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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조현철의 나락 한 알]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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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에는 무한 책임이 아니라 ‘사법적 책임’과 유가족의 ‘보상받을 권리’를 말한다. 책임은 대법원 판결까지 미뤄지고 생명은 돈으로 환산된다. 그들은 사과하지 않는다. 버티기 힘들면 ‘죄송한 마음’이라는 주어 없는 말로 넘어가고, 합리적인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로, 상식적인 물음에는 ‘언급이 부적절하다’로 비켜간다. 그들은 위로 갈수록 더 무책임하고 더 뻔뻔하다.

경향신문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그들은 국민 안전에 무한 책임을 진다며 도로 위의 명백한 위험은 외면한다. 화물차 사고 사망자가 매년 700명에 이르고, 화물노동자는 하루 12시간 이상 일해야 겨우 생활비를 건진다. 2020년부터 올해 말까지 컨테이너와 시멘트에 적용하는 현재의 안전운임제는 과속·과적·과로를 방지하여 도로의 안전과 화물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자는 제도다. 그러나 그들은 지난 6월 파업을 중단하는 화물연대와 안전운임제의 지속 추진과 품목 확대 논의를 합의한 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화물연대가 다시 파업을 선언하자 부랴부랴 안전운임제 ‘3년 연장 추진’과 ‘품목 확대 불가’를 고심 끝의 대책이라며 내놓고 일방적인 통보와 강요로 화물노동자들을 파업으로 내몰았을 뿐이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연대가 아니라 국민 안전에 무한 책임을 진다는 그들이 주도해야 할 사안이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과속과 과적으로 도로를 질주하는 화물의 위험은 ‘화물 품목’을 가리지 않는다. 안전을 생각하면 안전운임제의 품목은 당연히 확대해야 한다. 휘발유, 고압가스, 유해화학물질 같은 ‘위험물질’이 안전운임제에 포함되지 않은 게 이상하다. 화물연대의 파업은 ‘죽음과 고통을 연료’로 삼는 화물 운송의 현실을 바꾸자는 결의이자 호소다.

책임 의식과 공감 능력 없는 그들

그들은 이태원 참사 후 시스템을 정비한다며 ‘범정부 재난안전관리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그리고 참사에 책임이 큰 행정안전부 장관이 단장을 맡는다. 그들은 자리보전에 집요하다. 이런 그들이 무엇을 얼마나 개선할 수 있을지매우 의문이다. 그들은 화물연대 파업을 사회재난으로 규정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꾸리더니 급기야 법이 생긴 후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는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이렇게 위기를 조장하며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진짜 책임자로 지목하는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이 다시 전면에 나섰다. 그들은 자리보전에 능숙하다.

그들은 불법과 관계없는 화물연대의 파업을 ‘불법 집단행동’으로 왜곡한다. 서울대병원과 지하철과 철도 등의 공공부문 파업을 ‘정치’ 투쟁으로 매도한다. 하지만 서울대병원과 지하철 파업의 조기 타결과 철도 파업 철회가 말해주듯이 이들 파업은 ‘생계’와 ‘안전’ 투쟁이다. 철도에서는 올해만 4명의 노동자가 인력 부족에 따른 안전사고로 사망했다. 철도노조는 안전사고를 방지하려고 인력 증원을 요구해왔지만, 철도공사는 대규모 인력 감축 계획을 내놓았다. 그들은 안전과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한다.

그들은 이태원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지만, 112 첫 신고가 들어온 당일 저녁 6시 34분부터 참사가 터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참사 후에는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이렇게 그들은 세월호 참사에 이어 이태원 참사 유족의 신뢰를 잃었다. 그들은 화물연대 파업을 막을 수도 있었지만, 지난 5개월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파업 후에는 책임 전가에 골몰했다. 이렇게 그들은 노동자의 신뢰를 걷어찼다. ‘무신불립’이라, 그들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민’의 신뢰를 잃었고, 이제 ‘법과 원칙’을 앞세운 공권력, 합법이란 이름의 폭력밖에 가진 게 없다.

무슨 이유로든 그들이 한두 달 자리를 비운다고 가정해보자. 그래도 우리나라는 별일 없이 잘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화물노동자들이 며칠 자리를 비우니 나라 전체가 들썩인다. 지하철이나 철도도 마찬가지다. 물류가 서면 경제가 선다고 할 만큼 화물노동자가 맡은 공공의 역할은 막중하다.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건 화물노동자를 비롯해 묵묵히 밑에서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결코, 그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화물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다. 대화가 아니라 통보하고 명령한다. 복종, 아니 굴종을 요구한다.

이젠 통합도 공정도 말하지 않아

이태원 참사와 화물연대의 파업에서 그들은 고통의 공감 능력이 없음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그들의 눈과 귀는 얼마나 다른가! 그들에게 세상은 얼마나 다른가!”(윌리엄 블레이크) 그들은 반년 만에 갈등과 분열, 불공정과 몰상식의 세상을 열어젖혔고 이제는 ‘통합’도 ‘공정과 상식’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론과 ‘민’의 자유를 부정하기 시작했고 곧 ‘자유’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가 말하느니, 그들은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렇게 그들은 스스로 무너진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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