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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최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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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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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직후 임명된 최병렬 서울시장이 간부들을 불렀다. 그는 “비난에 위축되지 말라. 잘못되면 감옥은 내가 대신 간다”고 했다. 이어 “접시를 닦다 깨는 것은 괜찮지만 접시 깰까 봐 아예 닦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했다. 7개월 간 서울시 체제를 뒤바꾸고 ‘안전 시장’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는 불같은 성격이었다. 기자 때 후배가 낙종하거나 기사를 잘 쓰지 못하면 불호령을 내렸다. 독선에 가까울 정도로 혹독했다. 간부 회의 때 선배와 책임 논쟁이 벌어지자 “어디 떠넘기느냐”며 책상을 뛰어넘어 공중 부양했다. 편집국장 시절 권력기관에서 기사 빼라는 요구가 오면 “난 못 하니 당신들이 와서 신문 만들어”라며 수화기를 던졌다. 공보처·문공부·노동부 장관 땐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불도저처럼 몰아붙였다. “목숨을 걸고 하라”고 했다. KBS 노조가 파업하자 곧바로 공권력을 투입했고, 노동계의 반발에도 총액임금제를 밀어붙였다. 버스전용차선제도 시행했다. 1985년 총선에선 처음으로 여론조사 기법을 도입했다. 당대표 땐 이익 단체의 항의 집회에 직접 나가 “책임지고 대책을 만들겠다”고 설득했다. 그 추진력 때문에 ‘최틀러’(최병렬+히틀러)라는 별명을 얻었다.

▶밖에선 독재자 같았지만 집에선 자상한 가장이었다. 처가의 반대 때문에 7년 만에 결혼한 아내를 끔찍이 아꼈다. 공처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온순한 양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아내에게 하루 3~4번은 전화했다. 자녀들에게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공부하라”는 말보다 “놀려면 재미있게, 운동 많이 하라”고 했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그에게 잘보이려고 돈 1억원을 보냈다. 그는 즉시 돈을 돌려보냈다. 정 회장은 “내 평생 돈 돌려받기는 처음”이라면서 최틀러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의원 시절 정치자금 수백만 원을 지갑에 넣고 있다 아내에게 들켰다. 아내가 “무슨 돈인데 혼자 숨겨 놓고 쓰느냐”고 했지만 “선거 자금이라 사사로이 쓰면 안 된다”고 했다. 장관 땐 명절·연말에 선물로 들어온 술·넥타이·음식 등을 집무실 테이블에 올려놓고 직원들을 불러 가져가게 했다.

▶그는 2003년 대선 자금 특검을 관철하려고 단식에 들어갔다. 의사들이 “당분·영양 음료를 마셔야 몸이 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원칙을 지킨다며 물과 소금만 먹었다. 열흘간 독한 단식 끝에 특검을 받아냈지만 건강이 크게 상했다. 수년 전부터는 거동도 힘들어졌다. 그는 2일 결국 세상을 떠났다. 주변에선 건강했는데 단식 후유증 때문에 이렇게 됐다며 안타까워 한다.

[배성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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