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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벌써 76세" 딸은 왜 부장판사에게 편지를 보냈나 [헌법 27조 3항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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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27조 3항이 사라졌다 ④] 2년 11개월째 아버지 사건 재심 개시를 기다리는 최지자씨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헌법 제27조 제3항입니다. 하지만 이 헌법 조항은 잘 지켜지고 있지 않습니다. 재판 지연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판결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탓에 실질적인 구제를 받기 어렵거나 당사자가 사망했다면, 정의가 실현됐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마이뉴스>는 '정의의 유효기간'이 지난 재판 지연 사례를 추적하고, 우리보다 먼저 사회적 논의를 진행한 독일에서 그 대안을 찾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 과오를 완전하게 되돌릴 수는 없을 테죠. 그러나 어머니와 오빠가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명예회복은 물론, 어머니와 오빠의 인생을 되돌려 달라고 호소하고 싶습니다."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 3세 최지자씨(42, 일본명 나카가와 도모코)는 올 1월말, 한국으로 국제 우편을 하나 보냈다. 수신인은 서울고등법원 제13형사부 부장판사, 최씨가 우편 봉투에 담은 건 '탄원서'였다. 그는 왜 먼 타지에서 자신을 돕고 있는 변호사의 손도 거치지 않고 직접 한국 법원으로 탄원서를 보냈을까. 지난 9월 30일, 최지자씨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모든 고통은 아버지가 간첩으로 만들어진 탓이었습니다. 1973년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육군보안사령부가 불법으로 아버지를 잡아가 2개월 6일에 걸친 불법 구금 하에 아버지를 수사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간첩으로 둔갑시켰습니다. 당시 군사 독재 정권이 저희 가족의 인생을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탄원서 중에서)

최지자씨의 아버지인 최창일은 오사카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2세였다. 그는 1967년 3월 도쿄대학 대학원 공학부 자원개발 공학과 석사 과정을 이수하고, 그해 10월 합태탄광 탄광 기사로 한국에 입국한 이래 일본과 한국을 오갔다. 1973년 3월부터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자원공학과에서 시간 강사로 광물학을 강의하기도 했는데, 그로부터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육군보안사령부(아래 보안사)에 붙잡혔다. 그의 나이 33살 때의 일이다.

최창일은 도쿄대에서 공부할 당시 조총련계 단체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다. 보안사는 이를 시작으로 최창일이 조총련계와 관계를 맺어오다 사상 교육과 지령을 받고, 북한을 오가며 간첩 활동을 했다고 봤다. 결국 그는 1974년 국가보안법위반, 반공법위반으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고, 1979년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될 때까지 약 6년간 감옥에서 살았다. 그 후 일본으로 돌아간 최창일은 한국인이 없는 지역에서 아이들에게 수학 등을 가르치며 살다 1998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대답 없는 한국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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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지자씨(가운데)가 유년시절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이 아버지 최창일씨. ⓒ 최지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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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자씨는 아버지 최창일이 불법 체포와 구금을 당했고, 이 과정에서 일어난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 자백을 했다고 보고 있다. <경향신문>의 정보공개청구 결과에 따르면, 최창일 사건은 2006년 10월 대법원이 선정한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재조사 검토대상 사건 목록 224건'에 포함되기도 했으나, 그 후 별다른 조치가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뒤늦게 아버지가 겪은 사건에 대해 알게 된 딸 최지자씨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재심을 청구한 게 지난 2020년 1월, 하지만 이들의 애끓는 심정은 모른 채 한국 법원은 2년여 째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최씨는 직접 일본에서 탄원서를 써 한국으로 보냈다. 아버지의 사건으로 인해 여전히 정신 불안 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어머니, 삶을 비관한 채 사회 활동을 포기한 오빠, 그리고 과거 여러 차례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던 자신의 이야기까지 담았다. 그만큼 최씨에겐 재심이 절박했다. 하지만 탄원서가 접수된 지 벌써 10여 개월째, 여전히 한국 법원은 답이 없고 재심은 2년 11개월째 개시(시작) 결정조차 나지 않았다.

"'어쩌면 한국 정부가 과거의 사건을 무시하고 싶은 건가' 하는 불안감도 느낍니다."

최지자씨는 "한국 정부에게 방치되는 것 같다"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최씨가 탄원서에 쓴 것처럼, 그에게 이번 재심은 단순히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한 과정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재심을 통해 "어머니와 오빠의 삶, 그리고 내 인생을 되찾고 싶다"고 강조했다.

또,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였지만 어떻게 피해 구제를 받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예시'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최씨는 재판이 지연되는 것이 "사법부 탓만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정치가 흔들리는 한이 있더라도, 사법부는 흔들리지 않고 정의를 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씨의 말처럼, 특히나 과거사 재심 사건에 있어 사법부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내야 한다. 과거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당사자와 그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와 상처가 남겨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사자가 고령이거나 이미 사망한 케이스도 흔하다. 따라서 이 같은 특성을 감안해 발 빠르게 재심을 진행해야 하지만, 현실에선 재판이 지연되기 일쑤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딸의 간절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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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지자씨의 오빠(검은색 옷)와 어린 최지자씨(하얀색 옷)의 모습. ⓒ 최지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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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일 재심 사건의 진행 기록은 지난 2월 11일 최지자씨의 탄원서가 접수됐다는 내용 이후로 멈춰져 있다. 최씨는 왜 2년 11개월째 재심에 진척이 없는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한다.

이번 사건에서 최지자씨를 대리하고 있는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확실히 재판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평했다. 이어 "재심 사건은 정말 '운'에 맡기는 수준"이라고 지적한 그는, "과거사 재심 사건은 선배 법관들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법관들이 더 책임감 있게 대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최지자씨의 마지막 바람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아버지의 무죄 판결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벌써 76세. 이들의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지만, 법원의 시계는 여전히 멈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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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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