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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NGO 발언대] 국민과 싸우는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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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김진표 국회의장은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저출생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별안간 동성애와 동성혼을 언급했다. 이왕이면 동성 부부뿐 아니라 인종과 장애를 막론하고 구성되는 다양한 가족 모델에 재생산권과 이후의 안정적인 생애주기를 보장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그럴 리가. 김진표 국회의장은 의원 시절부터 보수 교계에 적극 힘을 실으며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일삼아온 인사로, 시민사회로부터는 오래전부터 비판받고 있는 인물이다.

경향신문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그는 개신교 등에서 동성애·동성혼 치유회복운동을 포함해 생명존중운동으로 승화해 추진한다고 말한다. 국회의장이나 되는 이가 종교계의 움직임을 대안인 양 취급하는 배경은 차치하고라도, 어떻게 동성애와 동성혼을 치유해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동성애에 전파되어 결혼하지 않는 이들이 늘고, 혼인한 부부도 낙태죄가 효력을 잃은 상황에 언제든 임신 중단을 할 수 있으니 출생률이 떨어진다는 논리인가.

말인즉 김 의장은 저출생의 책임을 국민에게 돌리는 중이다. 국민이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으니 교계의 생명존중운동에 미래를 걸어보자는 것이다. 그는 반인권적이라고 공표되어 이미 해외에서 금지되고 있는 ‘전환치료’를 ‘치유’로 포장하여 소개하는가 하면, 낙태죄 폐지를 반대해온 이들의 논리에 ‘생명존중’의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 둘을 짝짓는다. 출생률 앞에서 국민은 재생산 도구이자 도덕적 계도가 필요한 대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 그는 문제 해결의 의지는커녕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에서부터 국민을 배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동성애가 치유되면 이성 결혼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는가? 생명을 존중하면 출생률이 높아진다고? 출생률을 고민하고 싶거든 적어도 임신과 출산, 양육지원을 확대하고 혼인과 가족구성의 제도적 문턱을 고려하며, 출산 여성의 경력과 안정적인 노동환경을 보장하는 등 국가의 책임을 약속하는 것이 상식적인 접근이다. 하지만 그는 정상 결혼과 출산의 궤도를 벗어난 이들에 대한 프레임 짓기를 반복한다. 무엇이 되었건 애를 낳으라고 강요하지만 출산 이후 국가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일언반구 없기는 여전하다.

국회의장의 언사는 같은 시간 노동자에게 임금인상과 인력확충, 노동환경 향상 보장은커녕 약속을 이행하라 요구하며 파업하는 이들을 경제발전에 저해되는 집단으로 프레임 짓는 정부의 태도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국가는 거듭 국민과 선을 긋는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연이은 인력감축으로 곳곳에 사고가 발생하는데도 국가는 출생률과 경제성장률만 외치며 결혼과 노동을 강요한다. 이쯤 되면 국가는 국민을 귀찮게 여기며 국민의 주권을 혐오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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