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집 나갔던 달력이 돌아왔네… ‘귀하신 몸’ 돼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무튼, 주말] 스마트폰에 밀린 달력

인테리어 소품으로 각광

조선일보

매일 한 장씩 떼는 일력. /인스타그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집 나갔던 달력이 돌아왔다. 은행에서 무료로 나눠 줘도 꺼렸던 천덕꾸러기에서 1개당 3만~5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다 팔리는 ‘귀하신 몸’으로. 종이 달력은 한때 스마트폰에 밀려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갔는데 가족, 반려동물과 찍은 사진을 담아 자신만의 달력을 제작하려는 수요가 늘고, 집 안을 꾸미는 목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다시 각광받고 있다.

최근 이런 달력의 극적인 신분 상승은 인테리어 바람을 타고 일어났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날짜나 기념일을 알려주는 달력의 본래 기능보다 벽에 붙이거나 책상·선반에 올려놔 방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인테리어 소품 가치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 인테리어 효과를 위해 날짜를 나타내는 숫자는 최대한 작게 표시하고 앙리 마티스, 빈센트 반 고흐 등 대가의 작품을 크게 그려놓거나,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 그림을 부각한 달력이 인기다. 자전거, 자동차, 관상용 식물 사진을 월별로 담는 ‘취미 달력’을 제작해 취향을 드러내는 용도로도 활용한다. 인테리어 달력의 유행은 소셜미디어(SNS)에 자신의 공간을 소개하는 ‘온라인 집들이’ 문화가 생기면서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달력을 구입하는 목적도 다양해지고 있다. 비용의 일정액을 개·고양이·햄스터 등 유기 반려동물 보호를 위한 기부에 참여하는 달력이 인기다. 월별로 귀여운 모습의 동물 사진을 넣어 동물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다. 직장인 서진영(34)씨는 “요즘엔 구입한 기부 달력을 방 사진에 담아 은근슬쩍 기부 사실을 지인들에게 드러내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판매 수익 일부가 빈곤·독거 노인 주거 지원에 들어가는 기부 달력도 많이 찾는다. 사회적 기업 아립앤위립의 심현보 대표는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의 글씨와 그림으로 만든 달력을 지난해부터 판매했는데 디자인과 가치 소비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 사이에서 소문이 나 2년 연속 완판됐다”고 했다.

달력이 연말에만 팔린다는 고정관념도 깨지고 있다. 와디즈 등 클라우드 펀딩 업체들은 지난 7월 전 세계 유명 관광지의 바다 사진을 담은 ‘파도 달력’을 판매했다. 파도 사진이 많다 보니 판매 시기를 겨울이 아닌 여름으로 택했다. 1개당 가격이 3만원을 넘지만 당초 판매 목표의 600%를 달성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조선일보

파도 사진을 인쇄한 '파도 달력'이 그림처럼 걸려 있다. /판다스틱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재질도 다양해졌다. 종이 대신 천이나 나무 소재를 써 한 해 모든 달을 한 장에 담은 연력(年曆) 판매도 늘고 있다. 가로세로 1m가 넘는 대형 포스터 크기라 자취방 커튼이나 블라인드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벽에 못을 박는 대신 종이 달력 낱장을 떼서 다양한 색상의 마스킹 테이프로 붙여 인테리어 효과를 높이기도 한다.

뉴트로(복고를 새롭게 즐긴다는 의미의 조어)가 크게 유행하면서 매일 한 장씩 떼어내는 일력(日曆)도 인기. 과거 시골 할아버지 댁에 걸려있던 달력처럼 날짜가 큼지막하게 적힌 달력이다. 옛날 디자인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날짜를 감각적인 형광색으로 했다. 대학생 최효민씨는 “일력 여백에 일기처럼 짧게 하루 소감을 쓰기도 하고, 영양제를 챙겨 먹듯 일력에 있는 한 줄 글귀를 매일 읽으면서 하루를 정리하기도 한다”고 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젊은 소비층에게 달력은 온라인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보이기 위한 기능이 중요해지면서 예쁘고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디지털 기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종이 질감의 인테리어 효과도 달력 수요를 다시 늘리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최인준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