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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스브스夜] '꼬꼬무' 사상 최악의 참사 '성수대교 붕괴' 사고…32명 희생된 진짜 이유에 '경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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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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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성수대교 붕괴 사고의 진짜 원인은 경악 그 자체였다.

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예고된 추락- 성수대교 붕괴 참사'라는 부제로 성수대교 붕괴 참사를 조명했다.

지난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멀쩡하던 한강 위 다리 중 하나인 성수대교가 갑자기 무너진 것.

쿵 하는 굉음과 함께 한강 위로 성수대교의 다리 상판이 떨어졌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승합차를 타고 성수대교를 지나고 있던 서울경찰청 소속 의경들은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릴 새도 없이 주변에서 들려오는 살려달라는 외침에 이들은 구조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 장난 전화라고 생각할 정도로 믿기 어려운 사고 앞에 구조대원들은 패닉에 빠졌다. 그 사이 의경들은 사람들을 하나 둘 구조했다.

그런데 그때 충격적인 장면이 또 한 번 더 펼쳐졌다. 떨어진 다리 상판 위로 커다란 버스가 추락한 것. 특히 이 버스는 뒤집어진 상태로 추락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비명과 절망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이에 구조 활동을 펼치던 의경들은 한 명 더 살리지 못한 것에 괴로워했다.

뒤늦게 구조대가 도착하고 구조대는 5일간 계속된 수중 수색 작업까지 겸했고, 그 과정에서 세 명의 시신이 타고 있던 차량 두 대를 발견한다. 이 사고로 사망자는 32명, 생존자는 17명, 특히 16번 버스 안에서만 29명이 사망했고 버스를 타고 있던 이들 중 생존한 사람들은 단 2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무학여고로 향하던 무학여고생들 9명이 이 사고로 희생을 당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괴로움에 눈물을 흘렸다. 사고 전 딸과 다투었던 윤아의 아빠. 그는 딸이 남긴 가방에서 사망하기 하루 전 날 작성한 편지를 보고 오열했다. 딸 윤아가 남긴 편지에는 아빠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윤아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던 것이다.

전 세계가 충격을 받은 최악의 참사 성수대교 붕괴 사고. 불과 시공 15년 만에 엄청난 사상 사고를 낸 이 성수대교의 붕괴 원인은 용접 부실이었다. 특히 용접액으로 꽉 채운 도면과 달리 시간을 단축하고 원가를 절감하는 구조로 용접을 진행한 시공사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당시 최고의 건설회사 중 하나였던 시공사 동아 건설은 도의적인 책임에 통감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검찰 조사가 시작되자 태도를 바꾸었다. 동아 건설은 하자보수 기한은 끝났다며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서울시로 화살을 돌렸다.

사실 서울시는 교량에 관한 관리 책임이 있었지만 성수대교에 대한 품질 검사 따위는 진행하지 않았다. 20년이 안 된 다리는 검사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서울시는 설계 당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통행량으로 정체가 반복되자 차로를 늘리는 이해할 수 없는 해결책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서울시는 여러 번 발생했던 전조도 무시했다. 특히 사고 당일 새벽 이음새 부분이 이상하다는 신고를 받은 서울시는 철판을 덧대어 시민들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비가 온다는 핑계로 보수를 미루었다.

그렇게 서울시와 동아건설을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가운데 검찰은 관계자 17명을 기소했다. 재판부는 시공사와 서울시 모두에 유죄를 선언했다. 그러나 형량은 집행 유예로 국민들이 분노했다.

국민들의 분노는 항소심에서 판결을 뒤잡었더. 재판부는 동아건설과 서울시 담당 공무원 3명에게 과실치사죄로 1년 6개월에서 2년형을 선언했다. 여전히 짧은 이 형량은 당시로서는 나름 중형이었다.

미흡했던 처벌과 달리 이후 달라진 것들이 눈 길을 끌었다. 시설물 안전과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며 한국 시설안전공단 처음 설립되었다. 그리고 부실 공사에 대한 처벌도 강화했다.

또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 원인 백서를 만들어 지난 사고를 복기하고 두 번 다시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기를 다짐했다. 하지만 백서가 완성된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가 또다시 일어나 충격을 안겼다.

사고 넉 달 후 열린 무학여고 졸업식에서 혜주의 아버지는 딸 대신 졸업장을 받고 오열했다. 그리고 그는 딸을 그리워하다 4년 후 딸이 떠난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혜주 아버지뿐만 아니라 수많은 유가족들이 가족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또한 사고 생존자들은 자신이 생존자라는 것을 숨기고 살아갔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지 못하고 본인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그들에게 남았던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위령비에서는 매해 추모식이 열린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여전히 기억하고 사랑한다는 현수막이 항상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었다.

이번 방송을 취재하며 한 유가족은 희생자가 수백 명이 넘는 사고가 많다 보니 32명이라는 희생자는 적게 느껴지는 것 같다며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점점 잊어가는 것이 아닌가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너와 내 가족은 안전할 것이라는 생존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잊히면 안 되는 것과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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