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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대법 "위법진압 땐 폭력저항도 정당방위" 쌍용차 노조 배상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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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의 불법 농성에 대한 경찰의 진압 작전이 위법했다면 폭력을 동원한 노조의 저항도 정당방위가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이 경찰의 공무집행에 맞선 노조의 저항 행위에 정당방위 가능성을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일보

지난 2009년 7월 27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점거 중 기자회견 중인 쌍용차 노조원 머리 위로 경찰 헬기가 비행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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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30일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쌍용차 노조)가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철폐를 주장하며 점거 파업을 벌이다 이를 진압하는 경찰과 충돌한 사건과 관련, 이 과정에서 발생한 경찰 진압 대원의 부상과 경찰 장비의 손상 등에 대해 쌍용차 노조가 국가에 11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쌍용차 노조는 지난 2009년 5월 사측이 경영난에 따른 정리해고 방침을 발표하자 이에 반발해 평택공장을 점거하는 형태로 총파업에 돌입했다. 점거 파업이 두 달 넘게 이어지자 경찰은 같은 해 8월 4, 5일 헬기와 기중기를 동원해 대대적인 진압 작전을 벌였다. 경찰은 ▶헬기를 이용해 공장 옥상에 있던 노조원들에 최루액을 살포하거나 헬기 하강풍에 직접 노출되도록 하고 ▶기중기에 7t짜리 컨테이너를 매달아 공장 옥상에 설치된 장애물을 제거하거나 기중기를 급조작해 컨테이너를 내려놓을 듯이 위협하기도 했다.

쌍용차 노조는 사전에 구비한 새총, 볼트(bolt·공업용 나사), 화염병 등을 사용해 저항했다. 이때 경찰이 동원한 헬기와 기중기가 일부 손상됐다. 그러자 국가는 쌍용차 노조를 상대로 헬기·기중기가 입은 손해를 포함한 14억여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앞선 1, 2심은 노조 측의 폭력 행위 책임을 인정해 각각 약 14억6000만원, 약 11억2000만원을 쌍용차 노조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은 일부 손해배상 책임 인정에 대한 심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 같은 원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은 쌍용차 노조가 헬기를 손상한 행위는 불법행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부터 짚었다. 대법은 “직무수행 중 특정한 경찰 장비를 필요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 관계 법령에서 정한 통상의 용법과 달리 사용해 타인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그 직무수행은 위법하다고 봐야 하고, 상대방이 위해를 면하기 위해 직접 대항하는 과정에서 그 경찰 장비를 손상한 건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은 그러면서 “‘경찰항공 운영규칙’, ‘경찰관 직무집행법’, ‘경찰장비의 사용 기준 등에 관한 규정’ 등 관계 법령에 따르면, 헬기를 이용해 최루액을 살포하거나 사람이 직접 하강풍에 노출되도록 하는 건 경찰 장비를 통상의 방법과 다르게 사용해 타인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주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며 “결국, 경찰 장비를 위법하게 사용해 적법한 직무수행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여지가 있고, 그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노조원들의 헬기 손상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중앙일보

쌍용차 노조원들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에서 정부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노조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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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은 원심이 기중기를 빌려준 크레인업체가 이 사건 때문에 기중기를 운행하지 못하는 데 대한 손해(휴업손해)를 쌍용차노조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한 데 대해서도 “위법 행위로 영업용 물건이 망가졌더라도 그 물건을 이용해 얻을 수 있었던 영업수익이 상실될 수 있다고 예견할 수 없었다면 손해배상액에 포함되기 어렵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쌍용차 노조가 기중기 손상에 80%의 책임이 있다고 본 원심판결에 대해서도 “경찰이 진압 작전 당시 기중기에 대한 노조원들의 공격을 적극 유도했다고 볼 여지가 있고, 용법과 다르게 사용한 경찰 책임도 적지 않다”며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쌍용차노조 측 대리인인 장석우 변호사는 이날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 기자회견에서 “국가폭력이라는 우리 쪽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라며 환영했다.

다만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정 행위에 대해서만 공무집행의 과잉성을 인정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경찰력 투입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기준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불법 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 자체가 위법하거나 부당하다고 판단하고 거기에 대해 전체적으로 정당방위를 인정한 건 아니란 점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겉보기엔 폭력 행위지만 그 행위를 정당화할 만한 사정이 있다면 위법성 조각 사유로 인정된다는 건 일반적인 법리”라면서도 “정당방위에 대한 판단이 어떠한 사실인정에 근거해 원심과 바뀌었는지는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경찰관의 과잉 진압에 대한 저항은 형사상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지금까지 일관된 판례고, 저항에 따른 가해자의 손해에 관한 민사상 불법행위 성립 여부는 정당방위 또는 위법성 조각(阻却·물리침) 사유 인정 여부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이 결정된다”며 “(이 사건처럼) 과잉진압에 대한 대응 행위가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범위 안이라면 위법성이 없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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