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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직권남용 처벌 어렵다면 ‘법 왜곡죄’로?…4년 만에 다시 수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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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법 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5월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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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최근 ‘법 왜곡죄’ 도입을 주요 입법과제로 선정하면서 법 왜곡죄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8년 ‘사법농단’을 겪으며 법 왜곡죄 도입 주장이 제기됐지만 흐지부지된 지 약 4년 만이다. 판사·검사가 고의로 부당하게 사건을 처리할 경우 책임을 물을 장치가 필요하다는 긍정론도 있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방탄용 아니냐’는 논란도 일고 있다.

법 왜곡죄는 판사나 검사 등이 그릇된 목적으로 실체적 진실을 외면하거나 법을 부당하게 적용하는 행위 등을 ‘법 왜곡’으로 보고 이를 처벌하는 조항이다. 독일 형법이 원조 격으로, 독일은 ‘법관 기타 공무원이 법률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할 때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법률을 왜곡한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 자유형에 처한다’는 내용의 법 왜곡죄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김남국·김용민·최기상 민주당 의원이 독일의 법 왜곡죄를 모델로 한 형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다.

법 왜곡죄가 신설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공무원의 직무상 범죄에 대해 현행법으로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사건이 대표적이다. 법관의 독립성이 헌법에 보장돼 있음에도 당시 대법원 차원의 일선 재판 개입이 이뤄졌고, 연루된 법관 일부는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재판에 개입할 직권 자체가 없으니 직권을 남용했다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의 논리에 따라 연루 법관들은 줄줄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판사 출신인 최기상 의원은 법 개정안 발의안에서 “그동안 법원과 검찰은 수많은 사건에서 법을 왜곡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억울한 사법피해자들을 양산했지만 이들에 대한 합당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현행법상 이들을 처벌할 규정이 모호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의 자의적인 수사·기소권 행사도 법 왜곡죄 주장이 나오게 된 원인으로 꼽힌다. 독일에서 형사법을 연구한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함께 하다 보니 수사단계부터 기소방침을 (미리) 정하는 경우가 있었다. 증거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아도 무리하게 기소하고, 수사 결과 죄가 있는데도 기소를 하지 않는 등 수사·기소권을 원칙에 맞지 않게 당파적으로 행사했다”며 검찰의 법 왜곡 사례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폭행 의혹 사건’을 들었다. 2013년 김 전 차관의 성폭행 의혹을 무혐의 처분했던 검찰은 6년 뒤인 2019년 6월 재조사를 거쳐 뒤늦게 김 전 차관을 기소했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진상규명의 기회를 놓쳤다.

다만 민주당이 법 왜곡죄를 꺼내 든 시점이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특혜 의혹’이 불거진 때라 여권을 중심으로 “이 대표 방탄법안 아니냐”는 논란도 일고 있다. ‘법 왜곡’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이 법을 통해 이 대표 관련 수사·재판에 관여한 검사와 판사를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법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현재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직권남용죄로 전 정권을 겨냥하는데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전 정권 수사와 재판 결과를 다시 헤집느라 더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사법부·검찰에 대해) 충분히 비판할 수는 있지만, 지금처럼 정치공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법 왜곡죄 도입 주장은 자칫 법 의도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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