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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4년 전 월드컵·'날강두 노쇼' 모두 보상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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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 2-0 이겼지만 16강 좌절
한국이 독일 꺾어 어부지리로 멕시코 16강 진출해
호날두, 김영권 동점 골 기여..."날강두 '노쇼' 갚았다"
한국일보

3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 전반,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안 호날두가 골키퍼 선방에 슛이 막히자 아쉬워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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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갈 줄 알았습니다! '날강두'가 오늘 보니 복덩이네요."

직장인 박찬우(32)씨는 3일 새벽(한국시간) 대한민국 16강 진출의 기쁨에 밤을 새웠다. 우리 대표팀이 16강 진출 꿈을 이룰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지만 90분 내내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시청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대표팀의 꿈이 확정되는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박씨는 "4년 전 세계 최강 독일을 2-0으로 완파하고도 16강 진출이 좌절돼 나 역시 엄청 울었다"면서 "더군다나 '날강두'가 몸으로 어시스트까지 해주니 이보다 좋을 수 있나"라고 말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의 한...4년 만에 보상받아

한국일보

손흥민이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인 독일과 경기에서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한국은 2대 0으로 승리했고, 독일은 사상 처음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FIFA 유튜브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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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 월드컵은 우리에게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디펜딩 챔피언인 세계 최강 독일을 상대로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승리하고도 좌절의 눈물을 삼켰다.

한국 대표팀은 당시에도 16강 진출을 위해 기적이 필요했다. 같은 조였던 멕시코와 스웨덴에 져서 2패를 기록했는데 마지막 3차전에서 독일을 두 골 차이로 이기고, 멕시코가 스웨덴을 잡아주면 16강 진출이 가능했다.

그러나 멕시코가 도와주지 않았다. 우리 대표팀은 김영권(32·전북)과 손흥민(30·토트넘)이 후반 추가 시간에 득점포를 터트렸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멕시코는 우리 대표팀 덕분에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태극전사들은 2-0으로 독일을 완파하는 파란의 주인공이었지만 쓸쓸히 짐을 싸야만 했다. 다만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로 러시아 월드컵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독일을 격파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독일은 이웃 유럽 국가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고, 한국은 월드컵 때만 되면 소환되는 함부로 볼 수 없는 강팀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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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3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2대 1로 승리하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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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또 달라졌다. 4년 전 우리 덕에 어부지리로 16강에 나갔던 멕시코는 일찌감치 짐을 쌌고, 독일도 '한국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일본에 패하며 '2연속 월드컵 조기 탈락'이라는 역사를 썼다.

분위기는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듯했다. 어쩐지 4년 전 억울했던 탈락의 보상을 받는 듯 기적의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12년 만에 꿈을 이뤄냈다. 불가능에 가까운 6%의 확률을 뚫어버린 것이다.

손흥민의 기쁨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대신했다. 4년 전 악몽이 떠올랐는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그는 이날 포르투갈과 1-1 상황에서 후반 추가 시간 1분여 만에 영화 같은 약 70m 단독 드리블을 선보였다. 그는 많은 수비수들을 제치고 황희찬(26·울버햄튼)에게 어시스트에 성공했고, 아우는 포르투갈의 골망을 흔들었다.

손흥민은 경기 종료 직후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4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2018년에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특별하게 결과까지 얻게 돼서 너무 기쁘고 선수들이 정말 정말 자랑스럽다"라며 대표팀 주장으로서 후배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그는 6일 새벽 브라질과의 16강전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손흥민은 "16강 올라가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다가오는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축구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며 "잘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경기 보여드리고 싶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날강두'가 다시 '호날두'된 날

한국일보

3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교체 아웃되는 크리티아누 호날두가 조규성이 빨리 나가라는 신호를 하자 조용히 하라며 손가락을 입에 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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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과의 경기는 또 다른 의미의 복수전이었다. 2019년 7월 서울에서 열린 K리그 선발팀과 이탈리아 명문 유벤투스와의 친선경기를 떠올리는 국민들이 많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날강두'가 된 날이었다.

당시 유벤투스 소속이던 호날두를 보기 위해 서울 월드컵경기장에는 6만 5,000명 관중이 모여들었다. 관중들의 호날두를 향한 사랑은 유벤투스 선수단의 몰지각한 '1시간 지각' 행보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된 이후 관중들의 마음이 바뀌었다. 팬들은 호날두가 그라운드를 뛰는 모습을 직관하고 싶었다. 불편하거나 아픈 몸을 이끌고 오로지 호날두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사연 많은 관중들도 있었다. 그러나 경기 종료 시간이 다 되도록 호날두는 벤치에 팔짱을 끼고 앉아만 있었다. 관중들은 대형 화면에 호날두의 얼굴이 비칠 때마다 "호날두!"를 연호하며 그라운드에 나와 주기를 바랐다.

결국 호날두는 단 1초도 뛰지 않고 벤치에서 경기를 끝냈다. 나중에 유벤투스와 K리그 선수들의 경기가 65억 원짜리 경기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언론에선 '호날두 노쇼 사태'라고 보도하며 유벤투스와 호날두의 '갑질'을 문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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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선발팀과 친선전에서 당시 유벤투스 소속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운데)가 팔짱을 끼고 벤치에 앉아 있다. 이날 경기에서 유벤투스는 주최측과 호날두가 '45분 이상 뛴다'는 조항을 계약 조건에 넣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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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는 몸이 좋지 않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는 돌아간 직후 우리 국민들을 우롱하듯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운동하며 몸을 과시하는 사진을 게재했다. 이때부터 그는 '호날두'와 '날강도'를 합성한 '날강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래서 일부 축구팬들은 한국이 포르투갈을 꺾어주길 바랐다. 뚜껑을 열어보니 호날두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골 욕심에 무리한 슈팅을 남발했다. 심지어 전반 우리가 0-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코너킥을 얻었고, 이강인(21·마요르카)의 왼발 크로스가 호날두의 등을 맞고 김영권의 발밑에 떨어졌다. 김영권은 차분하게 골망을 흔들어 동점골을 만들었다. 호날두의 뜻밖의 어시스트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축구팬들은 이를 두고 "날강두가 '노쇼' 사태를 몸으로 갚았다"라며 통쾌해하기도 했다.

김영권도 당시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는 경기 종료 후 믹스트존에서 취재진에게 "코너킥이 올라오는 순간, 상대 수비 선수들이 한 발 올리더라. 그런데 올린 라인으로 볼이 떨어질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그래서 거기로 갔는데 또 앞에 볼이 떨어졌다. 운이 되게 좋았다"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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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전반 한국이 0-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김영권이 동점골을 넣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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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김영권은 호날두가 혼잣말로 욕을 했다는 목격담까지 털어놨다. 그는 "포르투갈어로 욕을 하더라. 우리 코칭스태프가 포르투갈 사람이잖나. 그래서 포르투갈 욕을 많이 들었다"며 "근데 똑같은 이야기를 (호날두가) 많이 하더라. 그냥 혼잣말이었다"라고 말했다.

조규성(24·전북)도 이날 경기에서 호날두와의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그는 호날두를 "날강두"라고 말하며 "(호날두가 교체돼) 나갈 때, 빨리 나가라고 '패스트(fast), 패스트(fast)' 했는데 갑자기 포르투갈 욕설을 하더라"라고 밝혔다.

호날두는 계속 우리의 골문을 위협했다. 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고 1-1로 팽팽하던 후반 20분 안드레 실바(27·라이프치히)와 교체돼 쓸쓸히 퇴장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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