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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김한수의 오마이갓] 시트콤 같은 좌충우돌 ‘수도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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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바오로수도회 안성철 신부, 수도 생활의 행복 정리한 ‘신부 생활’ 펴내

조선일보

성바오로수도회 안성철 신부. 최근 수도원 생활의 행복을 적은 책 '신부 생활'을 펴냈다.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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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에서 사진사가 “자, 신부님, 고개를 살짝 신랑 쪽으로 돌려주시고 웃어주세요”라고 했는데 주례가 고개를 신랑 쪽으로 돌리고 웃습니다. 사진사는 다시 말하지요. “아니, 거기 뒤에 계신 신부님은 그냥 계세요. 앞에 계신 신부님이 신랑 쪽으로 고개를 돌리시고요.”

성당 혼인성사(결혼식)에서 생긴 일입니다. 신부(新婦)를 부르는데 주례 신부(神父)가 자신을 부른 것으로 착각한 것이지요. 일종의 ‘사제 유머’입니다. 최근 성바오로수도회 안성철 마조리노 신부가 펴낸 책 ‘신부 생활’(시공사)에서 털어놓은 자신의 에피소드입니다.

천주교에는 다양한 수도회가 있지요. 베네딕도회, 프란치스코회, 예수회 등등이 있습니다. 각각의 수도회는 설립 목적이 있습니다. 안 신부가 속한 성바오로수도회는 이탈리아의 복자(福者)인 알베리오네(1884~1971) 신부가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목적으로 설립한 수도회입니다. 사회와의 소통이 목표였기에 출판, 미디어 분야에 특화돼 있지요. 알베리오네 신부는 성바오로수도회와 성바오로딸수도회, 스승 예수의 제자 수녀회,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성가정회, 예수사제회, 협력자회, 성모영보회, 성 가브리엘회 등을 설립했습니다. 안 신부는 성바오로수도회의 관구장을 지냈고, 평화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마조리노 신부의 주크박스’도 진행했습니다.

이 책은 수도원이 일반 사회를 향해 손을 내미는 것과 같습니다. 수도회에는 신부도 있지만 수도자, 즉 수사(修士)들로 구성됩니다. 이 책 뒷날개엔 ‘수도원 수사들의…전혀 은밀하지 않은 사생활’이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책에서 안 신부는 100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수도원 생활의 행복을 유쾌하게 설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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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철 신부의 '신부 생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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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수도원 유머’가 시트콤처럼 풍성하게 펼쳐집니다.

한번은 원장 신부님이 외국 출장을 가게 됐답니다. 남은 수도자들은 해방감에 점심은 ‘외식’을 결정하고 평소 먹고 싶었던 오리탕으로 외식을 했답니다. 그런데 사정이 생겨 출장을 취소한 원장 신부님은 오후에 수도원에 돌아왔습니다. 원장 신부님은 자신이 없어도 착실히 지낸 수도자들에게 상으로 오리탕을 사주겠다고 했습니다. 차마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지 못한 수도자들은 원장 신부를 따라 점심에 이어 저녁에 또 오리탕 식당을 찾았지요. 눈치 없는 식당 사장님은 “또 오겠다더니 진짜 금방 또 오셨네!”라며 반겼답니다. 원장 신부님의 표정이 어땠을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지요.

대출이나 보험 권유 전화는 수도자들에게도 걸려온답니다. 대처 방식은 다르지요. 보통 사람들은 첫 마디를 듣자마자 끊어버리지요. 그런데 수도자들은 30분 넘도록 응대한답니다. 평소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때문이겠지요. 한두마디 응대하다보면 상대방이 “신부님과 전화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수도원은 어떤 곳이냐’ ‘결혼도 안 하느냐’ ‘사유재산도 없냐’고 묻는답니다. 그 질문에 응대하다보면 30분은 훌쩍 지나간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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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에 있는 성바오로수도회 바오로센터(왼쪽)와 수도회원들. /성바오로수도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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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바오로수도원은 운행하는 차량이 많답니다. 수리비도 만만치 않겠지요. 그래서 한 수사님이 학원에서 정비 기술을 배우면 수리비용을 아낄 수 있겠다고 아이디어를 냈답니다. 학원에 다녀올 때마다 배운 지식을 자랑한 수사님. 듣고 있던 수사들이 실제 차를 보면서 설명해 달라고 했다네요. 그런데 막상 차량 앞에 선 수사님은 머뭇거렸답니다. “학원에서는 보닛을 다 열어놓고 가르치는데…” 정작 자동차 보닛 여는 법은 몰랐던 것이지요.

군대 이야기는 남자 수도원에서도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인 모양입니다. 일반 사회와 똑같이 ‘누가누가 더 고생했나’를 경쟁하는 ‘고생 자랑’이지요. 수도원에서 부동의 최고봉은 월남전에 참전한 고참 수사님이었답니다. 어느날 그 선배 수사님의 ‘군대 동기’가 찾아왔답니다. 그동안 수사님의 무용담을 익히 들어온 수도자들은 “월남전에서 얼마나 고생하셨느냐”고 물었지요. 방문객의 대답은 이랬답니다. “저하고 친구는 PX에서 근무했는데요?”

수도원의 식사 시간은 30분이라고 합니다. 안 신부님은 식사 시간에 동료들과 이야기하느라 그 30분을 넘기기 일쑤였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수도자들이 안 신부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생겼지요. 어느날 원장 신부님은 “밥을 좀 빨리 먹든지 양을 줄이라”고 권했답니다. 한 마디로 말과 밥,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이야기죠. 안 신부님의 선택은? 식사량을 줄이는 것이었답니다.

연휴라고 해서 어디 갈 곳도 없지만 새해 달력이 나오면 연휴부터 챙겨보는 것은 수도자들도 보통 사람들과 똑같답니다. 달력을 보며 연휴 찾기에 열중하다보면 “내년 크리스마스는 무슨 요일이야?”에 이어 “내년 부활절은 무슨 요일이야?”라는 질문까지 나올 때가 있다네요. 부활절은 항상 일요일인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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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바오로수도회의 활동. 왼쪽부터 '성모의 밤' 행사, 서원축하식, 휴게실에서 공기놀이하는 수사들. 성바오로수도회는 여성 수도회인 성바오로딸수도회와 설립자가 같고, 바로 이웃에 위치해 함께 활동하는 프로젝트도 다양하다. /안성철 신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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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바오로수도회 소속 수도자들은 매달 25만원씩 생활비를 받는답니다. 과거엔 15만원이었답니다. 그 때는 휴대전화를 수도원에서 사주고 요금제도 각자 정한 대로 내줬다네요. 그러다보니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답니다. 그래서 생활비를 25만원으로 인상하는 대신 휴대전화 구입 비용과 요금도 각자 내도록 제도를 변경했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모든 수도자들은 알뜰폰으로 바꾸고 요금도 기본 요금으로 바꿨답니다.

설날이면 함께 전 부치고 떡국도 먹은 후 어른들을 모시고 세배를 한 후 세뱃돈으로 사탕을 받고, 어버이날이면 부모님을 수도원으로 초청해 합동으로 효도잔치도 한다지요. 또 물통을 골대 삼아 세워두고 축구하고, 성인 남자들끼리 모여 공기놀이 하고, 눈썰매장을 찾아 줄 서서 눈썰매를 타기도 한답니다. 책을 읽다보면 한편으론 어수룩하고, 한편으로 순수한 수도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안 신부가 이런 일화를 털어놓은 건 수도 생활을 희화화하기 위한 것은 아니겠죠. 오히려 막연히 엄숙하고 딱딱하고 따분할 것 같은 수도 생활에 대한 선입견을 걷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안 신부는 서문에서 “30년 넘도록 수도원에서 행복하다”며 “수도원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재미있게 지내는지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뻥 치지 않고 진짜 리얼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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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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