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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상한제 첫날부터 전력 도매가 급락…한전 숨통, 발전사는 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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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달 29일 서울 한 주택가의 전기계량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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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들어 한국전력이 각 발전사에서 사들이는 전력 도매가에 제한을 두는 계통한계가격(SMP) 상한제가 시행에 들어갔다. SMP 상한제 첫날부터 전력 도매가가 40% 넘게 떨어지면서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은 숨통이 틔었다. 반면 그만큼 이익이 줄어들게 된 민간 발전사들은 부글거리고 있다.

지난달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를 통과한 SMP 상한제는 당초 예정대로 1일부터 시행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2월 한 달간 육지 기준 ㎾h(킬로와트시)당 158.96원으로 상한 가격을 설정했다. 직전 10년(2012년 9월~2022년 8월) 가중평균값의 1.5배 수준으로 전력 도매가를 제약한 것이다. 그러자 한전이 부담해야 할 비용도 대폭 내려가고 있다.

전력거래소가 게시한 1~2일 육지 기준 SMP는 276원대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원래라면 이 가격대로 한전이 발전사에 구입해야 했지만 SMP 상한제로 159원 가량만 내면 된다. 사실상 42% 이상 가격이 싸진 셈이다. 주말인 3일도 비슷한 수준인 40%가량 가격이 하락했다. 다만 발전사에 필요한 연료비가 상한 가격을 넘길 때엔 연료비를 별도로 보전해주기 때문에 한전의 실제 구매 비용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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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속에 한 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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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6월 평균 128.84원이던 SMP는 11월 들어 두 배 가까운 242.17원으로 올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인한 LNG(액화천연가스) 수급난으로 가격 오름세가 가팔랐다. 올겨울 난방 수요에 따른 국제 에너지값 상승 등으로 SMP는 더 높아질 가능성이 컸다. 그만큼 비싼 값에 전력을 사와야 했던 한전으로선 한숨을 돌리게 된 것이다.

한전은 3분기까지 21조834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 한해만 30조원 넘는 적자를 낼 것이 유력하다. 이 때문에 한 달에 수조 원 규모의 한전채를 찍어내면서 유동성을 겨우 확보했다. SMP 상한제 실시로 이달 말 인상이 예정된 내년 1분기 전기요금과 함께 경영 여건을 개선할 카드가 생긴 셈이다. 전력업계에 따르면 SMP가 80~90원 떨어지면 월 최대 7000억원 정도의 한전 적자가 줄어들게 된다. 이는 한전채 발행액 조정과 채권시장 안정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전 측은 "유례없는 한전 적자는 오롯이 전기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반면 발전사들은 SMP 상승으로 역대급 이익을 누리고 있다"면서 "연료비를 보전해주기 때문에 민간 발전사의 대규모 손실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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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SMP 상한제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제도 시행 강행처리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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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발전업계에선 정부 개입에 대한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외적 요인인 LNG 가격 상승에 따른 한전 부담을 민간 기업에 무조건 떠넘긴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3개월만 제도를 시행해본다지만 이대로면 발전사 다 죽는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LNG를 싼값에 직수입해온 일부 대기업 계열 업체 외엔 손해가 곧바로 눈에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SMP 상한제에 따른 실제 손해액을 산출한 뒤 행정소송이나 헌법소원심판 청구 등에 나설 예정이다. 월 수천억 원의 이익이 사라질 거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발전업체들이 흔들리면 부메랑처럼 전력시장 전반에 부담이 돌아올 거란 우려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설비가 필요한 발전업은 금융권 대출이 필수적인데 고금리에 SMP 상한제까지 겹쳐 자금 조달이 쉽지 않아질 것으로 본다. 업체들이 쓰러지고 발전소가 멈추면 결국 정부가 그 손실을 떠안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SMP 상한제가 한전 적자의 궁극적 해결책이 아닌 만큼 전기요금 현실화, 발전업계 지원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장은 "올겨울 최대전력이 늘어날 가능성이 큰데 경영 악화로 일부 발전기가 멈춰서면 전력 수급에 큰 차질이 생긴다. 정부는 민간 업계의 고통 분담과 횡재 이익만 강조하기보단 실질적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면서 "내년 1분기 전기요금은 최소한 ㎾h당 50원 정도 올리고, 필요할 경우 한전에 대한 직접적 재정 투입이나 석탄발전 제한 완화, SMP 상한제 조기 종료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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