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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축구화 사려 막노동했던 '킹영권'…4년 전 '카잔의 기적' 또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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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과 경기에서 동점골을 터트리고 세리머니를 하는 김영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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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에 이어 카타르에서도 터졌다. '킹영권' 김영권(32·울산 현대)이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또 골을 기록했다.

한국 축구대표팀(FIFA 랭킹 28위)은 3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에서 포르투갈(9위)을 2-1로 이겼다. 한국은 승점 4점(1승 1무 1패)로 우루과이(승점4)와 골득실까지 같았지만, 다득점에서 앞서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0-1로 뒤진 전반 27분 이강인(마요르카)의 코너킥이 상대 선수 맞고 흐른 공을 문전에서 김영권이 넘어지며 왼발로 차 넣었다. 중앙수비 김영권이 공격에 가담해 동점골을 뽑아냈다. 김민재(나폴리)가 부상여파로 선발명단에서 빠진 가운데 김영권이 이를 악물고 몸을 던져 수비했다. 후반 33분 그라운드에 쓰러질 만큼 모든걸 쏟아부었다. 결국 후반 35분 교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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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적으로 몸을 날려 골을 넣는 김영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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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전을 앞두고 김영권은 4년 전 '카잔의 기적'을 떠올리며 "앞만 보고 간절하게 임하겠다"고 말했다. 김영권은 2018년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독일을 상대로 선제결승골을 터트려 2-0 승리를 이끈 바 있다. 4년이 흘러 김영권이 또 한번 골망을 흔들었다.

김영권의 축구인생은 롤러코스터였다. 업 앤 다운이 극심했던 시기는 2017~2018년이었다. 김영권은 2017년 8월 이란전에서 0-0으로 비긴 뒤 “관중 소리가 커 소통하기 힘들었다”고 실언했다가 팬들에게 맹비난을 받았다. 2018년 5월 김민재가 부상 당하면서, 영영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김영권은 러시아월드컵에 인생을 걸었다. 당시 그의 출사표는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였고, 죽기로 싸웠다. 김영권은 몸을 던지는 육탕방어로 팬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행여 핸드볼 파울이라도 할까 봐 열중쉬어 자세를 했다. 대회 후 김영권은 ‘킹영권’ ‘빛영권’이라 불리며 찬사를 받았다. 이른바 ‘까방권(까임방지권의 준말·잘못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속어)’이 주어졌는데도, 4년간 김영권은 A대표팀 주전 수비수로 한국의 최후방을 지켰다.

학창시절 축구인생은 더 드라마틱했다. 중학교(전주 해성중) 시절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축구를 관둘 뻔했다. 김영권은 축구를 포기할 수 없어 전주에 홀로 남았다. 아버지는 빚을 내 산 트럭으로 식재료를 납품 일을 했지만 가정형편은 더 나빠졌다. 아버지는 트럭째 한강에 빠져버릴까 생각마저했고, 부자는 서로 안고 펑펑 울었다. 김영권은 2018년 “고3 때 금요일까지 운동하고, 토요일엔 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을 하러 나갔다. 일당 7만원, 수수료를 떼고 6만3000원을 받았다. 그걸로 한 주를 보냈고, 그 돈을 모아 축구화를 샀다”고 고백했다.그런 아들을 보며 아버지도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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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과 경기에서 체력을 다하고 쓰러진 김영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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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은 가족을 생각하며 남들 쉴 때도 연습을 했고, 그런 노력 덕분에 왼발잡이인데도 양발을 잘 쓰게 됐다. 풋살 국가대표를 병행했다. 연령별 대표팀에 뽑힌 김영권은 2009년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 진출과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획득에 힘을 보탰다.

김영권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1무2패 탈락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이듬해 아시안컵 준우승 등을 이끌며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2016년 비골이 골절되고 발목인대가 파열됐다. 러시아월드컵을 거치며 대표팀 수비의 한 축으로 활약했고, 2022년에는 소속팀 울산의 K리그1 우승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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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팔에 새겨진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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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왼쪽팔에는 'Only I can change my life. No one can do it for me'(오직 나만 내 인생을 바꿀 수 있어.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어)란 문신이 새겨져있다. 그는 문신처럼 스스로 인생을 바꿨다.

이렇게 힘들었던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또 다른 힘은 가족이었다. 2014년 결혼한 김영권에게는 승무원 출신 아내 박세진씨와 아이 셋(딸 리아, 아들 리현과 리재)이 있다. 김영권 오른팔에는 프랑스어로 ‘가슴 속에 새기고 다니겠다’는 글귀와 함께 아내 이름과 첫째딸 영문명이 새겨져있다. 4년 전 독일전에서 그랬듯, 김영권은 포르투갈전에서도 골을 넣은 뒤 팔뚝에 입을 맞추는 세리머니를 했다.

알라이안(카타르)=박린·송지훈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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