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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2042 월드컵은 화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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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주말] [안형준의 안녕, 우주!]

카타르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축구 열기로 가득하다. 추운 날씨에도 이어진 전국 곳곳 길거리 응원 현장을 찾은 이들과 TV 앞에 모인 가족들의 함성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 대표팀의 선전 외에도 볼거리가 풍부했다. 선수와 공의 위치 데이터를 파악해 오프사이드 여부를 판독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돼 오심을 줄이고 축구 관전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조선일보

지난 8월 루이스 피구 등 축구 선수들이 비행기 안에서 무중력 상태로 축구 경기를 하는 모습. /마스터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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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저명한 기술철학자 자크 엘룰은 1964년 출판한 저작 ‘기술사회’에서 “스포츠 자체가 신체적, 정신적 능률을 높이는 일종의 사회적 기술이며 과학기술과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과학기술적 요소가 스포츠와 결합해 페어플레이의 기준을 높이는 모습을 보여준 사례로 기억될 수도 있겠다. 만약 과학기술의 힘을 빌어 우주로까지 스포츠가 나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 10월 포르투갈의 전설적인 축구 스타 루이스 피구와 중동, 유럽, 남미의 아마추어 선수 7명이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기념해 무중력 항공기 내부에 설치된 특별 미니 축구장에서 게임을 벌인 적이 있다. 공중을 날아다니며 멋진 킥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몸을 가누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러웠지만 우주에서도 축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는 충분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중력에 적응하며 진화해 왔다. 중력의 효과가 거의 사라지는 우주에 가면 수백만년에 걸쳐 지구의 끌어당김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인간의 몸은 급격한 변화에 직면해야 한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우주인들은 이러한 과정을 우리 몸에 새로운 물리적 환경 변화를 입력하는 상황에 빗대어 ‘보디 로딩’(body loading)이라 부른다. 실제로 위아래가 없는 무중력 상황에서 우리 감각체계가 혼란을 느끼는 ‘우주 멀미’는 일주일 정도면 어느 정도 끝이 난다.

그러나 우주 환경에서는 중력에 대해 우리 몸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운동 부하가 없어 장기적으로 근육과 뼈가 약해지는 현상을 막기 어렵다. 억지로 근육을 쓰게 만드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한 달에 최대 1%가량의 근육이 소실된다. 국제우주정거장에는 3가지 유형의 운동 기구가 있는데, 우주인의 몸을 고무줄로 묶어 다리 방향으로 중력 효과를 만들어 달릴 수 있는 러닝머신과 자전거, 역도 기구 등이 있다. 우주인들은 프로 운동선수와 마찬가지로 매일 2시간씩 운동을 하고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운동이 우주인의 개인 업무에 가깝고 별로 재미가 없어 꾸준히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활동하는 우주인들은 그래서 지상에서 하던 여러 스포츠를 우주에서 재현하는 시도를 벌였다. 2006년 러시아 우주인 미하일 튜린은 우주 유영 중 골프 티샷을 우주공간에 날렸고, 2007년 미국 우주인 수니타 윌리엄스는 우주정거장에 설치된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방식으로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해 4시간 24분 만에 완주 기록을 세웠다. 2008년에는 미국 우주비행사 개럿 리즈먼이 우주정거장과 320km 넘게 떨어진 미국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미 프로야구 경기에 시구를 했다. 우주정거장 내에서 공을 던지면 진공 상태로 뜨는데 이 모습이 지상 야구장의 전광판에 나타났다. 야구장에 있는 타자는 우주비행사가 공을 던지는 순간에 맞춰 방망이를 휘둘러 공을 치는 흉내만 냈다.

우주인들은 다른 우주비행사들과 함께 스포츠 경기를 즐기기도 한다. 2018년 2월, 국제우주정거장에서는 미국, 러시아, 일본 우주인 4명이 처음으로 배드민턴 대결을 벌였다. 네트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셔틀콕을 라켓으로 쳐서 주고받는 수준의 경기였지만, 스포츠가 우주인들의 정신 건강을 유지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

화성을 목적지로 떠나는 장거리 우주여행에서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스포츠를 즐길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지구에서 즐기던 여러 스포츠 종목은 중력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무중력 환경에 맞는 형태로 규칙을 손보거나 전혀 새로운 형태의 스포츠가 출현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무중력 또는 지구에 비해 중력이 약한 달이나 화성에서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스포츠 종목을 개발하는 노력이 시작됐다.

지난해 민간 우주관광을 본격 시작한 미국의 우주기업 블루오리진은 화성에서 축구 경기를 할 수 있는 경기장과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이를 가상현실(VR)에서 미리 시연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 ‘마스VR’을 개발했다. 돔 형태의 경기장에서 벽에 공을 튕기고 지구보다 낮은 중력 환경에서 몇 배 높이 점프해 헤딩을 하거나 오버헤드킥을 할 수 있는 초인적인 축구를 즐길 수 있다.

어디에 있든 재미있게 놀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스포츠는 경쟁과 협력, 공정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정서를 통합하는 역할을 해 온 인류 문명의 최고 발명품 중 하나다. 인류가 지구 밖으로 문명을 확장한다면 스포츠 역시 새로운 곳으로 자연스레 진출하게 될 것이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10년, 20년 뒤 우주에서 펼쳐질 새로운 개념의 스포츠를 상상해 본다.

[안형준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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