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왜 남의 동네서 횡포”…‘진짜 주민’ 분노폭발, 도넘은 ‘주택가 시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평온한 주택가 주민 일상 망치는 민폐
집회·결사 자유만큼 타인 기본권 존중


매일경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와 일부 소유주들이 지난 12일부터 용산구 한남동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자택 앞에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노선 관통을 반대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 = 독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업하려면 ‘나는 자연인’이 돼야 하나.

기업인의 집이 있는 동네라는 이유로 주택가에서 도를 넘는 ‘민폐 시위’가 늘어나고 있다.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일방적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고성과 비난이 난무한다. 다른 동네 주민들이 몰려와 진짜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는 보장받아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기본권은 침해하지 않는 성숙한 시위 문화가 ‘제발’ 정착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업인과 같은 동네 사는 죄?


매일경제

은마 관통 결사 반대 시위 자료 사진 [사진출처=매경DB]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한남동 주택가 주민들은 지난 12일부터 2주 넘게 수백명의 외치는 구호 소리와 함성으로 시끄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단체로 대형버스에 타고 온 수백명의 사람들이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도로에서 행진했다.

마이크를 든 사람의 구령에 따라 “은마 관통 결사 반대”를 외쳤다. “함성”이라는 구호가 나오면 다 같이 소리를 질렀다.

이들은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강 모집한 시위대다. 매일 대형버스를 타고 와 한남동 주택가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국책사업으로 추진 중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 노선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 양주와 수원을 연결하는 GTX-C 노선은 지난해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착공 예정 시점은 내년이다.

삼성역에서 양재역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은마아파트 지하 약 60m 깊이를 관통하는 것으로 설계됐다.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일부 주민들은 “입주한 지 40년 넘은 낡은 아파트 지하에서 철도 공사를 하면 최악의 경우 건물 붕괴 등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건설은 기본적으로 GTX 공사가 지하 깊은 곳에서 이뤄지고 비발파식 공법을 도입하기 때문에 안전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은마아파트 주민들 요청에 매봉산을 통과하는 우회안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이 노선 역시 인근 다른 아파트 단지 밑을 지나게 돼 결국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기존 GTX 시공 현장들에서도 주거지를 통과하는 사례들이 많은데, 은마아파트만 유독 우회안을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에 따르면 GTX-A와 지하철 공사 과정에서 20개 구간이 주거지를 통과했다. 이미 철도가 지나는 구간에 재건축 사업이 이뤄진 곳도 12곳에 달한다.

또 은마아파트 구간은 발파 공법이 아닌 터널보링머신(TBM) 공법을 적용한다. TBM은 회전 커터에 의해 터널 전단면을 절삭 또는 파쇄해서 굴착하는 기계다. 진동과 소음을 줄일 수 있어 다양한 시공 현장에 도입됐다.

매일경제

지난해 서울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건설사업 C노선 전략환경영향평가서(초안) 공청회에서 은마아파트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위대는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GTX-C 사업의 담당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해당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이 아닌 오너인 기업인의 한남동 집 앞에서 2주 넘게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대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서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위 는 직장인들이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시간대에 진행됐다.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국토부의 공식 견해와 건설 전문가들 및 시공사 설명도 무시한 채 수정안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GTX와 관련이 없는 한남동 주민들의 불편을 볼모로 삼고 무리하게 시위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남동에 산다는 A씨는 “기업인의 이웃에 살고 있다는 것이 죄인가?”라며 “자신들의 권리가 소중하다면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싶은 이곳 주민의 권리도 소중하다는 점을 시위대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남동 주민 B씨도 “은마아파트 소유주들이 불만을 가지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방식이 문제”라며 “아이들이 학교도 가고 학원도 다니는데 행여 다칠까 봐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주택가에 있는 기업인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진짜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 모 시민단체는 배드민턴장을 무상으로 지어달라며 서울 한남동 이명희 신세계 회장 자택 앞에서 수차례 집회를 벌였다.

이마트가 매입한 부지에 과거 배드민턴장이 있었으니 이마트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구청에서 행정 허가도 나오지 않아 기업이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요구를 들고 기업 회장 집 앞에서 막무가내 시위를 벌였다.

같은 해 다른 시민단체는 서울 한남동 이재용 삼성전자 당시 부회장의 집 앞에서 술을 마시며 삼겹살을 구워 먹는 소위 ‘삼겹살 폭식 투쟁’을 벌였다. 기타를 치고 노래도 불렀다.

2019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자택 앞과 2018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자택 앞, 올해 초에는 이재현 CJ 회장 자택 앞에서도 시위가 열렸다.

한편 해외 선진국들은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집회에 대해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프랑스는 집회 소음이 주변 배경소음보다 주간 5데시벨, 야간 3데시벨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소음 유발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장기적으로 소음을 발생시킬 경우 수수료를 부과한다.

또 집회 및 시위를 위해 공공전기를 사용하려 할 때 관할 지자체와 사전 협의토록 하는 등 집회·결사 자유와 시민의 생활권을 함께 보장하는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