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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경찰, 쌍용차때 헬기로 생명위협…노동자 ‘새총’ 저항은 정당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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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쌍용차 노동자 대 경찰’ 손배소 판결 의미

“불법집회라도 과잉진압 정당화 안돼” 확인


한겨레

2009년 8월4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 위로 경찰과 사측 노동자들이 파업농성중인 노동자들에게 최루액을 뿌리고 있다. 평택/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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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4~5일 경기 평택 쌍용차 공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경찰 헬기 6대가 투입됐다. 파업 노동자들이 점거한 공장 옥상 위로 헬기는 낮게 날았다. 헬기에 부착한 물탱크에서는 최루액이 살포됐고, 옥상 위 노동자를 겨냥해 최루액 비닐봉지를 직접 투하하기도 했다. 헬기가 옥상 상공 30m 수준까지 제자리 저공비행을 한 이유가 있었다. 회전날개가 만들어내는 강한 하강풍으로 비탈진 공장 옥상에 선 노동자들은 더욱 비틀거렸다.

경찰은 민간 크레인업체로부터 220톤, 200톤, 100톤짜리 대형 기중기 3대를 빌려 현장에 배치했다. 기중기에는 빈 컨테이너 상자를 달았다. 기중기가 움직이며 옥상에 설치된 경찰 진입 방지 장애물을 부수기 시작했다. 경찰은 천천히 이동시켜야 하는 기중기를 ‘급조작’하는 방식으로 옥상 위 노동자들을 위협했다. 경찰특공대가 투입됐고 파업은 8월6일 진압됐다.

대법원은 30일 경찰의 이 같은 파업 진압작전은 적법한 직무수행 범위를 벗어난 불법행위이며,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저항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경찰이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의 쟁점은 청구액 대부분을 차지하는 헬기 및 기중기 수리 비용을 쌍용차 노동자들이 부담하는 게 맞는지 여부였다. 경찰은 조합원들이 진압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장비가 손상됐다며 헬기·기중기 수리 비용 및 수리 기간 동안 크레인업체에 지불한 휴업 비용까지 노조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이 13년 만에 웃었다. 3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김정우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 전 지부장(왼쪽 둘째)이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김득중 쌍용차 지부장(맨 오른쪽)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헬리콥터 손상 등에 대한 노동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파기했다. 맨 왼쪽은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왼쪽 셋째는 2009년 파업 당시 지부장이었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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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은 헬기 파손에 대한 경찰 청구액 6억8천여만원 중 노조가 5억2천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했지만, 대법원은 애초 경찰이 헬기와 최루액 등을 위법하게 사용했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헬기를 동원한 경찰특공대의 ‘바람작전’에 주목했다. 경찰 헬기는 일반적으로 상공에서 현장을 파악하며 작전을 지휘하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는데, 파업 진압작전 당시 경찰은 파업 참가자들에게 최루액을 무차별 살포하거나, 의도적으로 30~100m 저고도에서 하강풍을 일으키는 데 사용됐다.

대법원은 경찰항공 운영규칙, 경찰관 직무집행법, 경찰장비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종합할 때 “의도적으로 낮은 고도에서 제자리 비행해 농성 중인 사람을 상대로 직접 하강풍에 노출시킨 것은 경찰장비를 통상의 용법과 달리 사용해 생명·신체에 위해를 주는 행위”라고 봤다. 또 위해성 경찰장비인 최루액에 대해서도 “헬기를 이용해 공중에서 살포하는 규정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방어를 위해 조합원들이 새총으로 볼트 등을 발사해 헬기 3대를 손상했더라도 이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기중기 수리 비용에 대해서도 경찰이 기중기 손상을 유도했다며 경찰 책임도 크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무거운 짐을 들어 올려 느린 속도로 이동시키는 용도로 사용되는 기중기를 용법을 벗어난 방법으로 사용했다면 그 손상에 관한 원고(경찰)의 책임도 적지 않다. 진압작전 과정에서 (농성 장비를 소모시키기 위해) 기중기에 대한 조합원들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기중기 손상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경찰 스스로 감수한 위험”이라고 결론냈다.

그동안 대법원은 불법 농성 등과 관련한 경찰의 진압 방법 및 장비 사용에 대해서는 그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판례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은 △필요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 △법령에서 정한 통상의 용법과 다르게 사용해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했고 △그 정도가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범위를 넘어섰다면 “위법한 직무수행으로 봐야한다”고 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저항행위 역시 정당방위에 해당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현복 대법원 공보재판연구관은 “불법 집회와 시위라 하더라도 이에 대한 과잉진압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이에 대한 대응이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수준이라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이 판결을 경찰 과잉진압에 대한 모든 저항행위가 정당방위가 되는 것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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