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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왜 재벌집 막내아들만 후보 단일화 실패를 예측했을까? [추적자 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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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3대 대선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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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안의 화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현대사를 관통한 여러 역사적 사건이 등장합니다. 특히 삼성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재벌집의 이야기 초반 재벌집 막내아들이 창업주의 눈에 띄는 핵심 사건, 1987년 치러진 13대 대선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는데요.

집안 모든 어른들이 YS(김영삼)와 DJ(김대중)의 단일화를 예측한 가운데 미래에서 온 재벌집 막내아들만 단일화 실패로 인한 노태우 후보의 어부지리 당선을 맞춥니다. 이후 막내아들은 창업주에 눈에 띄어 후계구도의 중심에 섭니다.

실제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는 36.64%를 얻어 김영삼 후보(28.03%)와 김대중 후보(27.04%)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며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물론 YS와 DJ 모두 순차적으로 대통령에 오르지만 당시 누구도 노태우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단일화 실패의 파급력이 컸다는 뜻인데요. 실제로 두 후보는 대선 전년도인 1986년부터 단일화에 대한 대승적 양보 의사를 밝히며 후보 단일화는 ‘기정 사실화’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선 날짜가 다가옴에 따라 두 후보 모두 한치의 양보가 없는 경쟁 구도가 형성됐고 정치권에선 단일화 후보 경선이나 후보단일화추진위원회 구성까지 추진됐지만 결국 간극을 좁히지 못했습니다.

결정적 사건은 대선을 2달여 앞둔 10월, 고려대 시국토론회서 터졌습니다. 이날 두 후보의 단일화 발표가 있을 것이란 예상이 있을 만큼 단일화 기대감은 최고치에 다다랐습니다. 허나 김영삼 후보가 연단에 오르자 사퇴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이어 오른 김대중 후보에겐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김대중 후보는 통일민주당을 전격 탈당하고 독자 출마를 선언하며 김종필 후보까지 총 4자 대결로 대선은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는 결과로 귀결됐습니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정치계 격언이 있습니다. 그만큼 예상이 어렵다는 뜻인데요. 미래에서 그 결과를 본 재벌집 막내아들쯤 돼야 맞출 수 있는 고차 방정식이 바로 단일화 여부였습니다. 실제 역사속에서도 단일화 성공과 실패는 대선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였습니다.

먼저 13대 대선과 유사하게 단일화 실패가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선거는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15대 대선입니다. 대한민국 헌정사 처음으로 기호 2번 후보가 당선된 대선으로 김대중 후보가 40.27%의 득표율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37.74%)와 불과 1.5%P 격차로 승리한 대선입니다. 이 최소표차 당선은 이번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맞붙은 20대 대선에서 깨지기 전까지 기록이었습니다. 13대 대선이 민주화 세력 후보 간의 단일화 실패라면 15대 대선은 보수진영의 분열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대선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1위를 기록한 가운데 당시 파란을 일으키며 결선투표까지 진출했던 이인제 후보가 경선 결과에 불복하며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합니다. 반면 자민련 김종필(JP) 후보는 DJP 연합을 내세워 김대중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합니다. 이러한 양 진영간의 단일화 결과는 결국 극적인 대선 결과로 귀결됐습니다. 당시 이인제 후보는 19.2%를 득표했습니다.

매일경제

20대 대선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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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단일화 성공이 대선 결과에 결정적 역할을 한 대선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DJP가 성공한 단일화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선거였던 20대 대선의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역시 가장 극적인 대선 결과를 만드는데 일조를 한 단일화 결과로 평가받습니다. 지난 3월 3일 이뤄진 극적인 조건 없는 단일화는 윤석열 후보의 0.73%P 차이 신승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끌어냈습니다. 물론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에 돌입한 직후 사퇴한 바람에 그 표심이 어디로 향했는가에 대한 해석의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16대 대선 역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가 큰 영향을 미친 선거로 평가됩니다. 2002년 두 후보는 후보단일화 토론회를 거쳐 여론조사 방식 단일화 조사를 통해 노무현 후보가 최종적으로 대선에 나섭니다. 흥미롭게도 정몽준 후보는 선거일 전날 지지 철회를 선언하며 단일화 불복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에 2.4%P 차이로 승리하며 성공한 단일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근 만난 한 정치인은 선거를 여러 번 해봤지만 결과가 나올때까지는 한 번도 예측을 성공해본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민심은 끝까지 알수가 없는 것이죠. 앞서 말씀드린 대선 단일화 이야기에도 무궁무진한 야사와 뒷이야기들이 넘쳐납니다. 어쨌든 드라마가 다시 소환한 후보 단일화의 역사, 결과를 맞춘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고 가족들이 놀라는 이유, 절대 맞출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또 어떤 선거에서 어떤 단일화가 이뤄지고 실패할지, 역사는 항상 반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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