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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 발달장애 딸에게 [6411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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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동안 널 키우면서, 네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강점이 노동현장에서 잘 어우러지도록 더 애써볼 작정이야. 엄마의 바람은 네가 일하는 곳에서, 또 지역사회에서 사람들과 연대하며 때로는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거야.

한겨레

지난 6월17일 한 장애인 노동자가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전국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제도화 촉구 결의대회에서 ‘뜨개질 수업을 받고 싶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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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자 |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 센터장

매일 아침 너와 집을 나서는 순간이 엄마의 하루 일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지. 함께 출근한 지 1년이 다 돼 가는구나. 중증장애로 특수학교를 마친 네가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직장에 다니며 하루 4시간씩 일을 하게 되다니! “오늘 회사 가서 뭐했어요?” “일해요” 몇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요즘 우리 일상이 됐구나.

네가 직장에서 편백방향제를 만드는 걸 보면 엄마는 참 대견하단다. 방향제 주머니에 편백나무 큐브조각 50개를 넣고 묶어야 하는데 숫자세기가 어려우니, 50개 칸이 있는 바둑판 모양 판에 편백나무 큐브를 하나하나 모두 채운 뒤 주머니에 옮겨 담더구나. 동료들은 그 방향제 주머니를 상자에 담고 그 위에 회사 스티커를 붙여 완성품을 만들고. 너와 네 동료가 만드는 편백 방향제들이 렌터카회사에 납품된다 하니, 고객들에게 매일 기분 좋은 향기를 전달할 거야.

지현아 알고 있니? 엄마는 네가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장애인 노동을 공부하게 됐어. 발달장애인이 일하고 싶어도 현재 제도 안에서는 직업을 찾을 수가 없겠더라. 그래서 엄마가 직접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발달장애인의 직업생활을 돕는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를 만들게 된 거란다. 너와 같은 발달장애인을 기업과 연결하고, 정식 취업 전에 기업에서 실전처럼 경험하고 훈련하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기 시작한 지 벌써 4년이 흘렀네.

이런 과정을 거치면 기업은 채용 전에 함께 근무하면서 장애인의 업무능력이나 비장애 동료들과의 관계형성 등을 살펴볼 수 있고, 장애인 당사자는 출퇴근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업무는 적성과 능력에 맞는지 등을 가늠해 볼 수 있지.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이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 서툴잖아.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또는 근무하기 어려운 환경이나 업무에 관해 정확한 의사 표현이 힘들잖아. 그래서 훈련할 때는 정부에서 파견한, 발달장애를 잘 이해하는 ‘근로지원인’이 함께 해 기업들도 부담을 덜 수 있단다.

얼마 전 퍼스트잡지원센터를 통해 취업한 친구들이 한달에 한번씩 모여 회식하는 자리에서 욱정씨를 만났단다. 욱정씨는 자동차서비스센터에서 환경미화 직원으로 4년째 근무하는데 새벽에 출근하면서도 한번도 지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성실하단다. 한번 정해진 규칙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어 청소를 꼼꼼하게 하니 동료직원과 손님들에게 늘 인기 만점이라고 해.

욱정씨가 훈련하기 전에 엄마는 현장에 먼저 가서 일터 분위기를 살피고, 업무도 해보면서 동선을 파악했단다. 욱정씨와 함께 훈련하는 날에는 욱정씨가 잘하는 업무와 훈련이 필요한 업무를 체크하고 미리 정한 동선대로 청소하는 훈련을 했어. 어려운 업무를 설명할 때는 엄마가 먼저 해보고 욱정씨가 따라 하도록 했는데, 참 잘 따라하며 어려움 없이 업무를 익혔단다. 직원들 근무시간에 최대한 불편을 주지 않도록 점심시간을 조정하고 업무순서를 정하는 과정을 두달 정도 거친 뒤 욱정씨는 지금까지 무리없이 일하고 있단다.

너와 같은 학교를 졸업한 네 친구 효상이는 물류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어. 상품을 보관하는 바구니를 접거나 펴서 차곡차곡 쌓아 정리하고, 바구니를 기계에 넣어 세척하고, 깨끗해진 바구니를 다시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일정한 패턴이 있는 걸 좋아하는 효상이에게는 일터가 곧 놀이터가 됐다고 해. 요즘 엄마는 네가 다니고 있는 회사 근처에 있는 도시형 스마트팜 기업과 손잡고 너희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을 개발 중이야. 농작물을 재배하고 수확하고 포장하는 일인데 일정한 규칙과 패턴이 있어 발달장애인에게 적합한 업무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엄마는 그동안 널 키우면서, 네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강점이 노동현장에서 잘 어우러지도록 더 애써볼 작정이야. 엄마의 바람은 네가 일하는 곳에서, 또 지역사회에서 사람들과 연대하며 때로는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거야.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살고 있기에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하고, 장애라는 특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에게는 손을 내밀어 줘야 하지. 엄마는 너와 네 친구들이 이런 것을 자연스럽게 배웠으면 한단다. 힘들고 괴로운 시절이 올 수도 있지만 모든 날, 모든 시간이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게 삶이고 인생인 것 같아.

사랑하는 딸 지현아. 장애가 네 삶의 장애물이 아닌 특별함으로 네 곁의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기를 엄마는 늘 기도한단다. 여느 평범한 20대 청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너를 엄마는 벅차고 흐뭇한 마음으로 언제나 지켜볼게.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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