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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베이징 다이어리] 쑨춘란과 앤서니 파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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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쑨춘란 국무원 부총리(사진 출처= 중국 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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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중국의 백신 접종률이 90%를 넘어섰고, 오미크론 변이의 병원성이 감소하면서 방역 조치의 개선 조건이 마련됐습니다."

최근 말 몇 마디로 중국과 글로벌 증시를 자극 중인 인물이 하나 있다.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사령탑으로 알려진 쑨춘란 국무원 부총리가 주인공이다. 지난달 30일과 이달 1일, 쑨 부총리는 일관된 신호를 보냈다. 코로나19는 더 이상 두려운 전염병이 아니며, 앞으로는 그에 걸맞은 예방·통제 조치를 하겠다는 것. 뭐라 딱 꼬집어 말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중국이 위드코로나에 한 단계 더 다가서게 됐다는 의미로 쑨 부총리의 발언을 받아들이며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다. 그러한 기대는 곤두박질치던 위안화 가치와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모두가 기대하는 것처럼 정말 중국이 조만간 다시 열릴(리 오프닝·경제활동의 전면적 재개)까. 베이징 거주자라는 의미에서 방역 정책의 이해당사자인 본인의 눈에 상황은 순탄치 않다. 다른 모든 것은 차치하고, 그 신호를 보내는 주체만 보더라도 덮어놓고 긍정하기엔 아리송하다.

지난달 말 중국의 대규모 시위 이후 방역 강도 완화를 시사하는 것에 총대를 멘 인물은 앞서 언급한 쑨춘란 부총리다. 쑨 부총리의 담당 영역은 사회·과학·문화·보건 분야. 그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시계공장 여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국무원 부총리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정치인지만, 책임자로서의 임기 만료를 코앞에 두고 있다. 10월 개최된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이후의 후속 인선을 거쳐 은퇴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방역 완화를 일선에서 지휘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경질이든 임기만료든 자리에서 내려오는 수순만 남았다는 얘기다.

중국이 '과학 방역'을 외치면서도 책임의 전면에 저명한 중국 내 연구기관 등 전문조직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도 의구심을 자아낸다. 쑨 부총리는 바이러스를 비롯한 방역 전문가가 아니다. 부총리에 임명되기 직전까지 그는 공산당의 통일전선작전부장직을 맡았다. 대외 선전이나 소통에 특화된 인물이라는 게 그에 대한 일반적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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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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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 부총리 발언의 무게감은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진두지휘한 앤서니 파우치 전 국립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의 그것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미국 역시 초기 대응 실패로 수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양산했기 때문에 방역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게다가 파우치 전 소장은 지난달 말 백신 접종을 독려하는 내용의 마지막 브리핑을 끝으로 이미 자리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파우치 전 소장은 그 스스로 의사이자, NIAID를 40년 가까이 이끌어 온 전염병 분야의 권위자라는 정체성을 문신처럼 새기고 있는 인물이다. 지카, 에이즈,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한 시기에도 책임자의 자리를 지켰다.

쑨 부총리가 과학방역과 백신을 언급한 뒤, 실제 베이징의 방역 체계는 대혼란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시가 대대적으로 발표한 대로 버스를 탈 때는 더 이상 유전자증폭(PCR) 검사 결과를 제시할 필요가 없지만, 사방이 트인 국립공원 출입에는 의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는 초중고교 학생들은 PCR 검사를 의무적으로 받지 않아도 된다지만, 검사 결과를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오프라인 수업이 이튿날 재개될지 여부는 검사소가 문을 닫는 저녁까지도 공지되지 않는다. 혹시 모를 마음에 검사받으러 나가는 학부모들은 시도 때도 없이 임의 폐쇄하는 검사소와 복불복 게임을 해야 한다.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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