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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4년 한우물' 벤투의 뚝심이 韓축구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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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이 확정된 뒤 기뻐하고 있다. <카타르/박형기 기자>


파울루 벤투 감독과 한국 축구의 인연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월드컵에서 패배를 안겨 그의 포르투갈 국가대표 선수 생활을 끝나게 만든 나라도 한국이고, 감독으로 부임해 자신의 조국을 꺾으며 커리어 첫 월드컵 16강을 달성하게 해준 나라도 한국이다. 오죽하면 그가 "나를 은퇴시킨 팀을 이끌고 월드컵에 나설 줄은 몰랐다"고 말했을 정도일까.

이제 남은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이 어디까지 갈지는 몰라도, 부임 기간에 벤투 감독은 한국도 주도적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공격에 힘을 실은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벤투 감독의 이니셜을 따서 그가 바꾼 한국 축구의 모습을 되돌아봤다.

한국 축구가 그동안 성과를 거둘 때는 선수비 후역습이라는 키워드가 빠지지 않았다. 지난 월드컵에서도 점유율이 37.3%로 32개 팀 중 29위에 그쳤다. 심지어 4강 신화를 이뤄냈을 때도 실력이 부족하지만 많이 뛰는 방식으로 약점을 메워온 것이 한국 축구의 방법론이었다. 하지만 공을 소유한 채로 주도적인 축구를 하겠다는 벤투 감독의 전술은 한국 축구의 접근 방식을 크게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남미의 우루과이와 대등한 축구를 펼치고, 비록 실점이 많았지만 가나를 압도했으며, 강호 포르투갈에 역전승까지 거뒀다. 포르투갈전에서 밀리고도 지금까지의 점유율은 48.7%로 17위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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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드업 축구를 펼치기 위해서는 긴 시간 동안 감독의 뜻을 펼치는 과정이 필수적이었다. 2018년 8월 17일 러시아월드컵 직후에 선임된 벤투 감독은 4년3개월 동안 팀을 이끌며 역대 최장수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세르지우 코스타(수석코치), 필리프 코엘류(코치), 비토르 실베스트르(골키퍼 코치), 페드루 페레이라(피지컬 코치)까지 사단을 구축해서 한국에 온 벤투 감독은 4년을 온전히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구현하는 데 사용했다.

때로는 '빌드업 축구가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다' '강팀을 만나면 형편없이 무너질 것이다' 등 비판을 들었지만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위원들을 피해 가면서까지 일궈낸 벤투 축구는 사상 두 번째 원정 16강이라는 결과를 안겼다.

그동안 벤투 감독의 약점으로 지적받은 부분은 베스트11을 강조하다 보니 교체 자원의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베스트11을 구성하기까지는 다양한 선수를 편견 없이 실험해본 것이 벤투호이기도 하다. 첫 소집에서 불렀던 황인범(올림피아코스)과 김문환(전북 현대)은 오늘날 한국 축구의 대들보로 성장했고 나상호(FC 서울), 정우영(프라이부르크) 등도 벤투호에서 기회를 얻었다.

가장 중요한 월드컵에 이르러서는 유연성도 크게 나아진 모습이 나왔다. 기존 주전 스트라이커였던 황의조(올림피아코스)가 소속팀에서 출전 문제로 흔들리자 신예 조규성(전북 현대)을 중용해 월드컵 첫 멀티골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고, 왜 쓰지 않느냐던 젊은 재능 이강인(레알 마요르카)도 조커로 쏠쏠히 활용했다.

축구팬들과 전문가들이 벤투호에 의심을 보낼 때 정작 선수들은 "훈련부터가 다르다"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는 말을 반복했다. 벤투 감독이 퇴장 징계를 받아 벤치에 앉지 못할 때도, 선발 명단에 변화가 있을 때도 선수들은 이유가 있는 행동일 것이라며 감독에게 신뢰를 보냈다. 서로에 대한 신뢰는 벤투호가 호성적을 거둔 첫 번째 비결이었다.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믿음은 결국 팀을 위한 자기 희생과 헌신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물로 이어졌다. 주장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은 안와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입고도 월드컵 출전을 강행했고, 16강 진출을 확정한 뒤에는 "벤투 감독이 벤치로 돌아와 경기를 치를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감독의 복귀를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겉으론 표정이 없고 무뚝뚝해 보이는 벤투 감독도 필요할 때면 선수들을 대신해 주심이나 언론에 화를 내는 등 팀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섰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벤투 감독은 이번 카타르월드컵에서 유일하게 16강 진출을 성공시킨 외국인 감독이 됐다. 이제 벤투호의 다음 목표는 사상 최초 원정 8강이다.

[카타르/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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