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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월드컵 환호 뒤엔… 일당 3달러 의류 노동자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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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저임금 노동으로 제작되는 월드컵 유니폼
글로벌 브랜드 책임 회피… "노동 착취 공론화돼야"
한국일보

지난달 20일 카타르 알코르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 알코르=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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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이 개막한 지난달 20일 인도네시아노동조합연맹 위원장 트위터에 올라온 게시물이 2만 회 이상 리트윗되면서 온라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계적인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들고 있는 현지 여성 노동자의 사진이었다.

“나는 아디다스 하청업체에서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축구화를 만들고 있다. 2020년 아디다스는 코로나19를 이유로 임금을 깎았다. 당신은 어떤가? 아디다스가 당신의 계약금도 삭감했나?”

유니폼 가격 20만 원, 노동자 일당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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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의류 노동자가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선수 리오넬 메시에게 열악한 의류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를 알리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인도네시아노동조합연맹 위원장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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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카타르 월드컵에 열광하는 동안 가난한 아시아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에 고통받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전 세계 경제가 마비되면서 노동 여건은 더 악화됐다.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카타르 월드컵 기념품점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각국 대표팀 공식 유니폼 가격은 60~150달러(약 8만~20만 원) 수준이지만, 이 유니폼을 만드는 미얀마 노동자들은 하루 3달러, 한화 4,000원도 손에 쥐지 못한다. 유니폼, 축구화, 공인구 등 월드컵 축구 용품 대다수가 사실상 노동 착취의 결과물이란 얘기다.

노동자 권리를 위한 싸움은 번번이 좌절됐다. 아디다스에 축구화를 공급하는 세계 최대 신발제조사 파우첸의 미얀마 양곤 공장 노동자 2,000명은 일당 2.27달러를 3.67달러로 올려달라고 요구하며 지난 10월 파업을 벌였다. 경영진은 미얀마 군부정권에 병력을 요청해 파업을 진압했고, 노조원 16명을 포함해 노동자 26명을 해고했다.

하지만 글로벌 패션·스포츠 브랜드는 자체 생산시설을 소유하지 않고 공급업체에 하청을 주는 구조라, 현지 노동 조건이나 인권 문제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만에 있는 파우첸 본사는 “노동자 임금과 인사 문제를 처리할 때 현지 법과 규정을 준수했다”고 해명했다. 원청인 아디다스도 “파우첸에 해고 근로자 복직을 요구했다”는 입장만을 밝혔다.

앞서 영국 프로축구팀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유니폼을 만드는 아디다스 하청업체 트랙스 어패럴은 2020년 캄보디아 공장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8명을 해고했다. 회사는 해고자 4명을 복직시키는 대가로 나머지 해고자 복직 및 체불임금 지급 요구를 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대안이 없다고 판단한 노조는 결국 협상안에 서명했다. 당시 노동자들이 온종일 재봉틀을 돌리고 받는 일당은 7달러에 불과했다.

하청 의류 노동자 문제 공론화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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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카타르 도하의 도하974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르헨티나와 폴란드의 조별리그 C조 3차전 경기에 아르헨티나 축구 팬들이 자국 팀을 응원하고 있다. 이들이 입은 유니폼은 인도네시아 저임금 노동자들이 만든다. 도하=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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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노동자 처우 문제가 끊이지 않자, 아디다스는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월드컵 유니폼을 만드는 생산업체 명단을 별도로 공개했다. 그러나 명단 공개만으로 노동자 처우가 개선되는 것은 아닐뿐더러, 오히려 관리·감독 의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긴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 세계 260개 시민사회 단체들은 10월 24일부터 30일까지 아디다스에 하청업체 노동자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페이 유어 워커스(Pay Your Workers·노동자에게 임금을 지불하라)’ 캠페인을 진행했다. 주최 측은 “지난해 아디다스는 23억 달러(약 3조 원)가 넘는 순이익을 기록했지만, 캄보디아에서 아디다스 의류를 생산하는 공장 8곳, 노동자 3만여 명은 1,170만 달러(약 152억 원)를 빚지고 있다”며 “아디다스는 공급망 안에서 임금 착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카타르 월드컵은 개막 전부터 경기장 건설에 동원된 이주노동자 처우, 카타르 정부의 성소수자 탄압 등 인권 문제로 지탄받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하청 노동자 문제는 공론화되지 않았다. 국제노동인권단체 ‘노동자권리컨소시엄’ 툴리 나라야나사미 국장은 “월드컵 제품을 만드는 의류 노동자에 대한 인권 침해는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다”며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더 나은 조건을 보장받기 위해 단체 행동을 하는 건 기본적인 인권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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