삭이다’라는 이름의 동아리가 꾸려져서 본격적인 해설 봉사 준비에 들어갔다.

동아리 구성원들은 주말마다 혜음원지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학예사 및 전문가로부터 강의도 듣고, 답사도 하고 자료도 검토했다. 혜음원지 안내 책자 제작에도 손길을 보태고, 문화재를 더 실감나게 해설하기 위해 대본도 쓰고 리허설도 했다. 지난 10월에는 인근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을 상대로 해설사 활동을 진행했고, 뒤이어 한민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해설을 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진행하는 문화재 해설이다 보니 듣는 아이들도 더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이들의 해설은 개소식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보통 어른들이 해설을 하고 학생들이 듣는데, 이날은 학생들이 해설을 하고 어른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혜음원지 쪽은 “아이들의 해설로 많은 방문객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서연 학생은 “충분히 이해를 하고 준비를 했지만 많이 떨렸다”면서 “많은 어른들 앞에서 설명을 하는 게 흔한 경험도 아닌데다 나의 설명으로 남들이 이해를 하게 되는 모습을 보니까 뿌듯했다”고 말했다. 조연진 학생은 “바로바로 즉각적인 반응을 해주는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해설을 할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면서 “학생들의 해설로 또래 학생들이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봉사활동은 특히 역사 쪽 진로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에겐 좋은 기회가 됐다. 이민제 학생은 “고등학생으로서 하기 어려운 뜻깊은 경험을 해봤고 앞으로 역사 쪽 진로의 가닥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박진석 학생은 “남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선 내가 완벽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에 많은 걸 알게 됐다”며 “역사 쪽 진로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미리 큰 무대에서 경험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밝혔다.

이 동아리를 지도한 김형태 교사는 “학생들의 활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고등학교 시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 남게 됐다는 평을 들으니 교사로서 보람이 차고 넘친다”면서 “특히 이번 경험으로 아이들 중에서 역사 연구자라는 진로를 정하게 된 아이들도 있어서 진로 전담 교사로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김형태 교사는 이 사례를 지역학 활동의 좋은 예로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19일 고려대에서 ‘지역학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열린 학술회의에서 “지역학은 학생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진로 탐색과 함께 이뤄져야 하며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직접 해보는 학생 해설이 효과적”이라고 발표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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