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데스크에서] 그 보도자료 꼭 내야 했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난달 17일 오후 코레일은 기자단에 A4 용지 3쪽짜리 보도자료를 뿌렸다. ‘나희승 코레일 사장, 국제철도연맹 아태지역 의장 피선’이란 제목이었다. ‘2년 임기’라는 부제도 달려 있었다. 당시 코레일은 연이어 터진 코레일 사망 사고로 각계에서 지탄을 받고 있었다. 국토부 감사도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 와중에 ‘나 사장의 아태지역 의장 선출’ 홍보 자료를 낸 것이다. 코레일 내부에서도 “직원이 죽었는데 이런 자료를 지금 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한다. 아태지역 의장직 임기는 내년부터 시작이라 내년 초에 보도자료를 내도 된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나 사장은 보도자료 배포를 밀어붙였다고 한다.

조선일보

나희승 코레일 사장이 지난달 11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를 마친 뒤 탈선 사고와 작업자 사망사고가 이어진 데 대해 사과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나 사장은 국회 등으로부터 강한 사퇴 요구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맡게 됐다는 아태지역 의장직 임기는 그의 남은 임기(2년)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그가 아태지역 의장 자리를 코레일 사장 임기 보전용으로 활용하려고 사망 사고 와중에 보도자료 배포를 급히 지시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코레일 내부에서 나왔다.

그동안 취재하면서 여러 조직의 수장들을 봐왔다. 대체로 좋은 리더라고 평가받는 이들의 특성은 제각각이라 공통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온화한 성격도 있고, 다혈질도 있었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잘 듣는 사람도 있었고, 독재자처럼 조직의 멱살을 잡아 끌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나쁜 리더의 경우 공통점을 찾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중 하나가 ‘무(無) 공감’이었다. 나쁜 리더는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다. 남은 나를 위한 도구이며, 남의 아픔은 거추장스러운 것쯤으로 여긴다. 결국 조직에 폐를 끼친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현 대법원장 사례도 여기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병으로 몸무게가 10㎏ 넘게 빠져 사표를 내겠다며 찾아온 후배 판사를 조롱했다. 당시 후배 판사는 ‘적폐 판사’로 지목돼 민주당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이 대법원장은 “내가 사표를 받으면 (민주당이 당신을) 탄핵을 못 한다”며 반려했다. 아픈 후배 판사 면전에 이런 말을 하면서 그는 피식피식 웃었다. 그에게 후배 판사는 자신을 지지하는 정치 세력에게 줄 제물에 불과했다. 더구나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거짓말 하다가 사실이 들통나 법원 전체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나 사장은 앞서 지난 11일 국회에 나가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진심이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엿새 뒤 나온 아태지역 의장 선출 보도자료 곳곳에 배어 있는 ‘흥분’은 그가 부하 직원의 죽음을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헷갈리게 한다. 잇단 사망 사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만장일치로 선출’ ‘철도 발전 전략 제시’ ‘한국철도의 국제적 위상’ 등을 자화자찬했다. 공감이 안 된다면 눈치라도 있어야 한다.

[조백건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