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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시위에 기름 부을라"...시진핑, 장쩌민 애도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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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장쩌민 시대에 대한 향수 높아져
후야오방 사망이 톈안먼 시위로 확산 전례도
반정부 시위 확산 중 장쩌민 사망 영향 '촉각'
한국일보

중국의 제3세대 최고지도자였던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사망하자 중국 공산당과 정부 주도로 국가적 애도 분위기가 조성됐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와 그 계열 매체인 환구시보 및 글로벌타임스,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 등은 전면 흑백으로 구성한 1일 자 1면에 장 전 주석의 사진과 기사를 실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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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에 직면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사망'(지난달 30일)이라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장 전 주석 사망이 개혁·개방 시기를 향한 중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시위를 이어가는 새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정권 정통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장 전 주석 사망을 애도해야 하는 시 주석으로선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장 전 주석에 대한 인민들의 향수가 커질수록, 권위주의로 표현되는 시 주석 리더십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장쩌민 시대 향수 자극...제2의 톈안먼 시위 확산 가능성


장 전 주석 사망 다음 날인 1일 중국 주요 매체들은 모두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흑백으로 신문을 발행했다. 주요 관영 매체 홈페이지와 바이두 등 포털사이트 화면도 흑백 처리됐다.

반면 시 주석으로선 이 같은 애도 분위기에 마냥 힘을 실어줄 수 없는 형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시진핑은 장쩌민을 애도해야 하는 동시에 시위대와 씨름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장쩌민의 죽음이 시진핑 체제에 대항하는 세력의 구심점이 될 가능성을 어떻게 차단할지가 그가 마주한 새 도전이 됐다"고 평가했다.

사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다고는 하지만, 장 전 주석 역시 다른 중국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권위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인이었다. 1999년 파룬궁 신도들의 시위에 핵심 인사들을 투옥하며 강경 진압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권위적인' 시진핑의 리더십은 장 전 주석 치세를 '그나마 자유로웠던 시기'로 기억하게 한다. 실제 장 전 주석 시절에도 공산당은 정치 생활을 엄격하게 통제했지만, 비정치 영역에선 그나마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했다. NYT는 "당시에는 반체제 인사나 자유주의 정당 학자들도 공개 토론에 참여가 가능했다"며 "검열과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지속적으로 높여온 시 주석과 대비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장 전 주석에 대한 인민들의 애도는 시진핑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벌써부터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두꺼비(장 전 주석의 별명)여, 당신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틀린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바닥이 아니라 천장이었습니다" 등 시진핑 체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글들이 게시되고 당국에 의해 삭제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미시간대 중국학센터 매리 갤러거 소장은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그의 사망은 경제 상황과 봉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새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6일 추도대회 열어...전 국민 3분간 묵념


중국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민감한 시기, 옛 지도자가 사망한 것은 '톈안먼 사태'가 터졌던 1989년의 정치 상황과 묘하게 겹치기도 한다. 그해 4월에도 개혁파 지도자로 대학생들의 지지를 받던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가 사망했다. 후야오방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확산됐고, 이는 결국 6월 톈안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리넷 옹 캐나다 토론토대 뭉크스쿨 교수는 "장쩌민은 후야오방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린 적 없지만, 사람들이 모여 애도할 명분은 충분하다"며 "애도 과정에서 (시진핑 체제에 대한) 더 큰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장쩌민의 죽음이 시진핑 정권에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례적인 3연임으로 1인 지배 체제를 확고히 굳힌 데다, 사회 통제력도 과거 어느 정권보다 높다는 이유에서다. 공산당과 관영언론이 장쩌민에 대한 극진한 애도를 표한 것 역시, 시 주석 정권에 큰 영향이 없기 때문이라는(명보) 분석도 나온다. 월리 램 미국 제임스타운재단 선임연구원은 "시진핑의 강력한 보안 시스템 속에서 장쩌민의 사망이 제2의 톈안먼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장례위원회는 1일 발표한 '제2호 공고'를 장쩌민의 추도대회가 6일 오전10시에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다고 알렸다. 공고는 추도대회 묵념 순서에 전 국민이 3분간 묵념하고, 경적을 울릴 수 있는 모든 곳에서 3분간 경적을 울리며 방공 경보를 3분간 울리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장례위원회는 추도대회는 생중계되며 모든 지역과 부서는 다수의 당원, 간부, 대중을 조직해 시청 또는 청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추도대회 당일 국내 전역과 대사관·영사관 등 재외공관 및 기타 재외기관은 조기를 게양하고 하루 동안 공공 오락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천명했다. 장례위는 "당과 국가의 역사 발전에 있어 장쩌민 동지의 특별한 공적을 고려하고, 전당과 전군, 전국 각 민족 인민의 공통된 염원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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