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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양귀비/이현 · 잎이 쓰다/손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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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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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빨강, 파랑 삼원색으로 강렬하게 풍경과 사람, 사물을 표현. 12월 31일까지 서울 용산구 지구와사람 갤러리홀.

잎이 쓰다/손택수

잡초인 줄 알았더니 어수리

잎이 쓰다

우리면 깊은 맛이 난다

쓴다는 게

쓴 잎을

우리는 일 같구나

쓴 잎에서 단맛을 찾는 일 같구나

누구에겐 그저 쓴 잎에 지나지 않겠지만

잎의 씀을

쓰디씀을

명상하는 일 같구나

뜯은 자리마다 후끈한 풀내

진물이 올라온다

깨진 무릎에 풀을 짓이겨

상처를 싸매 주던 금례 누나

생각도 난다

상처에 잎을 맞춰 주던 잎이

내 몸 어디에는 아직 남아 있어서

쓴다

이미 쓴 잎을

써버린 잎을

잎, 나뭇잎, 잎사귀, 그리고 또 같은 발음의 다른 이름 입. 굳이 따지자면 식물의 입은 잎이어서 잎에 말이 있고 표정이 있고 또 다른 입으로도 가서 입맞춤이 된다. 입을 버리면 가을이 된다. 침묵의 계절을 맞아 잎은, 입은 허공을 내려온다.

어느 날 무심히 길가에서 손에 닿는 잎을 하나 따 입에 넣었더니(유아기의 아기들이 다 그렇듯이) 쓰디쓰다. 그런데 뒷맛으로 모르던 어떤 깊은 단맛이 남았으니 아, 이게 우리네 글 농업 종사자의 쓰는 일과 닮았다.

‘진물이 올라오는’ 상처를 우려내면 먹을 만한 것이, 아니 약이 될 만한 것이 된다. 한번 난 상처는 아물어 없어지지 않고 생의 안을 떠돈다. 그것이 우려지면 시도 되고 사랑도 되는 거라고 이 시는 잎처럼 말한다.

장석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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