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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세무사시험 '공무원 특혜' 의혹 1년…장기전 준비하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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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연 활동가 27명 구제, 59명 새 합격
불합격처분 취소 소송 진행 중, 로펌 선임
"특례 폐지 법안 발의 등 성과…연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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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시험제도개선연대(세시연)는 지난 5월 서울 동대문구 한국산업인력공단 서울본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공단은 수험생을 상대로 한 범죄행위에 사과하라"고 외쳤다./주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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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주현웅 기자] "합리적인 문제 제기라고 생각했는데 이토록 고단할 줄 정말 몰랐어요. 하지만 희망을 봅니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있으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연대죠."

공무원 특혜 의혹이 불거진 지난해 2차 세무사시험 응시생들은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투쟁을 자처한다. 의혹의 진실을 밝히겠다며 2030세대 응시생들이 중심이 돼 구성한 '세무사시험제도개선연대'(세시연) 활동가들은 높은 현실의 벽에 울다가도 뜻밖의 사회 변화에 기대를 품는다.

지난달 23일 발표된 올해 세무사시험 최종 합격자 명단에 세시연 활동가들은 59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와 별도로 작년 고용노동부와 감사원이 각각 벌인 감사를 통해 구제된 인원은 총 27명이다. 전체 약 300명의 활동가 중 30%가량이 가까스로 세무사가 됐다.

세시연 안에서도 희비는 엇갈린 셈이지만 표정은 한결같다. 합격을 떠나 불공정한 시험 제도와 불투명한 채점 과점 등의 문제를 개선해 보겠다는 의지가 비장하다. 새 합격자들도 시험의 공정성을 가리는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 행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른 재채점에서 구제된 황연하 세시연 대표도 그중 한 명이다. 지난달 29일 한 세무법인에 첫 출근을 한 황 세무사는 "가까스로 합격은 했으나 행정소송 등 남은 과제가 많다"며 "오히려 이제 진짜 시작이라 더 바빠질 듯하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도 소송 등 다양한 활동에 나서려면 예기치 않은 돈과 시간이 필요한 게 사실"이라며 "저를 비롯한 합격자들이 더 크게 보태며 앞으로도 세무사시험 제도 개선을 위해 끝까지 달리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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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과 7월 고용노동부와 감사원은 각각 작년 2차 세무사시험에 대한 감사를 벌여 결과를 발표했다. 일부 문제점을 발견해 출제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 담당 직원 징계 및 재채점 등을 권고했으나 세시연은 사안의 전모를 밝히지 못했다며 행정심판과 감사 재청구에 나섰다. 사진은 올해 초 공무원 일부 시험과목 면제에 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기자회견을 연 세시연의 모습./더팩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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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과 7월 고용노동부와 감사원은 각각 작년 2차 세무사시험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일부 문제점을 발견해 출제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 담당 직원 징계 및 재채점 등을 권고했다. 이에 세시연은 사안의 전모를 밝히지 못했다며 행정심판과 감사 재청구에 나섰다.

뜻대로 풀리진 않았다. 불합격처분 취소를 구하는 행정심판은 지난 8월 기각됐고 감사원도 재감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세시연은 지난달 회원 모금을 통해 로펌을 선임하고 불합격처분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한 분쟁을 계속하는 이유는 개선 가능성을 아직 믿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에는 서울행정법원 14부(재판장 이상훈 부장판사)가 수험생들이 한국산업인력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채점기준표와 모범답안 등의 증거보전 신청을 인용하는 등 희망이 있다고 한다. 고용노동부와 감사원의 감사 후에도 이뤄지지 않은 채점 기준표 및 모범 답안이 공개될 수도 있다.

또 국회에도 국가 전문자격시험에서 공무원 응시생이 시험과목 일부를 면제받는 제도의 폐지를 뼈대로 하는 세무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공무원의 일부 과목 면제가 불공정하다는 세시연의 끈질긴 문제 제기로 얻어진 결과다.

세무사 외 법무사·공인노무사·관세사·변리사·행정사 등의 공무원 일부 과목 면제까지 논란이 되는 등 사회에 새로운 논의 주제를 제시했다는 의미도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민 35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77%가 공무원 시험과목 면제 특례를 반대한다고 나왔다.

세시연 청년들이 여기까지 나서는 이유는 단연 '공정'이 목표다. 공무원 시험 특례 제도의 적정성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들은 누구도 특혜를 부여받지 않고 같은 조건에서 공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게 공정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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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위기를 넘어 미래로’ 민·당·정 토론회를 마치고 나오자 3명의 청년이 취재진을 뚫더니 불쑥 그 앞을 마주했다. ‘공무원 특혜 의혹’이 불거진 지난해 2차 세무사시험에서 억울하게 고배를 마신 수험생들이었다. 해당 시험에 관한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이지만, 이들은 절차 문제 때문에 재청구를 준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주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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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수험생들인 세시연의 활동가들은 상황이 이같이 번질 줄은 몰랐다고 입을 모은다. 집회나 시위 등에 한 번도 참여해본 적 없는 취업 준비생들이 시민단체 등의 도움도 없이 힘을 합쳐 사안을 공론화하자 새삼 신기하기도 한다.

실제 지난해 12월 서울 종각에서 개최한 첫 기자회견에는 단 한 명의 기자도 현장을 찾지 않았다. 당시 지방에서 올라와 의혹의 실체를 규명해달라는 피켓을 들은 한 수험생은 서러움에 눈물을 훔쳤다. 이 수험생은 올해에는 합격했다.

종각 시위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수험생은 "경력 공무원이 이끄는 세무사 사무소 취업은 어려워 보인다"면서도 "그래도 연대의 힘을 믿기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인 소송 및 기타 대응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그나마 이전에는 세시연이 배포한 자료 등을 보고 험께 목소리를 내주는 일부 시민과 매체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관심마저 사라지는 분위기다. 세시연은 이런 상황에서도 출제기관인 산업인력공단 등과의 '장기전'을 준비 중이다.

세시연 한 활동가는 "그동안은 시위 등을 하는 집단을 나쁘게 바라보는 경향이 컸다"면서 "하지만 내 삶에선 절대 없을 줄 알았던 부당함을 마주하며 제 목소리를 내고, 동기들과 연대하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알게 돼 결코 느슨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지난해 9월 치러진 2차 세무사시험에서는 '세법학1부' 과목의 과락율이 82%에 달해 논란이 일었다. 최근 5년 평균 38%의 두 배를 웃도는 수치다. 20년 경력 이상 세무공무원은 면제받는 과목이라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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