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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지금, 여기] 왕을 칭찬하던 맹자 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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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맹자>를 배웠다. 물론 자발적 학구열에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일종의 필수 과목이었다. 열등생이었던 나는 뭔가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만 했다.

경향신문

김현호 사진비평가·보스토크 프레스 대표


특히 맹자와 왕들의 대화로 이루어진 앞부분 구성 자체가 괴로웠다. 맹자는 융통성 없는 꼬장꼬장한 노인이었던 반면, 왕들은 눈치가 너무 없었다. 첫머리에서 양혜왕은 맹자에게 묻는다. 어르신께서 먼 길 와주셨으니 우리 나라에 이로움이 있겠죠? 보통 사람들은 허허 웃을 것이다. 어쨌거나 오시느라 수고했다는 말 아닌가. 하지만 맹자는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하필 이익을 말씀하셨습니까? 오직 어짊과 의로움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고는 의로움이 왜 이익보다 중요한지에 대한 설교가 하염없이 이어진다.

너무 야박한 거 아닌가, 그래도 왕인데?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왕들은 또 눈치 없는 질문을 한다. 현명한 분들도 저처럼 동물을 좋아하시나요? 지금 힘이 좀 있는데 옆 나라들과 한판 붙을까요? 맹자는 초등학생의 시구를 전심전력으로 타격하는 프로야구 선수처럼 그 질문들을 가루로 만든다. 이쯤 되면 울고 싶어진다. 왕들이 조금 눈치가 있었더라면 숙제도 훨씬 적었을 텐데. 그런데 아주 드물게 왕이 칭찬을 받는 구절이 있었다. 소 한 마리가 덜덜 떨며 끌려가는 것을 본 제선왕은, 안쓰러운 마음에 소를 풀어주고 양을 잡아 의식을 치르라고 명령한다. 그러면 양은 안 죽는가, 어쩌면 이렇게 생각이 짧은가 하며 우리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맹자는 왕을 칭찬한다. 소는 보셨고 양은 못 보셔서 그러셨군요. 그것이야말로 어짊의 실천입니다.

이 괴상한 대화를 나는 꽤 자주 생각한다.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벌벌 떨며 눈물을 흘리는 소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전통적으로 사진가들은 우리 사회의 곳곳과 세계를 돌아다니며 빈곤과 부조리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달해 왔다. 타인의 고통을 본다면, 우리가 안쓰럽게 여겨 그것을 멈추게 할 것이라고 믿으며.

그러나 그 생각에는 여러 결점이 있었다. 나는 사진을 공부하며 연민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쉽게 지치고 무뎌지는지 배웠다. 우리의 눈을 사로잡고 충격을 주기 위해 사진은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한다. 부조리와 싸우겠다는 사진가의 선한 의지는 일종의 영웅주의나 선정성과 뒤엉켜 잘 구분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자기 과시욕이다. 잔혹한 사진을 보고 불편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약간의 돈을 후원하고 SNS에 올리는 이가 있다고 치자. 이 행위에는 자신이 윤리적으로 예민한 존재라는 것을 과시하는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섞여 있을 것이다. 이 감정은 외과 수술을 하듯 제거하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타인의 고통은 과시를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도, 연민도, 자기 과시도 없는 윤리적인 사진의 방식을 찾으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못 찾은 게 아니라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즉 이것은 사진과 우리의 한계다. 우리는 연민과 과시욕을 완전히 제거하고 윤리적 행동을 이어갈 수 있는 존재가 못 된다. 그게 뭔지도 정확히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이 윤리적인 사진인지를 묻는 게 아니라 사진은 얼마만큼의 윤리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고, 거기서부터 실천의 방식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았을까.

최근 사회적 참사가 있을 때 SNS에 자신의 슬픔을 과시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나는 왕에 대한 맹자의 칭찬을 다시 생각한다. 어쨌거나 직관적으로 연민을 느꼈고 실천했다면, 거기서부터 우리가 함께 시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표현도 다듬고, 태도도 고쳐 나가면서 말이다. ‘양은 안 죽냐’라고 냉소적으로 묻는다면 왕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왕을 칭찬하는 맹자처럼, 우리도 조금쯤 너그러워져도 좋겠다.

김현호 사진비평가·보스토크 프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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