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3 (화)

[르포] 죽었다던 ‘수라갯벌’, 멸종위기 동물과 염생식물 생명의 숨소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북 군산 새만금신공항 예정지 가보니

경향신문

지난달 27일 청둥오리, 고방오리, 쇠오리, 혹부리오리 등이 수라갯벌 물끝선 근처에서 쉬고 있다. 강한들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멸종위기 흰꼬리수리 찾고
황금빛 억새 들판 펼쳐지고
붉은 퉁퉁마디·해홍나물…
물끝선엔 고방오리 등 서식

10년 넘게 방조제로 막혀
생태 기능 잃었다는 갯벌
현장 직접 보니 “살아있어”

지난 11월27일 오후 3시쯤 전북 군산 옥서면 남수라마을 인근, 새만금방조제로 막혔다고 여겨 온 ‘수라갯벌’ 바닥에 흰 깃털로 만들어진 선이 보였다. 새만금방조제 수문이 열려 물이 밀고 올라오자 갯벌 바닥에 떨어져 있던 기러기 깃털이 경계까지 밀려나면서 선을 만들었다. 이내 완만한 수라갯벌 경사를 따라 갯벌로 물이 들어왔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발자국이 물로 덮였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새만금신공항 예정지인 남수라마을 인근 갯벌과 연안 습지를 통칭해 ‘수라갯벌’이라 부른다. 방조제 건설 후 땅과 물이 만나는 ‘물끝선’이 밀려나면서 원래 갯벌이던 곳이 염습지로 천이됐으니 습지까지 갯벌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경향신문

수라갯벌에 떨어진 흰기러기의 털이 땅과 해수의 경계선을 알려주고 있다. 성난비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이 진행한 ‘수라갯벌에 들기’ 행사에는 서울, 부산, 대전, 전북 완주, 세종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시민 30여명도 참여했다. 전북도 등은 수라갯벌에 대해 “새만금 방조제 때문에 조수 간만의 차가 없어 갯벌의 기능을 잃었다”고 말하지만, 방조제로 막힌 지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수라갯벌은 염생식물과 다양한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터전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경향신문

넓게 펼쳐진 수라갯벌의 모습. 갈대, 억새가 있는 누런 들판 뒤로는 염생식물 군락지가 자리 잡고 있다. 강한들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색 뽐내는 가을 수라갯벌

가을 끝자락에 만난 ‘수라갯벌’의 빛깔은 다양했다. 갈대, 억새가 있는 곳은 누런 들판이었다. 물끝선을 향해 나아가면 붉게 단풍이 든 퉁퉁마디, 해홍나물 등 염생식물 군락지가 듬성듬성 있었다.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면 민들레처럼 씨앗을 맺는 갯개미취의 새하얀 씨앗이 흩날렸다.

경향신문

갈대 사이에서 ‘푸드덕’하는 소리도 계속 들려왔다. 갈대밭에 있던 흰뺨검둥오리 약 30마리가 사람 소리에 놀라 바다를 향해 날아올랐다. 군산 공항에서 새를 쫓으려고 내는 공포탄 소리에 놀란 꿩도 바삐 날갯짓하며 자리를 옮겼다. 맹금류인 큰말똥가리(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은 하늘에서 최상위포식자의 위용을 뽐냈다. 갈대 사이로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고라니도 보였다.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단장(사진)은 “세계 고라니의 99%가 한국과 중국에 산다”며 “물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 수라갯벌에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갯벌을 걷는 동안 머리 위로는 5년 이상 산 흰꼬리수리(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성조가 2m가 넘는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맴돌았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흰발농게(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도 다시 수라갯벌에 물이 차기를 기다리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흰발농게는 보통 6월쯤이면 예전에 염도가 높았던 곳에서 자주 보인다. 조사단에서 활동하는 오승준씨(22)는 “흰발농게 활동 시기에 헤드랜턴을 끼고 밤에 지나가면 자주 볼 수 있다”며 “산란기에는 한 구멍으로 암수가 같이 들어가는 것을 본 적도 있으니 이곳에서 번식하며 계속 살아남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흰꼬리수리가 지난달 27일 2m가 넘는 날개를 펼친 채 수라갯벌 주위를 맴돌고 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완만한 갯벌, 해수 유입 더 하면…”

물과 뭍이 만나는 ‘물끝선’에는 청둥오리, 고방오리, 쇠오리, 혹부리오리가 함께 지낸다. 오리들은 부지런히 먹이를 먹은 뒤 쉴 때는 고개를 날개 속에 넣었다. 물수리(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는 세로로 서 있는 목재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먹이를 두 발로 움켜쥐고 날아갔다.

밤에는 기러기 무리가 찾아온다. 갯벌 바닥에는 먹이에 따라 색이 다른 기러기 배설물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오승준씨는 “수라갯벌에 기러기들은 밤에 잠을 자러도 오고, 갈대나 초본의 뿌리를 먹으러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동필 단장은 “수라갯벌은 경사가 완만해서 해수 유입이 조금만 더 돼도 넓은 영역까지 해수가 퍼질 수 있다”며 “수많은 생물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유입되는 해수의 양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오후 4시쯤 머리 위로 검은색 새 무리가 여러 번 지나갔다. 민물가마우지들이 ‘옥녀봉’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옥녀봉은 전국 최대 민물가마우지 서식지다. 아침이 되면 약 2만~3만마리 민물가마우지가 밥을 먹으러 갯벌로 ‘출근’했다가, 저녁이 되면 옥녀봉으로 돌아간다. 돌산을 깎아 새만금 매립용으로 썼던 옥녀봉은 원래 황토색이었으나, 민물가마우지 배설물 때문에 흰색으로 물들었다. 오동필 단장은 “민물가마우지 이동 경로에 신공항이 생기면 항공기와 조류가 더 많이 충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옥녀봉에서 쉬고 있는 민물가마우지들. 강한들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공항, 꼭 필요할까

이날 조사단은 시민들과 함께 새만금신공항 건설 예정 부지를 걸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6월 새만금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을 수립·고시했다. 총 8077억원을 투입해 활주로, 여객·화물터미널, 계류장 등을 2028년까지 건설해, 2029년에 문을 열 계획이다.

지방공항 누적손실 4천억대
“기후위기 대응에 쓸 시간과
예산 낭비 다시 하지 말아야”

지난 10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한국공항공사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김포, 김해, 제주, 대구 공항을 제외한 10개 지방공항의 누적손실은 4823억원에 이르렀다. 평균 활주로 활용률은 4.5%였다. 활용률이 2% 미만인 공항도 5곳 있었다. 항공기의 탄소배출 문제로 많은 국가가 공항 증설 계획을 중단하고 있다. 프랑스 하원은 철도로 2시간30분 거리 이내 국내선 항공을 중단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민선 8기에 당선된 지자체장들이 짓겠다는 공항이 11개”라며 “좌초자산이 될 가능성이 큰 공항 건설에 투자를 멈춰 기후위기 대응에 쓸 시간과 예산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군산 |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 백래시의 소음에서 ‘반 걸음’ 여성들의 이야기 공간
▶ ‘눈에 띄는 경제’와 함께 경제 상식을 레벨 업 해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