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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특파원 칼럼] 달라진 민심, 숫자에 담긴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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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아파트 주민위원회가 운영하는 단체대화방에 단지 내에서 이틀 연속 코로나19 검사가 진행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한 주민이 매일 의무적으로 검사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검사에 참여하면 되는지를 물었다. 주민위원회 관계자는 “매일 검사를 권장한다”고 답했다. 질문했던 주민은 “강제가 아닌 것이 좋다. 나는 국가를 위해 자원을 절약하고 싶다”고 말했다. 매일 주민 전수 검사를 하는 것이 자원 낭비라고 꼬집은 것이다.

경향신문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지난 5월 베이징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준봉쇄 상태에 있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달랐다. 거의 열흘간 매일 이뤄지던 주민 전수 검사에도 불평하는 이는 하나 없었다. 오히려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서로 협조해야 한다며 정부 방침을 적극 지지하고 옹호하는 이들이 많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서구사회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항의하던 모습이 떠오르며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체제 순응적이라고만 여겨졌던 중국인들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베이징의 여러 아파트 단지에서는 주민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할 경우 스스로 격리시설에 갈 것인지 자택에서 격리치료를 할 것인지 선택하도록 하고 주민들이 이를 지지하자는 내용이다. 서명 제안서에는 “합법적인 절차 없이 강제로 확진자를 격리시설로 이송하는 등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단호히 맞설 것”이라는 내용도 있다. 감염자를 예외 없이 집중 격리시설에 수용하는 정책에 대한 저항운동을 조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일부 아파트에서는 천식을 앓는 두 살짜리 아이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팡창(方艙)’으로 불리는 열악한 임시 격리시설에 끌려갈 상황이 되자 주민들이 몰려나와 막아서거나 갑작스러운 단지 봉쇄에 항의해 결정을 번복시키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주말 사이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 주요 도시에서는 동시다발적인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곳곳에서 ‘봉쇄가 아닌 자유를 달라’는 외침이 쏟아졌다. ‘시진핑 하야’ ‘영수 대신 선거권’이라는 정치적 구호도 등장했다. 중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봉쇄 위주의 강력한 방역정책에 장기간 억눌렸던 민심이 폭발했다. 강력한 통제를 지탱했던 당과 정부에 대한 신뢰에는 이미 금이 갔다. 둑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이제 막 집권 3기를 시작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중국 정부는 쉽지 않은 선택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법은 단순한 숫자와 민심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에서 코로나19 발생 이후 최대 규모의 일일 감염자가 나오고 있는 지금 당국이 공식 발표하는 사망자는 하루 1명이 될까 말까 한다. 최근 시위의 도화선이 된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는 아파트 화재로 한 번에 10명이 숨졌다. 지난 9월 구이저우(貴州)성에서는 버스 전복사고가 발생해 격리시설로 이송되던 주민 27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전염병이 아니라 ‘제로(0)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분노가 터져나오는 이유다. 인민들은 ‘코로나 검사 대신 밥을, 봉쇄 대신 자유를 달라’고 요구한다. 정부가 출구전략을 찾을 명분은 충분하다.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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