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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살고 싶다"… 우크라이나에 '전화'하는 러시아 군인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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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러 병사 투항용 핫라인에 하루 100건씩 문의”

9월 시작해 3500건 넘어서…전화·메신저 통해 안내

“‘전쟁계속 찬성’ 러시아인 4개월만에 57→25% 급감”

“나는 우크라이나인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징집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BBC방송이 입수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나는 살고싶다’(I Want To Live) 핫라인에 도착한 러시아 모스크바에 사는 한 청년의 문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9월 개설한 이 핫라인을 통해 러시아군 병사나 가족 등으로부터 하루 100건이 넘는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접수된 문의는 총 3500여건으로 집계됐다. 전화나 텔레그램, 왓츠앱 등 모바일 메신저로 우크라이나 측에 연락해 안전하게 항복하는 방법을 안내받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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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은 지난 9월 30만 명 규모의 부분 동원령을 시행했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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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포로 처우 본부 관계자인 스비틀라나(가명)는 BBC에 “그들은 간절하면서도 좌절된 모습”이라며 “핫라인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함정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일부 병사들은 단순히 우크라이나 측의 반응을 떠보거나 자극하기 위해 전화를 걸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의 예비군 부분 동원령 발동과 이달 초 헤르손 점령지에서의 철수 발표 이후 문의 건수가 크게 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 이동통신 등을 이용해 이 핫라인 이용을 차단해놓은 상태다. 따라서 현재 해당 핫라인을 이용하는 이들은 실제로 우크라이나에 있는 러시아군 병사일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가 이러한 투항용 핫라인을 운영하는 것은 러시아 병사의 사기를 떨어트리기 위한 일종의 정보전 성격도 지니고 있다고 BBC는 설명했다.

향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포로 교환을 염두에 둔 포석일 수도 있다. 미국의 국방·외교 분야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 또한 이번 전쟁과 관련한 내부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포로 교환에 임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 병사 투항 핫라인 프로젝트 담당자인 비탈리 마트비옌코는 “이 사업은 (러시아군이) 자발적인 항복으로 목숨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BBC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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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건물들이 폐허가 된 모습이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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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러시아 내부에서는 전쟁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이 누적되는 모습이다. 러시아어·영어 뉴스 사이트 ‘메두자’(Meduz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계속하는 데 찬성하는 러시아인의 비율은 4개월 만에 57%에서 25%로 급감했다. 메두자는 러시아의 해직 언론인 갈리나 팀첸코(60)가 라트비아 리가에서 2014년 설립한 뉴스 사이트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현 러시아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매체다.

메두자는 러시아 안보기관인 연방경호국(FSO)이 ‘내부용’으로 만든 여론조사 결과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이 매체에 따르면 FSO 여론조사에서 우크라이나와의 평화협상에 찬성하는 러시아인의 비율은 7월 32%에 불과했으나 11월에는 55%로 증가했다. 이런 FSO 여론조사 결과는 모스크바 소재 독립 여론조사기관인 레바다 센터의 10월 조사에서 ‘전쟁 계속’ 지지가 27%, 평화협상 지지가 57%였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메두자는 지적했다.

레바다 센터 소장인 데니스 볼코프는 “올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키로 한 크렘린궁의 결정을 대부분의 러시아인이 지지했으나, 본인들이 전투에 직접 참가하려는 뜻은 전혀 없었다”며 “사람들이 자신들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인식했으나, 이제는 위험이 커져서 사람들이 (평화) 협상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메두자는 전쟁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여론이 악화함에 따라 러시아 정부가 앞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푸틴 정권과 가까운 두 명의 취재원을 인용해 크렘린궁이 국영 러시아여론조사센터(VTsIOM)의 여론조사 데이터를 이제 일반에 공개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런 여론이 평화협상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입장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메두자는 전망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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