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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소설엔 SF요소, TV로 영화 예고···새로워졌지만 여전한 ‘결사옹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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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로 본 김정은 시대의 풍경’ 학술대회

김정은 집권 이후 과학기술 강조

기후변화·사이버 전쟁도 소재로

‘명작’ 불린 영화 ‘하루낮 하루밤’

상업 영화의 일반적 스타일 차용

국가 이념 강조하는 면은 똑같아

‘김정은 시대’ 북한 문화예술의 주제는 김일성 때부터 이어진 ‘결사옹위’ 같은 것들이다. SF 같은 형식이나 지구온난화 같은 내용을 담으며 변화를 꾀하기도 한다. 영화 쪽에서는 예고편 상영 등 ‘상업주의’ 요소를 도입하기도 했다.

지난 5일 열린 남북문학예술연구회(회장 오창은 중앙대 교수) 2022년 가을 학술대회 ‘테크놀로지, 인민의 일상, 대중의 욕망 : 문학예술로 본 김정은 시대의 풍경’은 북한 문화 콘텐츠, 과학환상소설, 생태환경정치, 북한 영화 등을 다뤘다. 대회는 김일성 항일무장투쟁 이야기와 우상화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 “보천보 전투, 중국인이 지휘” 김일성 신화 걷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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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야기로 세워진 나라’. 신형기(연세대 명예교수)의 기조 강연 제목이다. 그는 우선 김일성을 특별한 영웅으로 부각해 승리 전망을 제시하는 항일무장투쟁 이야기가 우상화라는 명백한 의도 아래 꾸며졌다고 했다.

“김일성의 생각과 능력을 숭상하는 이야기가 거듭해 확대 재생산된 결과”로 “김일성은 언제나 옳은 가르침을 주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지도자”가 됐다. “민족 영웅의 활약을 그려내며 쓰이기 시작한 항일무장투쟁 이야기는 건국사이자 통치사로, 그리고 모든 인민과 세계를 구할 구원의 복음(福音)으로 등극”했다.

“항일무장투쟁 이야기는 과거를 장악함으로써 미래 역시 장악하고 맙니다. 유일사상체제의 수립과 김정일에서 김정은의 집권에 이르는 3대 세습은 그렇게 가능했다고 봅니다.”


☞ 원수복 입고 ‘핵무력 급속 강화’ 외친 김정은, 우상화도 가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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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이 이야기는 비평, 비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형기는 애초 감식 대상도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북한이 내용과 형식이 일정하게 규정된 하나의 이야기에 갇힌 감옥이 되어 갔다”고 했다.

신형기는 ‘이야기의 역능(力能)’도 지적했다. 북한에만 해당하는 지적은 아니다. “특정한 인물이나 일정한 견해, 혹은 어떤 신조를 우러르고 좇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역능 중 하나다. “종교적 믿음으로부터 정치적 팬덤에 이르는 대중적 현상들은 실로 이야기의 이러한 효과를 통해 설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완벽하여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영웅의 이야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와의 동일시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보통의 사람은 마땅히 그를 경모(敬慕)하는 위치에 서야 하는 것이지요. 대중을 상대로 한 영웅의 이야기는 이렇게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당연시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행위에는 어느 정도의 의도와 자발성이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 인민을 전적으로 무구한 피해자로만 보기는 어렵다”고도 했다.


☞ ‘친애하는, 인민들의 문학 생활’ 펴낸 오창은 교수 “북 체제선전 도구 ‘선입견’ 넘어 김정은 시대 ‘인민들의 삶’ 이해”
https://m.khan.co.kr/culture/book/article/202009272140005


김민선(가천대 강사)은 ‘연결과 가상, 김정은 시대 북한문학의 새로운 환상’에서 ‘김정은 시대’에 이르러 만리마 기수와 자력갱생, 그리고 과학기술중시 같은 키워드가 강조된 점을 지적한다. 과학기술강국에 대한 북한의 열망과 이상은 문학과 예술에도 나타난다.


☞ 김정은이 ‘정보산업성’을 신설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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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나무>(주설웅 지음)는 “최고 지도자가 직접 명명한 국산 책가방 브랜드 ‘소나무’에 대한 서사”를 담았다. 최고 지도자는 인공위성 발사를 지도하고 돌아서자마자 아이들을 위한 가방 브랜드 제작을 손수 검토하고 명명한다. 김민선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기술력과 아이들의 책가방 브랜드가 동시에 국가적 자부심의 근거가 되는 순간”이라고 했다.

2014~2015년 과학 교양지에 연재된 <춤추는 바다>는 ‘과학환상소설’(북한의 SF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해양연구사 정애가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는 이야기에 초점을 뒀다. 정애가 자본가의 양식장에 붙잡힌 돌고래를 구하려고 직접 잠수정을 운전해 잠입하는 장면 등이 등장한다. 김민선은 “ ‘먹고사는 문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인식과 지구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문학예술의 변화를 짐작하게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전까지 북한이 상상하였던 ‘세계’가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 국가’들과 이에 대항하는 ‘조국’의 구도로 이루어져 있음을 떠올려보면 다소 기초적이지만 (지구 환경에 대한 인식은) 분명한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인식의 변화에는 ‘미국 대 조선’이라는 구도가 ‘자본주의 대 조선’의 구도로 변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도 했다.

2018년 작 <출발선>(김송희 지음)은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김민선은 “망치를 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강인한 체구의 노동자들은, 랜선 너머에서 눈 밑이 거뭇해지고 핏발이 서도록 학습에 몰두하는 열정과 의지의 청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했다.

2014년 작 <P-300은 날은다>(리금철·한성호 지음)는 “뇌파와 뇌파를 연결하여 소통하는 고도의 연결 기술에 대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2017년 작 <존엄>(엄호삼 지음)은 세계 재벌들의 비밀조직 B.D가 조선의 ‘고려 체계’ 운영 시스템이 화폐 중심의 시스템을 전복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바이러스로 ‘고려 체계’를 무너뜨리려 하는 내용을 담았다. ‘고려 체계’는 “지능과 지적 창조물의 사회적 기여 정도를 수치화하고, 그 정보가 화폐를 대신하는 방식”이다. “흥미로운 상상력”을 동원했지만, “텍스트 안에서 세계에 대한 인식과 상상력은 인터넷 기술을 통해 연결과 가상의 세계로 한없이 확장되고 녹아들었다가, 다시 국가 이념의 중심축을 향해 견고하게 굳어지기를 반복”한다. 결국은 ‘조선의 존엄’ ‘조선의 도덕성’ ‘우리식 사회주의’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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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공개된 북한 영화 <하루낮 하루밤> 예고편은 “정지와 움직임, 빛과 어둠, 밝은 배경음악과 긴장된 효과음을 대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영화 타이틀을 각인하고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편집”됐다. 남북문화예술연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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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영화광’ 아버지의 길따라 가나?…새 예술영화 ‘하루낮 하루밤’ 공개
https://www.khan.co.kr/politics/north-korea/article/202204181554001


이지순(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예술영화 <하루낮 하루밤>을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2022년 4월9일 시사회에서 공개된 이 영화는 김정은 시대 처음으로 ‘명작’으로 호명된 작품이다. “자기 수령을 결사 보위하고 자기 제도를 지키는 것이 이 나라 공민의 신성한 의무이고 마땅한 도리라는 주제 사상”을 다룬다. 이지순은 “요약된 줄거리는 북한의 기존 영화들을 체세포 분열한 것처럼 닮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명작으로 호명되었다면, 정치·사상적으로 수령 결사옹위가 현재 북한의 당면 과제에 중요한 주제 의식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했다.

2022년은 김일성 출생 110주년, 김정일 출생 80주년, 김정은 집권 10주년이 되는 해다. “북한 문예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주체문학론’” 발표 30주년도 겹쳤다. 이지순은 “북한은 정치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한 기념일이 중첩된 2022년에 문화강국의 면모를 높이고, 문학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환기하기 위해 김정은 시대를 대표할 ‘명작’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분석했다.

이지순은 이 영화가 시사회를 거친 후 조선중앙TV에서 ‘예고편’이 방송된 점에 주목한다. 이지순은 “북한 주민들의 기대감을 높이기 위해 채택한 ‘예고편’ 방송과 ‘영화상영 순간’에 맞춰 전국 동시 개봉하는 형식은 영화의 유통과 관람을 촉진하는 전략”이라고 했다. 이지순은 “예고편에서 스릴러에 가까운 장르 문법을 구사하여 재미를 느끼고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디지털로 구현한 영화상표, 감각적인 예고편 편집, 모션을 가미한 영화 타이틀은 상업 영화의 일반적인 스타일을 수용한 양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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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초 길이의 <하루낮 하루밤>의 리더 필름은 ‘조선4.25예술영화촬영소’의 로고인 군인-용해공-여성의 3인 입상을 디지털로 구현했다. 남북문화예술연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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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대회에선 ‘ICT 기반 북한 문화콘텐츠 발전과 세계관’(하승희, 동국대), ‘김정은 시대 생태환경정치와 통치테크놀로지’(오삼언, 동국대), ‘독자의 편지로 본 김정은 시기의 주민생활과 사회윤리’(한승대, 동국대), ‘안막의 시편과 북한문학의 국제주의’(유임하, 한국체대), ‘노동영웅 천리마에서 과학기술 첨병 만리마로- 김정은 시대 11년간의 문학’(김성수, 성균관대), ‘자력갱생과 욕망하는 주체 : 김정은 시대 세계경쟁 담론’(오창은), ‘김정은 시대 문학에 나타난 장애인 형상’(고자연, 인하대) 발표가 이어졌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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