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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스테이크 주문은 받아도 축구는 주문 받지 않는다"… 한국서 빛난 벤투의 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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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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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왜 내가 선수들과 전술을 의논하지 않느냐고? 난 선수들에게 우리가 4-3-3으로 경기할지, 4-4-2로 경기할지 묻지 않는다. 대신 내가 스테이크 주문은 받을 수 있다. 난 선수들에게 웰-던으로 먹을지, 미디엄-레어로 먹을지 물어볼 수 있고 사이드 메뉴로 밥과 파스타 중에 선택하라고 말해줄 순 있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53)은 포르투갈 사령탑이던 2012년 6월 포르투갈 현지 신문 '익스프레소'와 인터뷰하며 이렇게 말했다. 벤투는 포르투갈 리스본 근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벤투는 유년 시절 식당을 운영한 부모님을 도와 서빙 일을 했다. 그래서 스테이크에 대해선 축구만큼 잘 안다.

인터뷰 답변은 그래서 나왔다. 축구 전술을 결정할 최종 권한은 감독에게 있다. 그런 감독이 선수 등으로부터 전술을 주문받거나 의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터뷰 당시 포르투갈은 벤투의 능력을 의심했다.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보유하고도 벤투는 대표팀에서 지독하게 '수비축구'를 구사해 비판받았다. 일각에선 그가 선수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불통' 감독이라고 몰아붙였다. 이에 대한 그의 답변은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고 충실해야 한다는 그만의 뚝심이자 신념이다. 벤투는 "난 팀이 전술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고 선수들은 그걸 실행하는 사람"이라고도 강조했다.

벤투의 뚝심은 포르투갈보다 우리나라에서 빛났다. 많은 이들이 그의 축구를 의심했지만 카타르월드컵에서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우리 시간으로 6일 오전 4시 카타르 도하의 스타디움 974에서 열릴 브라질과의 16강전은 그런 의미에서 반갑다. 세계랭킹 1위, 역대 최고 전력이라 평가받는 브라질은 그의 축구 신념을 입증할, 더없이 좋은 상대다.

벤투는 2018년 8월23일 우리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취임하고 4년간 자신의 '빌드업 축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특히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와의 접촉을 크게 줄였다는 이야기가 있어 눈길을 끈다. 축구관계자들에 따르면, 벤투는 축구대표팀 선수선발 및 운영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권한을 가진 기술위원들과는 되도록 소통하지 않았다. 권한 이상으로 대표팀에 개입하려 하는 이들을 멀리하고 자신이 세워놓은 대표팀 뼈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까지 유일하게 김판곤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과 소통했지만, 김 위원장이 사임한 뒤로는 대부분 혼자서 대표팀 일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 카타르 도하를 들러 베이스캠프를 답사할 때도 일부 인원이 동행하긴 했지만 거의 벤투 감독이 베이스캠프와 훈련장 등 모든 사항을 결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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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에 오른 축구대표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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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 감독과 하이파이브 하는 이강인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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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는 여론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공식 기자회견 때는 말을 최대한 아끼고 선수 점검 및 선발에 관해서는 늘 코치진, 주변 지인들과 함께 물밑에서 움직였다. 월드컵을 준비할 때는 이강인을 몇 차례 뽑지 않으면서 무관심해 보였지만, 사실은 내부적으로는 이강인을 수시로 점검하고 월드컵에선 중용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본지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지형상 인접해 있어 서로 축구 관련 정보가 자주 오간다"며 "벤투 감독도 스페인, 포르투갈에 있는 축구 소식통들을 통해서 이강인의 특성, 경기력, 몸 상태 등 정보를 받으면서 월드컵에 데려갈지 여부를 고민해온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런 벤투를 대표 선수들은 크게 신뢰하고 지지한다. 우리 대표팀이 16강에까지 오른 원동력은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벤투 감독은 경고 징계로 지난 3일 포르투갈과의 H조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벤치에 앉지 못했지만, 관중석에서 격한 리액션을 보이며 대표팀에 대한 애정, 열정을 보였다. 경기 후엔 라커룸 앞 통로에서 선수들을 한 명씩 안아줬다. '캡틴' 손흥민은 포르투갈을 꺾은 후 "벤투 감독님의 마지막 경기를 벤치에서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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