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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의 상하이방 파벌, 시진핑 숙청에 몰락… “미묘한 시점 사망, ‘백지혁명’ 불 지필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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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1926~2022]

反정부 시위 확산 맞물려 주목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적 관계로 여겨지던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의 사망 시점이 미묘하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장 전 주석이 태두인 공산당 정치 파벌 상하이방은 시 주석이 집권 기간 내세운 부패 척결 운동에 상당수 숙청되며 몰락했다. 장 전 주석이 2019년 중국 건국 70주년 행사에 나타난 뒤 3년간 두문불출하자 건강 문제라는 관측과 함께 시 주석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해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과 올해 10월 시 주석이 3연임을 확정한 20차 당대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이날 장 전 주석 사망을 전하면서 “시 주석을 중심으로 더욱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30일 중국 당국이 1989년 6월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한 직후 공산당 총서기에 올랐던 그가 톈안먼 시위 이후 33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에서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가 벌어진 미묘한 시점에 사망했다고 평가했다. CNN은 “중국인들은 사망한 지도자를 애도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역사가 있다”면서 “최근 ‘백지행동’ 등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고 있는 시기라는 점에서 그의 죽음은 매우 민감한 시점에 찾아왔다”고 전했다. 반중 성향의 대만 쯔유(自由)시보는 “1989년 6월 톈안먼 민주화 시위는 같은 해 4월 사망한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를 추모하기 위한 집회부터 시작했다”면서 “최근 확산하고 있는 ‘백지행동’에 장쩌민의 죽음이 불을 지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장 전 주석은 2004년 중앙군사위 주석에서 물러난 뒤에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집권기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장 전 주석은 2007년 17차 당대회에서 당시까지 세력이 미미했던 시 주석을 지도자로 밀었다. 시 주석이 최고지도자에 오르더라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 주석은 집권 이후 부패와의 전쟁을 벌였고 이 반부패 작전의 타깃은 대부분 상하이방이었다. 당시 최고지도부에 속해 있던 저우융캉(周永康) 상무위원이 부패로 낙마했고 인민해방군 서열 1, 2위이던 궈보슝(郭伯雄)과 쉬차이허우(徐才厚)는 숙청됐다. 모두 장 전 주석의 최측근이었다. 이후 시진핑 집권 2기를 거치면서 상하이방 출신 인사들은 대부분 권력에서 멀어졌다. 장 전 주석까지 사망하면서 한때 중국공산당 최대 계파로 불렸던 상하이방은 사실상 해체 수순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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